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 당권 도전…‘이재명 대체재’ 입증할 노선·청사진 보여줘야

홍영식의 정치판
세대교체 깃발 든 ‘97그룹’, 이재명 넘을 수 있을까 [홍영식의 정치판]
한국 정치사에서 세대교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 신민당에서였다. 돌풍의 주역은 ‘40대 기수’를 주창한 김영삼·김대중·이철승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43세, 김대중 전 대통령이 46세, 이철승 전 의원이 48세 되던 해였다.

신민당은 한 해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위한 3선 개헌안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기존 체제로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40대 기수론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대선 후보 지명전 출마 선언은 전격적이었고 결연했다. 그는 “박정희 씨의 3선 개헌으로 빈사 상태에서 헤매는 민주주의를 기사회생시키는 데 새로운 결의와 각오로 앞장서겠다”며 그 스스로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했다.

김대중 의원이 이어 받았다. 그는 김영삼 원내총무의 출마 선언에 대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정치적 선수(先手)치기였다”고 평가한 뒤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이에 유진산 신민당 총재가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 정치적 미성년자들이 무슨 대통령이냐”고 한 말은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하지만 낡은 진산 체제는 40대 기수론의 파고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영삼-김대중-이철승 간 경선 끝에 신민당 대선 후보는 김대중 의원이 차지했다. 김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40대 기수론은 우리 정치사에 세대교체의 대명사로 남았다.

이후 한국 정치사는 이때만큼 세대교체론이 힘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2006년 열린우리당 40대 김부겸·이종걸·김영춘 의원 등이 당권에 도전하면서 세대교체론이 부활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도 오세훈 서울시장,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강원지사 등이 광역단체장 도전에 성공하면서 40대 기수론을 이어 갔지만 대선은 어림없었다.

이듬해 나경원‧남경필‧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40대 기수론이 다시 회자되긴 했지만 중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지난해 6월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30대의 이준석 대표가 쟁쟁한 중진을 제치고 승리를 거두면서 세대교체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대표의 단독 드리블에 그친 데다 자신도 성상납 의혹과 관련한 당원권 6개월 징계로 코너에 몰려 있다. 1970년 40대 기수론에 비견할 만한 세대교체의 돌풍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시대와 미래 꿰뚫는 핵심 메시지 보여주지 못해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더불어민주당 8월 28일 전당대회에서 ‘86(1960년대생 80년대 학번)세대’인 이재명 후보에게 ‘97(1970년대생 90년대 학번)그룹’이 대거 도전장을 던져 주목받고 있다. 강병원(51)·강훈식(49)·박용진(51)·박주민(49) 의원 등이 세대교체론의 깃발을 든 것이다. 이들이 이준석 대표와 같은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세대교체에 걸맞은 새로운 비전과 시대정신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들이 밝힌 출마의 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강병원 후보=“이번 경선은 세력이 아닌 ‘새로운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젊은 인물들이 새 가치와 노선·비전을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희망을 볼 것이다. 새로고 유능한 민주당, 역동적인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재명 의원은 반성이 시간을 더 가져야 한다.”
△강훈식 후보=“ 86세대와 다르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 기본과 상식의 정치를 하고 쓸모없는 정치를 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쓸모 있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당 대표가 되면 ‘진보재구성위원회’도 만들겠다.”
△박용진 후보=“이재명 의원은 확장성이 없다. 패장이 지휘권을 갖고 대세론에 편승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이기기 위해선 당원들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민주당 이탈 세력을 복원해 승리의 광장으로 이끌겠다. 노동 시장 이중 구조 아래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정당을 만들겠다.”
△박주민 의원=“섬기고 봉사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보여주겠다. 부지런히 일하는 당 대표, 일하는 정당을 만들겠다.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범국민 공론화 기구’를 만들겠다. 당원과의 소통 면에서는 이재명 의원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당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기회와 공간을 만들겠다.”

하지만 현실을 이들의 목소리가 국민과 당원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들이 이재명 후보의 출마에 대한 비판과 윤석열 정부 공격에 초점을 두면서 국민과 당원의 눈길을 확 끌 만한 강력한 메시지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성과 혁신을 외치지만 시대와 미래를 꿰뚫는 핵심을 짚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재명에 반대한다’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재명 대체재’가 되기에도 인지도나 세력·비전·시대정신 등 어느 측면에서 보나 밀리는 게 현실이다.
“세대교체라는 흐름에 떼밀리듯 나선 모양새”

그 무엇보다 97세대들은 친문(친문재인) 대 친명(친이재명) 계파 대리전에 함몰하지 않고 이런 틀을 뒤집을 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배 86세대와 뚜렷한 차별성과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86세대들을 떠받치는 하부 조직, 행동대 정도로 여겨진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지금까지 스스로 한 일을 돌아봐도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혁신을 외치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갑자기 이런 구호를 내세우는 게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조국 사태로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를 일으켰을 때 민주당의 잇단 입법 독주로 지난해 재·보선과 올해 대선, 지방선거에서 3연패했을 때 어떤 반성의 목소리를 냈는지 박용진 의원을 제외하고 들어본 게 별로 없다. 대표 경선에 출마해서야 반성과 쇄신을 외친들 얼마나 국민과 당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스스로의 힘으로 깃발을 내세우기보다 86들이 욕을 먹으니까 세대교체라는 흐름에 떼밀리듯 나선 모양새니 그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 깃발을 스스로의 힘으로 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선거라는 것은 결과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단일화 논의도 탄력을 받고 있는 터다. 결과를 떠나 당의 고루한 관성을 깨기 위해서라도 세대교체론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세대교체는 당위론 만으로는 안 된다. 97그룹은 소수 강경 팬덤과 정면으로 맞붙을 배짱과 결기가 필요하다. 이념 위주에서 벗어나 국민의 신산한 삶을 위한 비전과 구체적 계획도 갖춰야 한다. “86과 다르다”, “이재명으론 안 된다”, “이재명과 보조 맞추는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다”고 한다면 이를 입증할 노선과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경선이 친이-반이 계파 대리전에 함몰되지 말고 97그룹만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실력을 보여준다면 설령 이번은 아니더라도 다음을 위한 씨앗을 만들 수 있다. 그러지 못하고 86그룹 용퇴론에 얹혀 적당히 구색 맞추기, 들러리 용도에 머무른다면 세대교체론은 허황한 구호에 그치고 국민의 공감을 얻기도 어려울 것이다.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