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핵심 코드…‘편견’ 깨지 못하면 발전 아닌 ‘비극’ 생겨

[스페셜 리포트- 우영우 신드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넷플릭스)
아이큐 164.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이라는 화려한 스펙을 가졌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의 취업은 동기들보다 다소 늦었다. 이는 우영우가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환자로 번번이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지만 결국 업계 2위 로펌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가 된다. 지하철을 타고 역삼역으로 향하고 통과하기 어려운 회전문을 지나 구내식당에서 김밥을 먹으며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낸다. 이처럼 그간 장애인을 다뤘던 콘텐츠와 ‘우영우’가 가장 다른 점은 우영우를 비장애인들 틈새 속, 즉 ‘사회 생활’을 하게끔 설정했다는 점이다.

우영우의 사회생활은 곧 수많은 편견과 마주한다. 3화에서 우영우는 의대생 형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자폐인을 변호하게 된다. 드라마 속 네티즌들은 ‘자폐인 대신 의대생이 죽다니 사회적 손실이다’는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법정에 선 우영우에게 상대편 검사는 “피고인이 심신 미약이면 자폐인 변호사도 심신 미약자이기 때문에 변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폐인 의뢰인을 ‘한바다’ 건물 앞에 내려 준 택시 운전사는 의뢰인을 마중 나온 우영우 대신 비장애인인 정명석 변호사에게 택시 요금을 요구한다.

편견이 만든 현대사의 반복된 비극

3화 속 우영우는 자폐인 의뢰인을 보며 한스 아스퍼거를 떠올린다.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이 반드시 열등한 게 아니다. 자폐인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경험으로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 있다.”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 연구자인 동시에 나치 부역자이기도 했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사에서 ‘편견’을 무기로 자행된 가장 큰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만나게 된다. 1940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홀로코스트를 통해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다. 동시에 나치는 독일인이라도 장애가 있거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한스 아스퍼거를 비롯한 나치 부역자들에게 유대인과 장애인은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히틀러가 대학살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편견, ‘아리아인의 순수성’을 해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치 정권은 당시 전체 유대인 수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만 명을 학살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독일 역사의 크나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영화 히든피겨스는 1960년대 나사에서 근무하는 세 명의 흑인 여성들을 다뤘다.(사진=한국경제신문)
영화 히든피겨스는 1960년대 나사에서 근무하는 세 명의 흑인 여성들을 다뤘다.(사진=한국경제신문)
인종과 성별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편견의 온상지다. 1960년대 서구권 국가들은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경쟁에 몰두해 있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우주 개발 경쟁에 치열했던 196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배경으로 계산을 담당했던 흑인 여성을 내세웠다. 당시 NASA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를 맡은 엔지니어는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과 흑인은 비서 역할을 맡거나 백인 남성 직원들이 계산한 우주선의 궤적을 복기하는 역할만을 맡았다. 1960년대 러시아보다 우주 개발 산업에서 뒤처졌던 미국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지울수록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성별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해석기하학’을 잘하는 사람들을 중책에 앉히면서 프로젝트의 성공이 가까워진다. 편견이 조직의 성장을 막고 있었던 셈이다.

인종·성별·국적을 초월해 오로지 능력만 갖고 승부하는 스포츠에서도 뿌리 깊은 편견이 있었다. 미국 프로야구(MLB)에 최초로 입성한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은 1947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데뷔 첫해 2할9푼7리, 12홈런, 48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은퇴하는 날까지 온갖 수모와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로빈슨이 브루클린 다저스의 주전 2루수로 자리 잡은 후 브루클린 다저스는 6차례의 정규 시즌 우승과 함께 1955년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를 시작으로 MLB에는 뛰어난 흑인·동양인 선수들이 등장했다. 뛰어난 선수들의 등장으로 리그의 ‘질’은 더욱 높아졌다.

명품의 대명사가 된 ‘샤넬’도 편견을 깨며 성공을 거둔 사례다. 1920년대 여성의 패션은 불필요하게 무거운 드레스와 불편한 코르셋으로 점철돼 있었다. 여성복은 불편한 것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던 시대. 이러한 편견에 의문을 던진 사람이 샤넬의 창시자 코코 샤넬이다. 그가 제안한 최초의 여성 바지 조드퍼드, 남성의 재킷에서 영감을 받은 여성 트위드 재킷은 여성들에게 자유와 멋을 동시에 선사했다. 코코 샤넬이 깬 여성복에 대한 편견은 오늘까지도 샤넬의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차별을 없애며 발전해 온 인류의 역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스튜디오지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스튜디오지니)
편견을 무너뜨리며 성장해 온 조직·브랜드·기업처럼 드라마 속 우영우의 활약도 그녀가 가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1화 속 우영우는 ‘고래 퀴즈’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몸무게가 20톤인 암컷 향고래가 500kg에 달하는 대왕 오징어를 먹고 6시간 뒤 1.3톤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암컷 향고래의 무게는 얼마일까요.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입니다. 고래는 포유류라 알이 아닌 새끼를 낳으니까요.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해요.” 모두가 형사 사건의 ‘형법’에만 집중할 때 우영우는 민법을 들고나오며 사건의 실마리를 포착해 낸다.

사람들에게 당연한 세상은 자펙 스펙트럼을 가진 영우에게는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영우는 틀에 박힌 규칙 대신 새로운 해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우영우의 ‘능력’은 동료들과 의뢰인들이 편견을 버리고 그녀를 변호사로 받아들이게 했다. 이처럼 특출난 사람들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편견을 깨는 역할을 해 왔다. 한바다의 우영우, MLB의 재키 로빈슨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보다 ‘우월하면서 동시에 열등한’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환자 중에서도 극소수의 인물이다. 영우와 같은 ‘실력자’가 없다면 소수자나 특정 집단을 향한 편견을 깨는 것은 불가능할까. 행동 과학자 프라기야 아가왈은 저서 ‘편견의 이유’를 통해 일반인들이 사회에 생겨난 수많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부모·양육자·교육자로서 후세대에게 암묵적 편향을 이식하지 않아야 한다. 또 사회 속 암묵적 편향이 어떤 과정에서 생겨났는지 이해하고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최근 편견을 깨려는 자성의 목소리가 각 산업군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젠더 혁신 연구’는 편견을 버리고 보다 정확한 연구 결과를 얻으려는 과학계의 자성의 목소리다. 그간 과학과 의학에서는 성인 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의 비율이 높았다. 성인 백인 남성이 ‘사람’ 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 카테고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발된 약은 여성과 유색 인종들에겐 더 많은 비율로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러한 문제는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사례의 79.1%가 여성에게 나타난 것으로 보고됐다.

편견에서 시작된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총 7년간 약 800억 유로(약 107조4000억원)의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최대 기술 혁신 프로그램 ‘호라이즌 2020’이 나섰다.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호라이즌 2020은 젠더 자문단을 두고 연구 과정에서 양성의 차이를 잘 반영한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젠더 혁신과 관련한 지원 과제 비율이 13.8%에서 36.2%로 증가하는 성과를 올렸다.

다양한 사회 영역에 적용되는 인공지능(AI)의 학습에도 편견이 해를 끼친다는 사례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구글 AI가 30~40대 백인 중심으로 ‘사람’의 형태를 학습했다가 흑인의 사진을 보고 ‘고릴라’라고 인식한 것은 잘 알려진 데이터 편향 사례다. 약 1년 전 한국의 스타트업이 만든 AI 챗봇 ‘이루다’는 성별·장애·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3주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인간이 가진 소수자를 향한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 이루다가 여과 없는 차별적 발언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편견을 드러낸 AI의 사례는 앞으로도 인류가 수없이 편견을 향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과거엔 당연하게 여겨졌던 소수자를 향한 편견은 이미 현대 사회에서는 ‘폐기 처분’된 지 오래다. 하지만 편견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신기술인 AI에도 녹아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미국 아마존의 AI 기반 채용 시스템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학습했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됐다. 편견을 구별할 줄 아는 인류는 기술과 사회 발전에 큰 공을 세울 수 있다. 역사는 결국 편견과의 싸움을 통해 발전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