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자 이익 의존도가 절대적
해외 은행은 AI 개발 한창인데 한국은 IT 인력 부족
잇단 횡령 사고로 금융업 본질인 ‘신뢰’ 하락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한 은행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은행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은행 역시 최대 성과를 냈다. ‘가산 금리 슬쩍 올려 대출 장사’, ‘금리 요동, 은행 웃고 서민 울고’ 등의 뉴스가 연일 보도됐다. 기준 금리 인상에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늘어났는데 홀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엔 은행의 금리 인상을 막아 달라는 취지의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은행들이 지나치게 가산 금리를 높이고 우대 금리를 깎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출 관련 민원은 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은행연합회 소비자 민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은행권에 접수된 여신(대출) 관련 민원은 268건을 기록했다. 2016년 2분기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 3분기는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본격적으로 높인 시기다. 은행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를 들여다봤다.
이자 이익만 의존해 비난 받는 은행
우선 수익 구조. 올해 1분기 주요 시중은행의 전체 이익에서 이자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90%가 넘었다. 86%였던 작년보다 이자 이익 의존도가 더 커졌다. 글로벌 100대 금융회사의 비이자 이익 비율이 40%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 은행은 이자 수익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배경은 이렇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와 빚투(빚 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로 한국의 가계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2분기 가계 빚은 사상 처음으로 1800조원을 넘었다. 1년 새 약 17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가계 대출 관리에 고삐를 바짝 조이자 은행들은 금리를 높이며 문을 걸어 잠갔다. 수요가 넘치는데 대출 금리를 낮춰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고객을 돌려보내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했다는 게 이유였다.

대출 금리는 ‘자금 조달 비용+가산 금리-우대 금리’로 산출된다. 급여 이체나 예·적금 등 조건이 부합해 차주에게 금리 감면 혜택을 주는 우대 금리를 확대하면 대출 금리를 낮추는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은행들은 가산 금리를 인상하거나 우대 금리를 폐지하는 등 총가산 금리(가산 금리-조정 가감 금리)를 올리며 높은 수익을 거뒀다.

은행별 공시를 분석한 결과 2021년 1년간 4대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이 분할 상환 방식 주택 담보 대출(만기 10년 이상)의 총가산 금리를 가장 높게 인상했다. 2021년 1월 연 1.61%에서 12월 연 2.37로 0.76%포인트 올렸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1.6%→2.16%), 하나은행(1.36%→1.56%), 신한은행(1.54%→1.64%) 순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의 이자 이익은 46조원으로 전년 대비 4조8000억원 늘어났다.

올해도 은행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예금 은행의 4월 기준 예대 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은 잔액 기준으로 총수신 금리(1.01%)가 전월 대비 0.05%포인트, 총대출 금리(3.36%)가 0.08%포인트 올랐다. 예대 마진은 2.35%포인트로, 전달보다 0.03%포인트 높아졌다. 2018년 6월(2.35%포인트) 이후 3년 10개월 만의 최대치다. 가계 대출이 꾸준히 줄었음에도 KB·신한·하나·우리은행 등 한국의 4대 금융지주는 올해 1분기 사상 처음으로 합산 순이익이 4조원을 돌파했다.

과거엔 어땠을까. 2008년 금융 위기라는 큰 사건이 터지고 난 후 2009년 예대 마진이 10년 만에 사상 최대치로 벌어졌다. 당시 한국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중소기업 대출 금리를 누르면서도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고객 위주로 가계 대출 금리를 올렸다. 가계가 완전 ‘봉’이었다”고 말했다.
혁신 없으면 도태
은행들이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당장의 눈치로 대출 이자를 찔끔 내리는 것이 아니라 수익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속에서 은행의 혁신이 요구된다.

잠깐 과거로 시간을 돌려보자. 산업화 과정에서 젖줄 역할을 했던 은행의 시대는 1997년 외환 위기로 막을 내렸다. 한때 은행권 예수금의 80% 이상을 나눌 정도로 은행권의 강자로 군림했던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모두 간판을 내렸다. 10대 재벌 안에 들어갔던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기아·대우·쌍용 등 30대 재벌 중 10곳 이상이 줄줄이 무너졌고 이는 대기업에 돈을 빌려줬던 시중은행에도 전이됐다. 은행권에 인수·합병(M&A)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시중은행의 합종연횡은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조·상·제·한·서’를 대체한 곳은 ‘국·우·신·하(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가 됐다. 전문가들은 외환 위기 이후 이어졌던 은행권 M&A 물결의 한 챕터가 끝났다고 봤다. 은행권에 남겨진 교훈은 하나였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다시 현재. 이 교훈은 진행형이다. 플랫폼과 디지털 기술을 앞세운 빅테크(대형 IT 기업)가 금융 시장에 진입했다. 고객과의 접점이 오프라인에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넘어왔다. 위기감을 느낀 전통 은행도 오프라인 점포를 줄이고 모바일 뱅킹 영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입출금 알림, 이체 등 흩어져 있던 은행 서비스를 하나의 앱으로 통합하고 보험료 청구, 공과금 납입 등 각종 생활 금융 서비스 기능을 탑재하거나 별도 앱을 내놓고 있다.

디지털 전환 1차 전쟁은 소비자들에게 모바일 뱅킹 시대를 열었다. 금융 소비자들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24시간 365일 계좌를 개설하고 송금하고 신용 대출을 받는다. 그런데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현재 디지털 전환은 단편적인 수준이라는 의미다. 주택 담보 대출, 자산 관리 등 전문적인 투자 상담과 평가는 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복잡한 대출을 모바일로 시행할 기술력이 부족했고 전문성에 대한 우위와 신뢰가 아직까지 전통 은행에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뱅킹만 남는다
2차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투자 상담가의 통찰력을 탑재한 인공지능(AI)을 개발한 금융사가 승기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뱅크(은행)는 사라지고 뱅킹(은행 업무)만 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20여 년 뒤 영국의 금융 시장 전문가 크리스 스키너도 똑같이 주장했다. 그는 저서 ‘금융혁명 2030’에서 캐시리스(현금 없는 사회)를 전망하며 미래 디지털 은행은 소비자 개인 AI 은행원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디지털 은행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켜 주고 재무 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일을 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소비자가 필요한 부분을 예측해 대신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곳이다.”

금융계의 미래학자로 이름이 높은 브렛 킹도 저서 ‘뱅크 4.0’에서 ‘음성’ 기반의 AI 은행원을 제시했다. 소비자가 AI 은행원에게 이달 소비를 조금 더 해도 괜찮은지, 어떻게 해야 주택 구입 보증금 마련 기간을 줄일 수 있을지, 어디에 투자해야 내 집 마련에 도움이 될지 등을 물어보면 실시간으로 전문적인 자산 관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소비자) “어린이날이 다가오는데 5만원짜리 장난감 10박스만 주문해 줘.” (AI 은행원) “안 돼요. 벌써 이달 지출 한계를 초과했어요. 계획하신 여름휴가를 못 갈 수 있어요.”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한 미래가 온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은행은 ‘위치 기반 알림을 어떻게 구현할까’가 아니라 ‘위치 기반 알림을 언제 어떻게(자사·타사 금융 상품 등 활용 추천) 써야 고객이 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는지, 이 같은 경험이 신뢰로 이어질지’를 고민해야 한다.
AI 등 기술 개발에 갈 길 먼 한국
왜 이 같은 예측이 나왔을까.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가 바둑 천재 이세돌 9단과 벌인 세기의 대결은 세상을 들썩이게 했고 산업 전반에 AI 투자를 불러일으켰다. 은행 역시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 있었다. 글로벌 은행들은 AI는 물론 빅데이터·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개발을 확대해 ‘AI 뱅크’를 지향하는 모습이다.

미국 초대형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2018년 ‘에리카’라는 AI 금융 비서를 공식 출시했다. 에리카는 문자 인식, 음성 인식 등으로 고객의 금융·비금융(쇼핑 등) 정보를 학습해 거래 내역 조회나 재무 관리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에리카의 사용이 늘면서 BoA의 디지털 채널은 전체 소비자 뱅킹 매출의 절반에 달했다.

세계적인 은행 JP모간체이스는 2016년 예산의 16%인 96억 달러를 기술 분야에 지출, 1년 만에 ‘코인’이라는 AI 기반의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코인은 기존에 대출 담당자들과 변호사들이 연간 36만 시간에 걸쳐 분석한 1만2000건의 계약서를 단 몇 초 만에 살펴보고 대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컴퓨팅에 신규 투자를 단행, 규모를 확대했다. 신규 투자 150억 달러 중 80%(120억 달러)를 기술 분야에 투자한다.

설립된 지 166년 된 스페인 은행 BBVA는 기술 발전이 은행의 생존 방식을 뒤집을 것이라고 예견하며 2015년 아예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2016년 이후 3000개 이상 핀테크 기업들과 교류하며 537개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고 68개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했다.

한국의 은행들은 어떨까. 주요 은행의 수장들이 ‘디지털 전환’을 화두로 내걸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디지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주요 금융업권 IT 인력 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전체 직원 중 IT 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7.7%(5만4748명 중 4215명)밖에 안 된다. 은행별로 보면 IT 인력이 1000명이 넘는 곳은 KB국민은행이 유일했고 이 경우도 전체 임직원의 10%가 안 됐다. IT 인력 확보에도 소극적이다. 2019∼2021년 4대 은행이 신규 채용한 IT 인력은 982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신규 채용(6319명)의 15.5% 정도다.

보수적인 조직 문화도 걸림돌이다. 금융권의 IT 인력은 주 업무인 금융업을 지원하는 후방 조직이라는 인식이 있어 천성이 개발자인 사람은 다니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은행원 A 씨는 “디지털 부문에 지원해 입사했지만 영업점부터 돌고 있다”며 “몇 개월만 쉬어도 코딩 트렌드를 따라가기 힘들어 걱정이다. 본사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은행원 B 씨는 “직접 개발보다 전산 시스템이나 앱 개발 등을 외주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개발자로서 역량을 키우고 커리어를 쌓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삼정KPMG는 보고서에서 “최근 해외 은행업계의 경영 관리는 디지털화를 통한 실질적인 수익 창출과 기여도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디지털 전환의 효과성 측정은 은행의 디지털 전환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한국 은행들도 디지털 성과 관리 체계를 도입해 은행의 기업 문화를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동시에 양적인 확장에만 치우쳤던 디지털 전환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디지털 전환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평가하는 질적 측면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금융업의 본질은 신뢰 산업
다음은 신뢰. 메디치은행은 1410년 오랜 고객이었던 로마 교황 요한 23세를 통해 교황청의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는 주거래 은행이 됐는데 5년 만에 요한 23세가 폐위됐고 그는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다. 가문의 창시자 격인 조반니 데 메디치는 떼일 각오를 하고 요한 23세에게 벌금 낼 돈을 빌려줬다. 대출은 손해로 남았지만 메디치은행이 고객과 신뢰를 끝까지 지킨 모습이 널리 알려졌고 그 덕에 후임 교황도 메디치은행에 자금을 맡겼다.

1970년대 중반, 골드만삭스는 고객을 위해 옳은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백만장자의 보이스카우트’로 통했다. 당시 미국에선 적대적 M&A 바람이 불었다. 골드만삭스는 인수당하는 회사도 고객이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를 돕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피인수 기업들은 방어 자문을 구하기 위해 골드만삭스를 찾았고 새로운 성장 기반이 됐다. 두 사례가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뢰’다. 금융사의 신뢰는 가장 큰 자산이다. 신뢰가 있어야 고객이 다시 찾는다.

2019년 라임‧옵티머스 등 수십조원에 이르는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터졌다. 은행 등 판매사와 소비자의 신뢰가 무너졌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을 달군 주제는 ‘횡령’이었다. 1·2금융권 구분할 것도 없었다.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기엔 횡령 기간도 길었다. 직원이 6년간 무려 614억원을 가로챈 우리은행 횡령 사고는 10년 만에 드러났다. 40억원을 횡령한 새마을금고 직원의 범행 기간은 16년이었다. KB저축은행 직원은 6년간 자금을 빼돌렸다.

돈을 맡기는 곳에서 횡령이 잇따라 발생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충격이 컸다. 서류가 위조되지 않았는지, 시재(현금 보유액)는 맞는지 등 철저히 감시하고 확인했다면 횡령 사실을 조금 더 빨리 발견해 피해 규모를 줄였을 수도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은행들은 내부 통제 시스템에 대해 대대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지켜볼 일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