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시너지 낼 신사업으로 콘텐츠 ‘찜’…구현모 대표, 콘텐츠 사업에 대한 이해 수준 높아

[스페셜 리포트-우영우 신드롬]
3월 23일 구현모 KT 대표가 미디어 전략을 밝히는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KT)
3월 23일 구현모 KT 대표가 미디어 전략을 밝히는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KT)
채널 ENA는 한 달 전만 해도 말 그대로 낯선 채널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 채널을 단숨에 유명 채널로 만들었다. KT가 갖고 있는 채널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려졌다. ENA뿐만이 아니다. 밀리의 서재, 지니뮤직 등도 KT가 갖고 있는 콘텐츠 플랫폼이다. 통신사에서 벗어나 콘텐츠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KT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3월 23일 구현모 KT 대표가 KT의 미디어 콘텐츠 전략을 설명하는 간담회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구 대표가 취임 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간담회 자리에 모습을 보인 날이었다. 단상에 오른 구 대표는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처럼 ‘노타이’에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을 택했다. 옷차림은 앞으로의 각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많은 예 중 하나다. 노타이와 청바지는 KT의 ‘새로운 2막’을 준비하겠다는 CEO의 의지일 것이다.

그간 KT는 미디어와 플랫폼 사업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구 대표는 “KT 미디어 플랫폼 매출이 최근 10년간 매년 평균 15%씩 늘어나면서 지난해에는 3조원 규모로 증가했다”며 앞으로도 공격적으로 시장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콘텐츠 시장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해 CJ ENM, 지상파 3사 등 기존 콘텐츠 사업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KT가 콘텐츠 시장 전략을 발표하던 지난 3월은 디즈니플러스와 HBO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까지 한국 시장을 넘보던 때였다.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히트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플랫폼 사업자들의 계산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ENA 인지도 순식간에 성장시킨 ‘우영우’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들 중에서 KT는 약자다. 방송사나 엔터테인먼트업계처럼 콘텐츠를 주로 다루지 않았고 타 OTT 사업자와 제휴하지도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직접 공식 석상에 나서서 콘텐츠 사업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의구심 섞인 시선은 여전했다.

3월 간담회에서 KT는 핵심 대작(텐트폴) 드라마를 통해 드라마 TV 실시간 시청률 순위 10위권 진입을 올 3분기 목표로 설정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KT표 콘텐츠’의 흥행은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7월 21일 방송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시청률은 유료 가구 기준 전국 13.7%, 수도권 15.0%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또 경신했다.

그간 KT는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콘텐츠 분야를 키우는 것에 몰입해 왔다. 향후 3년간 총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츠 30개 이상을 제작한다는 청사진도 밝힌 바 있다. 2023년까지 1000개 이상의 원천 지식재산권(IP)과 100개 이상의 드라마 IP를 보유한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추 역할을 맡은 곳은 ‘스튜디오지니’다. 올해 1월 신설된 스튜디오지니는 KT의 콘텐츠 투자와 제작·유통을 총괄한다.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 스토리위즈가 보유한 원천 IP를 활용해 드라마·영화·예능 등 콘텐츠를 제작한다.

기존 KT그룹이 보유했던 콘텐츠 플랫폼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ENA 등 실시간 채널을 비롯해 올레TV·스카이라이프 등 콘텐츠 플랫폼으로 1·2차 판권을 유통한다. 이후 KTH·시즌(Seezn)으로 모바일 후속 판권 유통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방영되고 있는 ENA 채널은 스카이TV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기존 채널명이던 ‘스카이’에서 4월 29일 ENA로 바꿨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히트하면서 실시간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ENA 채널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ENA는 어떤 IPTV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각 가정마다 채널 번호가 다르다.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ENA 채널이 몇 번에서 방영되는지 이제야 알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우영우’가 다른 채널에 방영됐더라면 지금의 결과물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제작 초기 단계부터 일찌감치 투자가 결정된 덕에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왔다는 분석이다. 간접 광고(PPL)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작 환경은 스토리 전개를 해치는 무리한 홍보를 ‘우영우’에서 찾아볼 수 없게 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스튜디오지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스튜디오지니)

빈약했던 유통망, ‘티빙’ 타고 극복할까

‘우영우’의 성공으로 KT는 콘텐츠 분야에서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KT가 ‘통신업’을 주력으로 삼으며 공기업 DNA가 강했던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발 빠르게 트렌드를 파악해야 할 콘텐츠 분야에서 ‘일단’ 성공을 거뒀다는 것은 상당한 수확으로 여겨진다.

통신 보급률이 포화 상태에 이른 시점에서 통신 3사는 비통신 비중을 넓혀 왔다. 콘텐츠는 통신 3사가 모두 뛰어든 분야이기도 하다. 이미 통신망이 잘 갖춰진 시점에서 콘텐츠는 기존 통신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신사업이다. 콘텐츠를 통해 통신망에 소비자를 붙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KT의 체질 개선에는 구현모 대표의 역할도 크다. 2008년 이후 12년 만에 탄생한 KT 내부 출신 CEO인 구현모 대표는 취임 이후 KT의 신사업 발굴에 몰두해 왔다. 그는 KT를 디지털 플랫폼 기업 ‘디지코(DIGICO)’로 변화시킨다는 전략을 통해 ‘탈통신’을 주도하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통신 대신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 ‘ABC 전략’을 기반으로 플랫폼과 B2B 산업을 주도한다. 특히 구 대표는 KT 대표 역임 전 커스터머&미디어부문 조직을 이끈 경험도 있어 콘텐츠 산업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KT는 신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지주형 회사’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미 미디어 분야에서는 스튜디오지니를 중심으로 미디어지니·스토리위즈·지니뮤직·밀리의 서재 등 자회사를 아래에 둔 형태로 개편을 끝마쳤다. KT의 콘텐츠 사업을 총괄하는 스튜디오지니는 중간 지주사 역할과 함께 자회사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콘텐츠 유통을 주도한다. 금융과 고객 서비스도 이와 유사한 형태로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부문 자회사 중 밀리의 서재는 이미 상장 예비 심사 청구서까지 제출한 상태다.

한편 7월 14일 KT의 OTT ‘시즌’이 CJ ENM의 ‘티빙’과 합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KT의 콘텐츠들은 한국 2위 OTT 플랫폼 티빙의 유통 채널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스튜디오지니가 자체 유통망이 빈약할 당시에는 시도하기 힘들었던 텐트폴 드라마를 제작할 여건이 티빙과의 합병으로 조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