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컸지만 단 네 명에 불과…재계에선 ‘반쪽 사면’ 지적도 나와

[비즈니스 포커스]
‘광복절 경제인 사면’이 논란 되는 이유
지난 광복절 특사에 대해 재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인 사면의 폭이 예상보다 적었고 기준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8월 15일 광복 77주년을 맞아 1693명에 대해 특별 사면·감형·복권을 실시했다. 정치인 사면은 한 명도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기업인 중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등 단 4명이 사면 복권을 받았다.

당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등 경제 단체는 광복절 사면을 앞두고 총 50여 명에 달하는 경제인의 특별 사면을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사면 복권에 뒷말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면을 확정한 직후 “제일 중요한 것이 민생이다. 민생은 정부도 챙겨야 하지만 경제가 활발히 돌아갈 때 거기서 숨통이 트이기 때문에 거기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이 좁았을 뿐만 아니라 원칙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큰 기대 모았지만…실망 가득한 재계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이번 광복절 사면이 그 어느 때보다 재계의 큰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사면권은 대통령이 가진 고유 원한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하지 않았다.

출범 초부터 ‘대기업 개혁’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를 깨뜨려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고자 했다. 경제인에 대한 사면 실시는 이런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 따라서 한 명의 기업인도 사면받을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다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자 재계에는 기대감이 커졌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외풍에 취약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며 한국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정책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늘 제기돼 왔다.

대내 사정도 나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저해할 여지가 있는 정책들이 쏟아지며 재계에서는 ‘기업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민간과 기업이 주도하는 성장 이른바 ‘윤석열노믹스’를 기치로 내걸며 친기업 행보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성장을 내세웠기 때문에 사면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이번 광복절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업인들이 사면될 것이라고 재계가 기대한 배경이다.

실제로 정치권과 대통령실에서도 광복절 사면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3고(고유가·고금리·고환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살리기와 민생 회복을 위한 의지를 담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경제 단체에서도 50명이나 되는 기업인들의 사면을 정부에 건의한 것도 이런 기대감이 한몫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경제인 사면은 총 4명에 불과했다. 사면이 확정된 후 나온 경제 단체의 목소리에서도 실망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대한상의는 사면이 확정된 직후 “기업인의 사면 복권이 이뤄진 것을 환영하지만 사면의 폭이 크지 않은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는 논평을 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첫 사면이었던 만큼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인들의 사면이 대거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 사면 배제는 ‘패착’ 지적도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면에 대해 ‘기준과 원칙이 모호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대체적으로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면에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삼성과 롯데가 한국 경제에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들의 사면 복권은 반드시 이뤄졌어야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강덕수 전 STX 회장이 포함된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반응이 나왔다. 경제 단체에서 특별 사면을 건의한 수많은 기업인들이 사면 복권되지 못했는데 왜 장 회장과 강 전 회장이 사면 대상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특별 사면 기준과 원칙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장 회장은 회삿돈을 빼돌려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이번에 특별 사면됐다. 2007년에 이은 둘째 사면이기도 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에 특별 사면 대상에 올랐던 경제인들에 비해 범죄 사실이 무거운 데다 회사와 관련한 잡음마저 발생한 상황에서 다른 경제인들을 제치고 특별 사면을 받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동국제강은 최근 철근 입찰 담합 협의로 인해 과징금을 부여 받고 검찰에 고발당한 상태다.

강 전 회장은 ‘경제 살리기’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특별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에 의문 부호가 따라붙는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STX그룹은 해체된 지 오래여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미지수”라며 “차라리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나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 등이 사면됐으면 기업의 투자와 여기에서 발생하는 고용 효과 등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더 컸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경제인 사면이 축소된 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데 일각에서는 한동훈 검찰총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한 장관이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려고 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특별 사면이 이뤄지는 것 자체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을 우려해 규모가 축소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경제인이 사면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재용·신동빈이라는 두 거대 기업인이 이번에 사면됐다는 것은 앞으로도 경제 활성화에 큰 기대를 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경제인 사면이 윤 대통령 임기 동안 추가적으로 기업인들의 사면이 이뤄질 수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경제인보다 이번에 정치인 사면을 단 한 명도 단행하지 않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의견도 나왔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것은 윤 대통령의 ‘패착’이었다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팬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은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번에 이 전 대통령을 사면했어야 했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을 사면했더라면 보수층을 결집시켜 지지율이 반등하는 효과를 누렸을 것이다. 그리고 높아진 지지율은 추후 국정 운영에 한층 탄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