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과 강경 친명계가 당 석권, 무한 독주는 외연 축소 불러…이 대표, 이들과 손절이 관건

[홍영식의 정치판]
사진설명

이재명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뒤 손을 맞잡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 박찬대 고민정 최고위원, 이 대표, 정청래 서영교 최고위원. 국회사진기자단
사진설명 이재명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뒤 손을 맞잡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 박찬대 고민정 최고위원, 이 대표, 정청래 서영교 최고위원. 국회사진기자단
“여러분이 미래 운명을 통째로 맡겼는데 충분히 받아들 이지 못했다. 저도 민주당이라는 큰 그릇 속에 점점 갇혔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 20일 충남 논산 화지중앙시장 즉석 연설에서 한 말은 당 안팎에 많은 논란을 불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민주적 공당이 아닌 대통령 후보 개인의 사당의 길을 가겠다는 발상에서 청와대 독재가 싹트고 집권당이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계에선 “질겁했다(이상민 의원)”고 직격탄을 날렸다.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뜻”이라는 친명계의 항변이 무색하게 지난 8·28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이재명당’이라는 그림이 완성됐다. 전당대회에서 뽑힌 최고위원을 보면 고민정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친명계가 당선됐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는 전략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치밀하게 작동됐다. 지난해 이 대표가 대선에 나섰을 때만 해도 그의 최대 약점은 당내 세력 기반 취약이었다. 그의 지지 세력은 숫적으로만 보면 친문재인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이 대표가 당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대중 정치인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외곽을 때려 당에 충격을 가하는 식이다. 주역은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들(양심의 아들)’ 등 팬덤이다. 전체 당원 중 팬덤의 비율이 10%도 안 된다지만 양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단순 지지를 넘어 이 대표와 일체화하면서 여론을 주도한 팬덤과 보통 당원의 힘은 비할 바가 아니다.

당내에선 ‘처럼회’로 대표되는 강경 친명계가 당론을 좌지우지했다. 팬덤과 처럼회가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처럼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며 이재명당으로 만들어 나갔다. ‘지지율이 깡패’라는 철칙이 있듯이 여론전에 성공을 거둬 대세를 형성하면 당내 눈치를 보던 의원들도 줄을 서기 마련이다. 더욱이 친문재인 구심점도 사라진 데다 당내에서 이 대표 만큼 윤석열 대통령과 싸워 줄 지도자감,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는 터다.

당 지도부도 친명계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챗봇’에 불과했다면 과한 혹평일까. 보통 현안에 대한 후보 간 이견이 크면 당 지도부는 형식상으로나마 공정을 유지했지만 우상호 비대위 체제는 오로지 ‘이재명당’을 위해 이런 상식마저 내버렸다.
팬덤·처럼회 주도, 대선 패배 5개월 만에 ‘이재명黨’

이들이 주도한 ‘이재명 방탄’의 신호탄은 ‘검수완박’이었다. 팬덤에서 강력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고 처럼회가 당내에서 뒤받쳐 줬으며 당 지도부가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이재명 방탄 2호인 당헌 80조 개정도 팬덤발→처럼회 행동→지도부 수용 절차를 밟았다. 당초 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없애려는 시도는 비명계의 거센 반발이 일자 그 내용은 그대로 두되 정치 보복으로 인정되는 경우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당 윤리위에서 대표 입김이 강한 당무위로 바꾸는 꼼수까지 썼다.

당 중앙위 통과가 좌절되자 이 대표의 셀프 개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사부재의’의 상식도 깨고 전당대회 이틀 전에 기어이 관철시켰다. ‘더불어재명당의 길을 닦았다’는 한 당원의 글은 팬덤·친명계·지도부가 삼위일체가 돼 만든 든든한 방탄 3호를 상징한다. 친명계가 김진표 국회의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안한 ‘여야 중진 협의체’에 대해 이 대표의 힘을 뺄 수 있다며 반기를 든 것은 협치마저 부정하는 계파 아집·독단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중진이 물밑에서 움직여 협치의 돌파구를 마련한 전통마저 부정하는 처사다. 우리 정치사의 제왕적 총재 시절에도 좀체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다.

하지만 과하면 체하는 법이다. 이런 독주 체제는 민주당에는 독이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 대표는 대표 경선 과정에서 팬덤 논란에 대해 “많은 분들이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걱정한다”며 “이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민주주의 강화뿐”이라고 했다. 당원들의 생각이 여의도와 다른 만큼 이들의 의견을 당에 직접 투영시키겠다는 뜻이다. 이 역시 대중 정치인의 한 속성을 보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지만 독소가 들어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숙의를 거치기 어려운 만큼 자칫 또 다른 ‘대중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 이미 증명이 됐다. 2020년 총선 때 강성 당원들의 뜻에 따라 위성 정당을 만들어 의회 민주주의의 왜곡을 부른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재·보선 때 민주당은 강성 당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민심을 거스르고 자신들에게 귀책 사유가 있을 때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고쳐 후보를 냈다가 참패했다. 강성 당원들의 입김에 폭주 입법을 거듭하다가 정권을 빼앗겼다. 반대의 목소리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으로 낙인 찍혀 팬덤의 조리돌림을 당하니 숙의 민주주의는 발붙일 틈이 없는 게 민주당이 처한 현실이다.

이 대표가 77.77%의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무한 독주의 터전이 마련됐다. 벌써부터 친명 최고위원들과 강경파 의원, 팬덤은 김건희 여사 특검을 추진하는 등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각을 한층 곧추세우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제2 검수완박 입법 마무리, 꼼수 탈당한 민형배 의원의 복당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재명은 잘나가는데 민주당은 거꾸로인 역설

이 대표가 이에 호응해 대여 초강경을 치달으면 당 대표직은 더 굳건해질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선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은 포기해야 한다. 강경 지지층에 갇힌 결과가 지난 대선·지방선거 패배라는 점을 보면 민주당으로선 이 대표 독주 체제가 짐이 될 수 있다. 이재명은 잘나가는데 당은 거꾸로인 기막힌 역설이다. 더욱이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검경 수사로 인한 사법 리스크까지 떠안야 하는 것은 민주당으로선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

이 대표의 70%대 득표율이 강고한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당에 대한 충성도 높은 권리당원 투표율이 전국적으로 30%대밖에 안 된다는 것은 ‘너희들끼리 잘해 봐라’라는 냉소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친명 일색의 당 지도부는 역으로 말하면 시행착오의 책임도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의미다. 힘이 한쪽에 너무 쏠리면 줄서기, 눈치 보기, 조직 무기력을 낳을 수 있다.

민주당 내에선 우려가 벌써 나온다.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가 지난 두 달간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낸 ‘지지층에 매몰돼 외연을 넓히는 데 실패해 선거에서 연전연패했고 반(反)윤석열로만 가서는 외연 확장이 어렵다’는 보고서는 핵심을 관통한다. 핵심 지지층의 목소리가 국민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팬덤과 처럼회가 끄는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면 ‘더불어재명당’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 대표로선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만 녹록하지 않다. 이 대표는 이들과 과감하게 ‘손절할 수 있을까’가 1차 관건인 셈이다.

이 대표의 과제는 이 밖에도 여럿 있지만 무엇보다 말의 신뢰부터 얻는 것이 급선무다. 툭하면 뒤집기, 남 탓, 갈라치기 등 ‘안면몰수 화법(강준만 전북대 교수 표현)’으로 어떻게 더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