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기업 이끄는 CEO를 통해 본 세 가지 핵심 경영 방정식
[2022 100대 CEO]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늘 급변했고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개척은 위기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최고경영자(CEO)들은 그때마다 새로운 솔루션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혁신과 내실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였다.2022년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100인의 CEO들은 올해도 거센 파고를 넘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를 넘자마자 한국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에 직면했다. 세계 경제 역시 물가는 급등하는데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놓였다. 공급망 정체는 여전히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례 없는 복합 위기가 닥치자 CEO들은 비상 경영을 선언했다. 시장을 읽는 전략가도, 숫자에 밝은 재무통도, 혁신을 주도하는 기술 전문가도 위기 대응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대한민국 대표 CEO 100인의 경영 방정식을 살펴봤다. CEO 경영 방정식1.
기술, 기술, 기술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월 18일 유럽 출장 귀국길에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위기 대응을 위한 탈출구는 기술 경쟁력이라는 얘기다. 이 부회장의 당부를 현실화할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CEO들은 대부분 기술 전문가들로 이뤄져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계 TV 시장 15년 연속 1위’ 기록을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어떠한 난관도 결국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코뿔소 사장’으로 불린다. 한 부회장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입사해 TV 부문에만 30년 넘게 몸담았다.
삼성전자가 브라운관 TV를 출시하던 시절부터 PDP TV와 액정표시장치(LCD) TV, 3D TV와 QLED TV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을 개발하는 데 참여하거나 이를 주도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대부분의 상품 개발에 참여한 ‘살아있는 역사’로 꼽힌다. 한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는 2021년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기술로 한계를 돌파해 미래를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의 전자 계열사 사장단은 삼성이 명실상부한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산업을 선도할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들 역시 이 부회장의 '기술 선언'에 맞춰 기술 로드맵을 짤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하이닉스·마이크론을 거쳐 2011년 삼성전자 입사 후 D램 개발실장, 전략마케팅 실장, 미주 총괄 등을 거쳤다. 기술, 전략, 영업을 두루 경험한 CEO란 평가를 받는다.
황성우 삼성SDS 사장은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 출신이다. 삼성전자의 원천 기술 싱크탱크인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디바이스랩장, 나노일렉트로닉스랩, 프론티어리서치랩장을 역임하고 원장까지 지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솔루션개발실장, 시스템LSI사업부 LSI개발실장, SOC개발실장, 센서 사업팀장 등을 역임한 반도체 개발 전문가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로 거듭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래 기술을 강조하며 기업의 체질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를 이끌어 온 총수들의 세대별 역할은 분명했다. 현대그룹을 일군 고(故) 정주영 창업자가 한국 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2세대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 경영’으로 현대차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3세대 정의선 회장은 자동차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도심항공모빌리티(UAM)·로봇·수소 생태계 투자를 통해 사업 대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지난 5월 24일 핵심 계열인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 3사를 중심으로 2025년까지 한국에서 63조원, 미국에서 13조원 등 거침없는 투자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전기차와 미래 신기술 등의 분야에서 기술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SK 계열사 중에서는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기술 확보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30년 넘게 SK에 몸담으면서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2012년 SK텔레콤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주도했다. 이후 일본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 투자,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등 굵직한 투자들과 함께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과의 협업을 이끌어 내며 SK하이닉스의 체력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EO 경영 방정식 2.
기업 새판 짜는 전략가들 기업이 위기나 새로운 도전에 마주할 때마다 등판한 전략가들도 있다. K-배터리의 양대 산맥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그룹 내 ‘재무통’이 이끌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사업인 만큼 그룹에서 전략가로 통하는 전문가들이 배터리 사업을 맡았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LG그룹 내 실질적 2인자였다. 그동안 그룹의 ‘구원투수’로 불렸던 권 부회장은 2021년 6년 만에 LG배터리 사업의 키를 다시 잡았다. 최고재무책임가(CFO) 출신으로 재무적 역량과 사업적 감각을 모두 갖춘 경영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고(故) 구본무 회장 때부터 그룹 의사 결정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유플러스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수장을 잇달아 맡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2012년에는 “배터리 사업도 LCD처럼 세계 최고로 키워 달라”는 구본무 회장의 특명을 받고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을 맡았다. 이후 아우디·다임러 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서 수주를 이끌어 내며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중대형 배터리를 시장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2018년 7월에는 그룹 지주회사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선임되며 구광모 회장 체제의 안정화를 도왔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미래전략실 출신의 재무 전문가다. 지난 6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럽 출장길에 최 사장이 동행하기도 했다. 1987년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에 입사한 최 사장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미래전략실 전략1팀 담당 임원으로 일하며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발휘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삼성SDI를 이끌고 있는 최 사장은 외형 확장보다 질적(수익성) 성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3223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1분기 중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142% 급등한 수치다. 금융 기업 중에서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손꼽히는 재무통이다. 윤 회장은 삼일회계법인 출신으로 은행권 최고의 재무총괄임원(CFO)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윤 회장은 취임 이후 대형 인수·합병(M&A)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단기간에 KB금융지주를 성장시켰다. M&A를 주도하며 기업의 외형 확장을 주도한 전략가들도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 구현모 KT 대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M&A의 귀재로 유명하다.
신한금융은 2007년 LG카드(현 신한카드) 인수 이후 10년간 대형 M&A가 없었다. 2017년 조용병 회장 취임 후 그룹의 행보는 180도 달라졌다. 조 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은행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공격적인 M&A에 드라이브를 걸며 종합 금융그룹을 완성했다. 신한금융은 2018년 이후 생명보험사 오렌지라이프, 부동산 신탁사 아시아신탁, 벤처캐피털 네오플럭스 등 알짜 매물들을 사들였다.
최은석 대표는 2011 CJ GLS와 대한통운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인물이다. 다수의 해외 물류 기업을 잇달아 인수해 CJ대한통운을 한국의 대표 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CJ제일제당에서 식품·바이오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구현모 대표 역시 그동안 KT의 주요 M&A를 주도해 온 전략통이다. 2008년 한국 최대 디지털 미디어랩 나스미디어, 2011년 BC카드의 인수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지니뮤직에 대한 전략적 투자도 구 대표의 역할이 컸다.
2020년 CEO에 취임한 후 그의 M&A 행보는 더 빨라졌다. 구 대표는 지난 1월 신한은행과 협력하기 위해 4375억원의 지분을 상호 취득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2020년 현대로보틱스에 500억원을 투자했고 미디어와 콘텐츠의 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HCN과 현대미디어를 품에 안았다. 또한 글로벌 데이터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글로벌 데이터 전문 기업 엡실론을 인수하기도 했다. 통신 기업에서 벗어나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구 대표의 ‘디지코’ 전략은 들어맞았다. 구 대표 취임 이후 KT의 주가는 6월 24일 종가 기준 약 89% 오른 3만7300원을 기록했다.
다양한 화장품 기업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운 차석용 부회장은 취임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차 부회장 부임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7년 연속 성장했고 지난해 매출은 8조원을 넘어섰다.
이 밖에 해당 산업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룹 내에서 CFO를 역임했던 재무통이 기업을 이끄는 경우도 많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이 대표적이다. CEO 경영 방정식 3.
도전과 성실, 기업의 기본에 충실하다 성실하게 본업을 강화하며 새로운 시장에 도전한다는 '기본 충실형' CEO들도 있다.
정기선 한국조선해양 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정체성을 조선사가 아닌 '미래 개척자'로 정의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 대표에 오른 정 사장은 세계 조선시장 1위를 넘어 핵심 사업 분야에서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성장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신사업 확보에 나서고 있다. 조선업은 글로벌 시황에 따라 부침이 큰 업종이기에 신기술 투자를 확대해 미래를 대비하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까지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주항 선박을 기반으로 한 해양모빌리티가 대표적인 신사업이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의 경영 코드는 언제나 ‘현장’에 닿아 있다. 최 회장은 증권업계에서는 발로 뛰는 영업통으로 소문나 있다. 입사 이후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여의도 전 증권사의 리포트 핵심 내용을 추린 보고서를 만들어 기업에 배포하며 사원 시절부터 성실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서초지점장 시절 사내 영업 실적 7위였던 서초지점을 2년여 만에 전국 증권사 15위 점포로 올려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1997년 최 회장은 박현주 회장의 제안을 받고 미래에셋 창업에 동참했다. 1999년 12월 자본금 500억원으로 시작한 미래에셋증권은 최 회장의 현장 경영으로 약 20년 만에 200배 성장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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