성수기에도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 여전, 2021년 신차 144만 대·중고차 387만 대 거래
[비즈니스 포커스] 새것보다 헌것이 나은 제품이 있다. 바로 자동차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부품 공급 불안정 등 악재가 겹치며 완성차업계의 생산 차질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여름휴가철은 자동차 시장에서 ‘성수기’로 꼽힌다. 장거리 운행이 많은 만큼 차량이 필요한 소비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매 후 곧바로 탈 수 있는 중고차로 소비자가 몰리며 해당 시장이 대목을 맞았다.
신차 누적 수요·주문량에 여전한 대기 기간
올해 1~5월 한국의 전기차 판매량 순위 1위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5다. 이 차량은 납기일이 최소 1년 이상이다. 선루프 등의 옵션을 추가하면 대기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하이브리드나 내연기관 차량도 마찬가지다.
기아의 ‘디 올 뉴 니로’는 6개월, 스포티지와 쏘렌토 하이브리드 모델은 18개월 이상이 걸린다. 생산 라인이 달라 광주에서 생산되는 현대차 캐스퍼의 출고 기간은 3개월로 그나마 짧은 편이다. 부품 수급이 예전보다 비교적 나아졌지만 누적된 수요와 주문량이 많아 대기 기간은 줄지 않고 있다.
신차 대기 기간에 질린 소비자들은 중고차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021년 신차·중고차 판매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한국의 신차 등록 대수는 144만 대, 중고차는 387만 대다.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나타난 2020년 당시 신차 등록 대수는 190만 대, 중고차는 381만 대다. 출고 기간이 갈수록 늦어지면서 신차 등록 대수는 24.2% 줄어든 반면 중고차는 1.6% 늘었다.
올해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유가·물가 상승으로 서민 지갑이 얇아지며 중고차 거래량은 약간 줄었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거래 규모를 보이고 있다. 올해 1~5월 한국 중고차 거래 실적은 161만132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67만1792대와 비교해 3.6%만 줄었을 뿐이다.
AJ셀카가 공개한 올해 1~5월 기준 중고차 시장 인기 차종 모델 순위를 보면 가장 많이 거래된 차량은 국산차 중에선 아반떼AD다. 스테디셀러답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중고차 시장에서도 가장 많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이어 2위 그랜저 IG, 3위 올 뉴 모닝, 4위 쏘나타 뉴 라이즈, 5위 4세대 스포티지, 6위 올 뉴 투싼, 7위 레이, 8위 그랜드 스타렉스, 9위 제네시스 G80, 10위 엑센트 등이 뒤를 이었다. 세단 모델은 2·4·9·10위에 분포하며 여전한 인기를 뽐냈다.
수입 중고차 상위 10위권도 대부분 세단이 장악했다. 가장 인기 있는 수입차는 벤츠 E클래스다. 2위는 BMW 뉴 5시리즈, 3위와 4위는 각각 아우디 뉴 A6와 벤츠 뉴 E클래스 등이다.
AJ셀카는 “여름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중고차 거래량이 점차 늘고 있다”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꾸준히 거래되고 있지만 승차감이나 연비 등 비용 대비 성능을 고려해 여전히 세단의 거래량이 가장 활발하다”고 밝혔다. 60조 신차 넘보는 30조 중고차 시장
매년 중고차 거래량은 평균 신차의 2배 정도다. 하지만 대당 거래 가격에 차이가 있는 만큼 거래량은 2배지만 시장 규모는 신차 시장의 2분의 1이다. 한국의 신차 시장은 60조원 규모, 중고차 시장은 30조원 수준이다.
시장 규모가 작았던 이유는 중고차 시장이 ‘레몬 마켓’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고 맛없는 레몬만 있는 시장처럼 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을 레몬 마켓이라고 한다. 판매자보다 제품에 대한 정보가 적은 소비자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속아 물건을 살 공산이 크다.
이를 우려해 싼값에만 상품을 사려고 해 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을 말하기도 한다. 결국 불량품이 넘치면서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 시장이 된다. 한국의 중고차 시장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최근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 업종에서 빠지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길이 열렸다. 연간 30조원이라는 대규모 시장임에도 대기업 진출이 허용되지 않아 투명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중고차 시장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해당 시장의 신뢰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규모의 경제에 따른 사업화가 촉진되고 모빌리티 서비스의 결합으로 중고차 시장의 플랫폼 비즈니스화도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시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현재 중고차 시장은 기존 매매상과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 업체로 양분돼 있다. 하지만 완성차와 대형 렌터카 기업 등 신규 진입자가 증가하면 차량 거래 가격은 보다 투명해질 수 있다. 다수의 영세업자가 눈대중으로 매기던 중고차 매입·판매가도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고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기업은 현대차·롯데렌탈·KB금융 등이다. 현대차는 향후 3년간 단계적으로 진입해 중고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다. 2022년 2.5%, 2023년 3.6%, 2024년 5.1% 점유가 목표다.
현대차는 모바일·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방침이다. 오프라인 거래점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을 절감하고 온라인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롯데렌탈도 올해 10월 출시를 목표로 소비자 대상 중고차 온라인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계약 기간이 끝나 소비자가 반납하는 장기 렌터카를 중고차 딜러에 도매 형태로 판매했지만 이제 소매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연 5만~6만 대에 달하는 반납 렌터카를 자체 조달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고차 영세업자는 대기업의 시장 진출로 본인들의 ‘살길’이 막혔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대기업집단의 시장 진출로 레몬 마켓의 반대말인 ‘피치 마켓’이 열릴 수 있다.
피치인 복숭아는 상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껍질을 까 속을 보지 않아도 상태를 알 수 있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품질이 좋은 과일을 선택할 수 있다. 중고차 시장 역시 투명하고 균형 있는 정보와 가격 경쟁으로 레몬 마켓에서 피치 마켓으로 탈바꿈해야 할 시점이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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