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식어버린 부동산 시장
자산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다

급매물이 게시된 서울의 한 공인중개소 사진=연합뉴스
급매물이 게시된 서울의 한 공인중개소 사진=연합뉴스
주택 시장이 빠르게 식고 있다. 9개월 전인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폭등’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역대급의 상승세를 보이던 주택 시장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차가워진 것이다.

주택 하락장을 반기는 이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안정세에 들어서던 주택 시장이 올해 6월 중순부터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드디어 대세 하락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기대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심지어 향후 몇 년간 집값이 계속 하락할 수 있어 집을 사면 손해라는 극단론도 확산되고 있다.

집값 하락 소식에 환호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다. 첫째는 본인이 앞으로도 당분간 집을 살 계획이 없어 집값 하락이 실질적인 기회가 되지 않지만 하락장을 반기는 사람들이다.

둘째 부류는 집을 살 타이밍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 몇 년간 기회를 놓쳤던 사람이나 급등기 직전 집을 팔았던 이들은 대출로 자금을 조금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다. 이들은 하락기를 그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집을 판 김 씨는 왜 부동산 하락론자가 됐나[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이명박 정부 말기던 2012년 6월, 서울에 아파트를 산 김 씨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당시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인 5억2729만원에 집을 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집값이 슬금슬금 빠지기 시작해 2013년 12월 4억8375만원까지 떨어졌다. 4000만원 이상 집값이 하락한 셈이다. 이 기간이 지속되자 김 씨는 본전만 되면 집을 팔고 안전한 전세에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다음 박근혜 정부 동안 집값이 올라 5년이 지난 2017년 6월 6억1755만원이 됐다. 매수가 대비 9000만원 상승했고 집값이 가장 많이 떨어졌던 시기와 비교하면 1억3000만원이 올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집값을 잡겠다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나타나자 김 씨는 집을 팔기로 결심했다. 이명박 정권 때 집값이 4000만원 떨어져 마음고생한 것도 있지만 문재인 정권에서는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일단 아파트를 팔았다가 나중에 집값이 더 떨어지면 그때 사려고 생각한 것이다.

집을 판 후 집값이 김 씨의 바람대로 떨어져 서울 아파트를 다시 살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김 씨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1년 6개월이 지난 2018년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8억1595만원이 됐다. 김 씨가 집을 판 이후 1년 6개월 동안 무려 2억원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물론 집값이 언제나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2018년 12월 중순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은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정부도 9·13 대책이 드디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일부 전문가도 하락장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 시기에 집을 사지 않았다. 이미 집값이 하락 추세로 돌아섰고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워낙 확고부동하다는 점에서 추가 하락을 기대하고 집을 사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서울 아파트 가격이 본인이 집을 팔았던 2017년 6월 가격은 물론 그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하락장이 올 것이라고 믿어서다.

그런데 집값 하락이 시작된 ‘A’ 시점에서 집을 사기는 어려웠겠지만 집값이 상승으로 다시 전환된 ‘B’ 시점에서는 집을 샀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 씨는 ‘B’ 시점에도 집을 사지 않았을까.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김 씨가 집을 팔았던 2017년 6월에 비해서는 집값이 2억원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팔았던 집을 다시 사려면 취득 비용까지 감안해 2억원에 수천만원이나 돈을 더 줘야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결과적으로 김 씨는 2억원을 더 주고 서울 아파트를 다시 샀을까. 그럴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자금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2억원이라는 자금은 아깝다. 돈도 아깝지만 그보다는 자존심의 문제가 걸린다.

2억원의 자금을 더 주고 같은 집을 되산다고 하면 배우자나 주위 사람들에게 평생 놀림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김 씨는 서울 집을 팔았던 2017년 6월 이후 하락론자가 됐다.

하지만 2019년 8월이라도 김 씨가 자존심을 버리고 집을 다시 샀으면 어땠을까.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아는 바다.
집을 판 김 씨는 왜 부동산 하락론자가 됐나[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상승·하락 반복되는 부동산 시장

2022년 6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7992만원이다. 김 씨가 집을 판 2017년 6월 대비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5년간 액수로는 6억5000만원 이상 오른 셈이다. 근로소득 만으로는 10년 안에 만회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회를 날린 셈이다. 김 씨의 마지막 희망은 지난 몇 년간 극적으로 집값이 오른 것과 반대로 집값이 폭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김 씨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본인이 예상했던 상황이 지금 그대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것이다. 앞으로 서울 아파트 값은 본인이 집을 팔았던 5년 전 가격은 물론 그 이전 가격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김 씨는 가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제2의 김 씨가 되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집이 한 채 있는 이들이 집을 팔고 현금을 가지고 있다가 집값이 떨어지면 되사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5년 전 김 씨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려는 것이다.

어떤 투자 상품이든 본인이 산 직후부터 급등하지는 않는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돈 가치 하락분 만큼 상승하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동산 시장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 하락기는 짧고 상승기는 길다. 하락 폭은 좁고 상승 폭은 넓다. 이런 측면에서 김 씨처럼 ‘셀 앤드 바이’ 전략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