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로운 수작업은 AI 통한 자동화로 ‘척척’…UI·UX 극대화로 2D에서 입체감 살려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디지털화 시대 가장 빠르게 변한 곳은 만화 시장이다. 1020세대도 3040세대도 만화방에 가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본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며 낄낄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젠 전혀 낯설지 않다. 잠을 청하기 전 이불 안에서 요일별 웹툰의 꿀맛을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됐다. 플랫폼에 콘텐츠가 실리고 세로 스크롤 형태로 서비스되면서 웹툰은 포털 유입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모바일 퍼스트 콘텐츠로 떠올랐다.

웹툰 시장을 이끈 주인공은 네이버와 카카오다. 다음웹툰(현 카카오웹툰)이 2003년 플랫폼에 웹툰 콘텐츠를 올리며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면 네이버웹툰은 크리에이터들이 독자의 평가를 받아 데뷔하고 성장하는 제작 환경을 구축했다.

웹툰 시장의 성장은 숫자로도 보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1500억원 규모였던 웹툰 시장은 2017년 3799억원, 2018년 4463억원, 2019년 6400억원으로 매년 30% 이상 꾸준히 증가했다. 2020년에는 1조원을 넘어섰다. 성공 신화의 주역은 창작가들이다. 그들이 내보이는 스토리에 800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울고 웃는다.

그런데 숨은 주역도 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의 개발자들이다. 정보기술(IT)은 창작자-플랫폼-이용자를 연결하고 작가들의 맛깔 나는 콘텐츠를 독자들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배경 지우기, 기본 채색 등 과거 웹툰 작가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했던 부분을 IT로 단순화하거나 화면 속에 멈춰 있던 캐릭터가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살아 움직이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아직은 낯설기만 한 웹툰과 IT의 조합. 웹툰 회사의 IT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개발자들에게 들어봤다.

웹툰 창작의 벽을 낮추는 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에는 남다른 조직이 있다. 올해 2월 기술 조직에서 별도로 분리된 ‘웹툰 인공지능(AI)’이다. AI 동영상 분석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비닷두를 품으면서 탄생한 이 조직은 웹툰과 웹소설 등 콘텐츠의 AI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현재 석박사 비율이 63% 정도다. 컴퓨터비전·NLP·데이터사이언스·MLOps 등 AI 전 영역의 인재들이 모였다. 이 조직은 또 젊다. 1990년대생들이 많다.

팀을 이끄는 김대식 웹툰 AI 리더는 비닷두를 창업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네이버 D2SF의 투자를 받아 인연을 맺었고 이후 네이버웹툰이 비닷두를 인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네이버웹툰으로 들어와 일하고 있다.

김 리더는 “그림을 잘 그리는 프로 작가가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웹툰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창작자가 단순 작업에 시간을 아끼고 더 좋은 퀄리티의 스토리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 리더가 자신있게 꼽은 기술인 웹툰 AI 페인터는 웹툰 AI 팀이 3년간 노력 끝에 개발한 서비스로, ‘금손’으로 불린다. 색깔 감각이 없는 사람들도 AI 페인터를 이용하면 채색이 쉬워진다. 예컨대 화면 속 남녀 캐릭터의 머리 부분을 펜으로 누르면 비어 있던 머리칼 색이 단번에 채워진다. 피부 밝기와 의상 색도 머리 색에 맞춰 칠해진다. 옷 색깔을 바꾸고 싶으면 클릭 한 번이면 된다. 현재까지 웹툰 AI 페인터를 활용해 채색한 작품 수는 올해 5월 기준 누적 60만 장에 달한다.

김 리더는 “딥러닝 기술로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한 1500여 작품에서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배경 등 30만 장의 이미지 데이터를 추출해 다양한 채색 스타일을 학습시켰다”며 “실사 사진을 웹툰화시켜 배경 작업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배경 자동 생성 기술’과 사진을 올리면 웹툰 캐릭터로 바뀌는 ‘얼굴 변환 기술’ 등을 추가로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창작자 간 소통을 돕는 기술도 있다. ‘위툰(We-toon)’은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협업하는 과정에서 ‘눈을 이런 느낌으로 바꾸고 입을 조금 다물면 좋을 것 같다’라는 수정 의견을 위툰을 통해 이미지를 생성해 전달하면 글로 전달했을 때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수정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목구비 배치·크기·표정 등 캐릭터의 얼굴에 한정해 연구를 진행한 상태다.

또 김 리더는 “캐릭터들의 2차 창작(애니메이션‧영상화) 과정에서 AI 기술을 통한 자동화로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리하면 ‘창작자의 작업을 돕는 기술’이 네이버웹툰의 지향점인 셈이다. ‘도전 만화(누구나 작품을 연재하고 이용자 선택에 따라 정식 작가로 활동할 수도 있는 시스템)’부터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네이버웹툰의 정체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웹툰 AI 페인터를 활용해 캐릭터에 색을 칠하는 화면. 사진=웹툰 AI 페인터 홈페이지 캡쳐
웹툰 AI 페인터를 활용해 캐릭터에 색을 칠하는 화면. 사진=웹툰 AI 페인터 홈페이지 캡쳐
사용자 경험 중시하는 카카오엔터
반면 카카오엔터는 사용자 환경(UI)과 사용자 경험(UX)에 초점을 뒀다. 2004년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를 세로 스크롤 형태로 서비스하면서 PC‧모바일 세대의 본격적인 웹툰 시대를 열었다. 2021년 다음웹툰을 카카오웹툰으로 리브랜딩하면서 섬네일(그림) 이미지에 갇혀 있던 캐릭터들을 3~5초간 살아 움직이는듯한 형태로 구현해 IPX(IP 경험)를 극대화했다. 카카오페이지에선 효과음과 대사를 삽입해 1분 분량의 웹툰 소개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독자들이 짧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작품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강석홍 카카오엔터 플랫폼개발실장은 “IPX 기술은 제작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며 “정지된 그림보다 움직이는 그림이 용량이 큰데 이를 글로벌 플랫폼에서도 잘 구동되도록 한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2017년 다음웹툰 2.0 때부터 시도됐었는데 당시 용량이 상대적으로 큰 GIF 포맷을 이용했었다. 이후 카카오웹툰을 개발하면서 배경과 움직이는 캐릭터 이미지를 별도로 활용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다채로운 애니메이션 효과를 활용하면서도 용량을 굉장히 압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음웹툰 시절부터 개발을 맡았던 강석홍 실장.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육아로 바쁘지만 출퇴근 시간 등 틈틈이 웹툰을 챙겨보고 있다. 강 실장은 “웹툰 플랫폼은 웹툰이 담기는 공간이자 콘텐츠와 독자 사이의 소통을 잇는 공간이기 때문에 독자의 관점에서 웹툰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는 웹툰을 좋아한다.

강 실장이 가장 자신 있게 꼽는 개발 사례는 얼라이브(ALIVE) 뷰어다. 웹툰과 영화 시나리오를 동시에 개발한 ‘승리호’ 얼라이브 영상은 웹툰을 2D를 넘어 입체적으로 표현한 첫 사례다. 유저가 상하로 스크롤을 하면 카메라가 이동하는 것처럼 화면이 줌 아웃되면서 독자는 지면에서부터 ‘승리호’가 떠다니는 우주로까지 유영하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동시에 배경 음악(BGM)도 바뀐다.

강 실장은 “얼라이브라는 새로운 뷰잉(viewing) 방식을 개발해 2D 웹툰에서도 작품의 분위기를 현실감 있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뒀다”며 “독자의 세로 스크롤 액션을 기반으로 콘텐츠 표현에 특화된 기술로 특허 출원까지 마쳤다”고 설명했다.

한편 카카오엔터는 2021년 3월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이 합병해 출범했다. 그해 9월 멜론까지 합류해 현재 스토리·미디어·뮤직 등 3개의 주요 사업을 영위한다. 카카오엔터의 IT 조직은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멜론·카카오TV 등의 플랫폼 개발 조직과 데이터 전략, AI 연구 개발 조직으로 구성된다.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픽=송영 기자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픽=송영 기자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