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 기술 기업- 에이치투

[ESG 리뷰]
한신 에이치투 대표와 연구원이 에너플로우43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서범세 기자
한신 에이치투 대표와 연구원이 에너플로우43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서범세 기자
에이치투(H2)의 최종 목표는 석탄·가스 발전소를 대체하는 흐름전지(플로 배터리)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탄소 배출 저감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이다. 화석 연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미래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기도 하다. 각 국가의 탄소 중립 선언과 에너지 안보의 부상으로 에너지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에이치투는 화석 연료를 정조준한 혁신 기술로 시장 정복에 나섰다.

에이치투는 장주기 에너지 저장 장치(ESS)인 흐름전지와 솔루션을 연구·개발(R&D)하는 기업이다. 전지는 통상 방전 지속 시간이 4~6시간을 초과하면 장주기, 그것보다 짧으면 단주기로 분류한다. 리튬 이온 전지는 4시간 정도 에너지를 방전할 수 있는 단주기 배터리이기 때문에 큰 에너지를 저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발전소를 만들려면 대용량 저장 공간이 있는 배터리가 필요하다. 한신 에이치투 대표는 그 해결책을 흐름전지에서 찾았다.

한 대표는 “에이치투는 화석 연료 발전소를 대체한다는 목표로 세운 기업”이며 “이를 위해 대용량 에너지를 방전할 수 있는 긴 수명의 배터리를 찾아야 했는데 흐름전지가 여기에 부합했다”고 말했다. 그는 “리튬 이온이 단거리 선수라면 흐름전지는 장거리 선수인 셈”이라며 “에이치투는 흐름전지와 함께 에너지의 장거리 경주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상업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만족

에이치투의 바나듐 레독스 플로 배터리(VRFB)인 에너플로우430과 330은 최대 20년, 2만 사이클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장주기 배터리다. 장주기 ESS 중에서도 상업성이 가장 높은 바나듐 소재를 사용했다. 에너플로우430은 에너지 용량 385kWh의 컨테이너 모듈형 제품으로, 4시간에서 10시간까지 방전 용량 설계가 가능하다. 모듈 확장을 통해 대용량화도 가능한 제품이다. 에너플로우330의 기본 단위 용량은 60kWh로 소규모다. 부피가 상대적으로 작은 모듈화 제품이기 때문에 응용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하다.

에이치투의 흐름전지는 출력을 담당하는 스택과 에너지 용량을 담당하는 전해액으로 구성돼 있다. 전기가 생산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전해액이 내부로 흘러 들어가 산화·환원의 가역적(역과정이 순과정과 동일한 경우) 화학 반응을 거쳐 충전과 방전이 이뤄진다. 전지 내 양극과 음극 탱크에 있는 전해액에 에너지가 저장돼 필요한 때 공급할 수 있다.

VRFB는 전해액의 양에 따라 발전량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다. 전해액은 전지의 연료탱크 같은 개념이다. 전해액을 많이 넣을수록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도 늘어난다. 수명도 리튬 전지보다 긴 20년을 자랑한다.

리튬 이온 대비 안전성도 뛰어나다. 리튬 이온의 전해액은 휘발성 유기 용매다. 원료 자체가 지닌 화재 위험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화재가 발생하면 전소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고 불화 수소라는 화학 물질이 발생해 화재 현장의 위험도가 높다.

에이치투의 흐름전지는 물 성분의 수계 전해액을 사용하므로 화재 위험이 없다. 같은 이유로 전해액 재활용도 가능하다. 전해액은 내부에서만 순환하며 화학 물성의 변화가 없는 물이기 때문에 배터리 수명이 끝나고 다시 다른 배터리의 전해액으로 쓸 수 있다. 바나듐 역시 사용 수명이 끝난 이후 광물 시장에 재판매할 수도 있다. 한 대표는 “화학적 폐기물이 나오지 않고 재활용도 쉽다는 점에서 친환경과 가장 가까운 배터리”라고 강조했다.

에이치투가 집중하는 주요 시장은 발전·송배전 분야다. 발전 시장은 말 그대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 공기업들이 주로 담당하는 석탄 발전소와 가스 발전소의 역할이다. 송배전은 송배전 효율을 향상시켜 간헐성이나 송배전망의 오류를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2가지 역할을 모두 만족하는 생산 역량이 확대되면 실제 발전소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에이치투의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흐름전지 전력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서범세 기자
에이치투의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흐름전지 전력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서범세 기자
에너지업계를 바꾸는 플로 전지

한 대표가 VRFB를 발견한 것은 2010년이다. 그는 카이스트 기계공학 박사 출신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로 회사를 세웠다.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꿀지는 이후에 고민하기로 했다. 한 대표가 찾는 아이템의 조건은 2가지였다. 첫째는 시장의 성장 전망이 좋아야 하고 둘째는 현재 시장에 지배적 플레이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대표는 창업 전 근무한 내연기관 발전업계에서 힌트를 얻었다. 업계의 가장 큰 고충은 화석 연료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이었다. 글로벌 차원의 탄소 배출 규제가 윤곽을 보이기 시작했다.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발전이 주요 비즈니스였던 업계는 이 기준을 맞추는 것이 생존 과제가 됐다. 한 대표는 탄소 배출을 상쇄하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현존하는 석탄과 천연 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발전소를 떠올렸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를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장주기 ESS를 발전소의 주요 전력 공급원으로 봤다. 신재생에너지는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지만 간헐성 문제를 해결해야 안정적 공급이 가능하다. 기상 상황이 나쁘면 전력 생산이 불가능하고 기껏 생산해 낸 전력도 사용 시까지 저장할 방법이 없어 버려지기 일쑤다. 한 대표는 “에너지 저장이 가능하고 필요한 시점에 꺼내 쓸 수 있는 대규모 에너지 저장 공간은 장주기 ESS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마침 2010년 당시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가와 기업 차원의 지원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신재생에너지가 성장하면 이를 저장하는 대용량 ESS의 성장도 이뤄지기 마련이다. 시장 성장 전망도 좋고 흐름전지를 연구하는 한국 기업도 없었다. 한 대표가 원하던 아이템의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한 것이다.

에이치투는 이후 10년 이상의 연구를 통해 한국 최초, 유일의 흐름전지 사업자가 됐다. 흐름전지로는 한국 최초로 신제품(NEP) 인증과 단체 표준 인증, 중소벤처기업부 혁신 제품 인증, 미국 수출을 위한 스택의 UL1973 인증을 획득함으로써 기술에 대한 신뢰성도 확보했다.

미국 최대 흐름전지 발전소 건립

에이치투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현재 대표적 VRFB 기업은 일본의 스미토모, 오스트리아의 셀큐브, 영국의 인비니티, 한국의 에이치투 등 4개 정도다. 스미토모가 선제적으로 캘리포니아에 8MWh 규모의 VRFB ESS를 설립했다. 하지만 에이치투가 최근 캘리포니아에 20MWh 규모 흐름전지 발전소 설립 사업을 따내며 미국 1위 발전소는 에이치투의 몫이 됐다. 이 발전소는 지난해 11월부터 사업화 논의를 시작했고 2024년 준공될 예정이다. 발전소가 예정대로 완공되면 2024년 하반기부터 상업 운전에 들어갈 수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2050 탄소 중립 선언과 맞물려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발표하는 국가들이 장주기 ESS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투자도 이뤄진다. 2020년 장주기 대용량 ESS에 대한 첫 입찰이 등장했다. 규모는 4GWh. 석탄 화력 발전소 1기에 맞먹는 사업 규모다. 한 대표는 2023년 시장 규모를 14조원대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이 유망하다. 캘리포니아는 재생에너지업계의 실리콘밸리다. 석탄을 이용한 화력 발전소가 아예 없다. 하나 있는 원자력 발전소도 2년 후 폐원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에이치투는 이미 캘리포니아에 미국 1위 흐름전지 발전소 건립을 예고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핵심 교두보를 확보한 상태다.

캘리포니아는 GWh급 장주기 ESS 의무화 및 보조금 지급 등으로 비리튬계 ESS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 가고 있다. 2023~2024년에는 주정부 지원금으로 4500억원을 투입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탄소 중립이 국가적 과제가 된 이후 에이치투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투자 시장의 러브콜이 쏟아진다. 한 대표는 “기존과 다르게 지난해 시리즈 B 투자(172억원)에 소셜 벤처, 임팩트 투자사가 투자자로 대거 참여했다”며 “2020년까지 재무적 관점에서 이뤄진 투자가 많았다면 지난해부터는 ESG 관점,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투자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에이치투는 최근 KT&G에서 3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실제 대기업의 재생에너지 생산 파트너로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

하지만 본격적인 시장 확장을 위해서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한 대표는 리튬 이온에 집중된 인센티브 정책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한 대표는 “ESS는 크게 13종류의 애플리케이션이 있는데 정책적 지원은 리튬 이온에 한정돼 있다”며 “이게 다양한 ESS 확장의 장벽이 된다”고 말했다.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에너지원을 육성해야 하는데 그 첫 단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캘리포니아는 비리튬계 ESS 기술 육성을 의무화하고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리튬 이온 전지는 이미 성숙한 기술이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도 ESS 기술 다변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SS 규제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다. 리튬 이온 전지가 지닌 가장 큰 리스크는 화재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9년 옥내 설치 제한, 소방 시설 설치 등 안전 조치를 의무화했다. 이러한 규제는 전체 ESS에 일괄 적용됐다. 한 대표는 “인센티브는 지원 대상이 리튬 이온 전지에 한정돼 있는데 안전 조치는 전체 ESS 사업에 일괄 적용되고 있다”며 “흐름전지는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위험성이 아예 없다.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규제가 오히려 사업 기회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정부가 오는 연말 발표할 ‘제10차 전력 수급 계획’에 다양한 무탄소 신전원을 언급할 가능성이 높아 변화가 기대된다. 신재생에너지에 포함되는 여러 기술이 전력 수급 계획에 포함돼야 이후 정책 지원과 민간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전력 수급 계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바꾼다.’ 에이치투의 장기 목표는 한 대표가 세운 회사의 창립 목적과 일치한다. 전 세계 석탄·가스 발전소를 대체하는 흐름전지 발전소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걸음이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이다. 한국에는 내년 1분기까지 330MWh의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미국 현지 공장 건립과 함께 연간 1GWh급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장기 목표다. 이후 2023년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한 대표는 “탄소 중립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글로벌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장주기 ESS 분야의 이머징 테크놀로지는 많다. 하지만 실제로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은 리튬 이온과 흐름전지가 가장 유력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리튬 이온과 흐름전지로 이원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396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