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부회장인 이재용 부회장, 사라진 컨트롤 타워·지배 구조 개편·경영 철학 못 보여준 오너십

[비즈니스 포커스]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2년 3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2년 3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언제 회장에 취임할까. 회장에 오른다면 그룹 컨트롤 타워를 복원할까. 복잡한 지배 구조 문제를 풀 해법은 갖고 있을까.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이 부회장이 복권 가능성에 힘이 실리면서 그동안 삼성이 미뤄 온 숙제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 사면을 통해 복권이 되는 것이다. 이 부회장 복권을 계기로 삼성은 밀린 숙제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① 10년째 부회장인 이재용

이 부회장은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10년째 부회장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 총수 중 부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직함만 부회장일 뿐 이 부회장은 고 이건희 회장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경영 전면에 나서 그룹 경영을 총괄하며 실질적으로 총수 역할을 해왔다.

이 부회장이 복권되면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가 다소 해소되면서 연내 회장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글로벌 복합 위기 국면에서 삼성의 성장을 이끌었던 스마트폰·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등 기존 주력 사업의 수익성이 주춤하며 미래 성장성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회장 타이틀을 달고 권리와 책임을 떠안고 삼성그룹의 새 먹거리 사업을 챙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② 사라진 컨트롤 타워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면 과거 미래전략실(미전실)과 비슷한 성격의 그룹 조직이 부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총수 직속 조직인 미전실은 지금의 기업집단 ‘삼성’을 만든 주축이었다. 1959년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 비서실에서 출발해 구조조정본부(구조본)·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가며 58년간 명맥을 유지해 왔다.

‘비서실-구조조정본부(구조본)-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이어진 삼성그룹의 컨트롤 타워는 총수의 비전을 계열사가 현실화할 수 있도록 그룹이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제시해 왔다. 수백여 개의 국내외 계열사로 이뤄진 그룹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통제하고 계열사 간 역할을 조정하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늘도 있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미전실이 적폐로 지목되면서 삼성은 2017년 3월 미전실을 전격 해체하고 각 계열사 자율 경영 체제를 선언했다. 삼성은 ‘삼성그룹’이라는 말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삼성은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온 미전실 해체 후 미전실을 대체할 수 있도록 2017년 삼성전자(사업지원TF), 삼성생명(금융경쟁력제고TF), 삼성물산(삼성물산(EPC 경쟁력강화TF))에 사업별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각 사업지원TF는 이 부회장의 수감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 생긴 조직이다.

하지만 조직 내부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TF는 권한은 그룹 조직 역할을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고 그룹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컨트롤 타워가 부활할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삼성은 정경 유착이나 밀실 경영의 상징처럼 각인된 미전실을 되살린다면 자칫 ‘구태의 부활’이라는 오해를 살 것이란 우려 때문에 신중한 반응이다.

앞서 2021년 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자문을 의뢰했던 삼성 지배 구조 개편 관련 컨설팅 결과 BCG는 삼성그룹의 컨트롤 타워 복원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5월 대내외 리스크를 통합 관리하는 상시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로 경영지원실 지원팀 산하에 사업위기관리(BRM)그룹을 신설했다.

사실 삼성그룹 조직 해체는 누가 요구한 것이 아니다. 과거 청문회 과정에서 한 국회의원 질문에 이 부 회장이 답변하면서 이 문제를 스스로 언급했다. 정부 관계자들도 이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③ 남아 있는 지배 구조 개편

이 부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중단된 미완의 지배 구조 개편 작업도 중요한 해결 과제다. 삼성전자가 최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 등에서 근무한 기업 지배 구조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등기 임원 복귀를 앞두고 지배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2021년 ESG 평가에서 환경(E)과 사회(S) 부문에서는 각각 A, A+등급을 받았지만 지배구조(G) 부문에서는 B등급을 받아 취약성을 드러냈다.

삼성은 2013년부터 지배 구조 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당시 순환 출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계열사 합병과 지분 정리 등을 통해 2013년 80여 개에 달했던 순환 출자 고리를 2018년 모두 끊었다.

삼성 지배 구조는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의 연결 고리로 이뤄져 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의 지분 31.9%를 보유하고 이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고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절반을 이 부회장이 상속받으면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8.13%)이자 삼성생명의 2대 주주(10.44%)가 됐다.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한 지배력을 높여 안정적 경영이 가능하게 됐다.

남은 변수는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8.51%)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해결 과제다.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중 총자산의 3%인 9조원어치를 제외한 나머지 32조원어치를 모두 처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지면서 지배 구조가 흔들릴 수 있어 묘수가 필요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넷째)이 2022년 6월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에서 방호복을 입고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넷째)이 2022년 6월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에서 방호복을 입고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④ ‘PI’ 보여주지 못한 오너십

대표자의 최고경영자 이미지(PI : President Identity)가 뚜렷하지 않다는 문제도 고민해 볼 때다. 고 이건희 회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신경영 선언), 신경영을 삼성 내부 임직원에게 설파하며 제시한 내용을 담은 ‘지행 33훈’, 150억원에 달하는 제품을 폐기했던 ‘불량 제품 화형식’ 등 후대에 회자되는 수많은 경영 철학과 수식어를 남겼다.

이 부회장에겐 자신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로서의 PI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사실 이 부회장은 그간 한·미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 등 국가적 차원의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경영을 넘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넓고 깊은 해외 네트워크는 위기 때마다 진가를 발휘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선 마스크 생산과 백신 확보로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와 채용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첫째 과제에서도 언급했듯이 수년간 이어진 사법 리스크에 묶여 투자 규모 대비 소극적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어 일각에선 뚜렷한 색깔을 아직 구축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재계 3세 경영인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과 비교해서도 이 부회장을 대표하는 경영 철학이나 CEO로서의 개인적 정체성(PI)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정 회장은 2020년 회장 취임 이후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전통 자동차 제조 업체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며 글로벌 리더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정 회장은 로봇·인공지능(AI)·자율주행·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미래 사업을 추진하면서 아버지(MK) 시대와 완전히 작별했다.

구광모 LG 회장은 2018년 회장에 올라 선택과 집중, 과감한 사업 재편으로 비주력 사업을 철수하면서 LG그룹의 체질 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 철수 결단은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에 집중하는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부족한 포지셔닝을 보완하기 위해선 자신만의 PI 구축과 더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돋보기]
메모리 반도체 겨울 오는데…삼성, ‘전자’의 시대 계속될까

삼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중심 체제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동안 삼성에서 전략이란 주로 삼성전자에만 해당되며 삼성그룹에서 전자와 다른 계열사들의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는 평이 많았다. “삼성그룹은 전자와 후자(전자를 제외한 기타 계열사들)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복권 이후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캐시카우를 찾는 것도 시급하다.

하지만 잘나가던 삼성전자도 최근 흔들리고 있다. 2022년 초 갤럭시 S22를 출시하면서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 논란으로 집단 소송에 휘말려 브랜드에 대한 신뢰 문제가 불거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도시 봉쇄, 고물가 등의 영향으로 스마트폰 수요가 감소했다.

시장 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출하량은 지난해 4분기 3억7140만 대에서 올해 1분기 3억2640만 대로 4500만 대(12.1%) 줄었다. 2021년 1분기(3억5490만 대)와 비교해도 8.0%(2850만 대)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생산 목표치도 3억3000만 대에서 3억 대 이하로 하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술(IT) 기기에 대한 수요 감소가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올해 하반기에는 ‘반도체 겨울’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년 동안의 슈퍼 사이클이 끝나고 전 세계 반도체 업황이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과 반도체 사업이 상호 보완하며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구현해 왔다. 소비재인 스마트폰과 생산재인 반도체의 사이클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반도체 하락기에는 스마트폰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반도체를 대체할 마땅한 캐시카우가 없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