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출판’ 늘면서 함께 성장…책방 넘어 ‘문화 사랑방’으로
[스페셜 리포트] 누구나 일본의 쓰타야, 영국의 셰익스피어앤컴퍼니를 꿈꿀 것이다. 원대한 목표로 시작했지만 ‘동네 서점’들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쉬운 게 아니다. 독서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고 온라인 서점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계산기만 두드리자면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용기를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단순한 경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다. 동네 서점이 갖는 가치가 바로 그렇다.
북카페에서 독립 서점까지, ‘동네 서점’의 변천사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22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한국의 서점은 총 2528개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2320개보다 208개(0.9%) 늘어난 것이다. 편람 발행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0.9%라는 숫자는 언뜻 보기엔 작아 보이지만 서점업계에서는 나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왜 증가했을까.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2020년부터 현재까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서점들이 개점했고 지역 서점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보편화됐고 공공 기관 도서 구매 시 지역 서점을 우선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지역 서점의 생존 기반이 마련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시 ‘동네 서점’의 전성기가 오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문화 중심지’인 서울에서 출발했다. 서울은 골목마다 다양한 동네 책방이 자리 잡은 도시다. 그중에서도 과거 출판사들이 즐비했던 홍대·연남동·합정동 인근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작은 서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한국의 카페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커피와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북카페가 등장했다. 이곳들은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직영 카페로 각 출판사의 책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발 빠르게 신간을 소개했다. 후마니타스 책다방, 카페 정글, 카페 꼼마가 대표적인 북카페였다.
서점에 카페를 더할지 말지는 지금도 책방 주인들이 겪는 ‘딜레마’다. 커피로 손님을 모으는 효과도 있지만 ‘서점’의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취식을 하다 책이 손상될지도 모른다는 ‘책 덕후’ 사장들의 노파심도 있다.
201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등장한 책방들은 서점이 갖는 정체성, 즉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특징이 있다. 책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소개하느냐다.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출신인 최인아 대표가 2016년 문을 연 ‘최인아책방’은 역삼동의 명소가 됐다. 이곳이 유명세를 탄 이유는 ‘큐레이션’ 때문이다. 기존 서점들이 인문·소설·경제 등 책의 종류에 따라 분류했다면 최인아책방은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독특한 큐레이션 방식으로 한국 서점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명인들도 책방에 뛰어들었다. 가수 요조는 2015년 종로에 문을 연 ‘책방무사’를 제주도로 옮겼고 작년 말 홍대에 ‘책방무사 2호점’을 냈다. 요조가 직접 큐레이션한 책들로 꾸며진 곳으로 이미 홍대 책방 주인들에겐 한 번쯤은 가 봐야 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소영 전 MBC 아나운서도 당인리 책 발전소, 책발전소광교를 운영 중이다. 김 전 아나운서는 저서 ‘진작 할 걸 그랬어’를 통해 MBC를 그만두고 서점 창업에 뛰어들기까지 과정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책방들이 ‘버티는 것’은 그 자체도 크나큰 도전이다. 책방 주인들은 창업 후 2년을 고비로 보고 있다. 치솟는 임차료와 마진이 남지 않는 책 판매 등은 버티기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
‘2년’이라는 고비를 넘은 곳들은 책방업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모델로 여겨진다. 2011년 문을 연 땡스북스는 이러한 점에서 책방 주인들의 ‘워너비’로 꼽히고 있다. 시끌벅적한 홍대 번화가 속 1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 온 땡스북스는 ‘홍대 앞에 어울리는’ 책들과 함께 아기자기한 팬시 용품을 갖춘 곳이다. 반짝이는 노란 바탕에 검정 폰트로 쓰인 간판은 땡스북스만의 정체성이 됐다. 홍대점에 이어 땡스북스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2호점을 내면서 동네 책방의 성공 사례를 써 가고 있다.
‘정체성’ 가진 서점이 살아남는다
2020년대 들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각종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으로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콘텐츠를 발간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다. 이렇게 온라인 상에서 축적한 콘텐츠를 출판물 형태로 남기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른바 ‘독립 출판’의 등장이다.
독립 출판은 대형 출판사와의 접촉 없이 개인이나 소수 그룹이 기획부터 편집·인쇄·제본까지 전부 도맡는 것을 말한다. 작가가 직접 기획하기 때문에 작가의 성향이 녹아 들고 대형 출판사보다 독자들의 수요나 책의 판매량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징이 있다.
독립 출판물이 독자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나선 것이 ‘독립 서점’이다. 독립 서점은 독립 출판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책방 주인들이 독립 출판물에 관심이 많거나 자신이 직접 펴낸 책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스스로 독립 서점을 차린 형태도 많다.
최근 등장하는 동네 서점 중에는 독립 출판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 서점의 비율이 높아졌다. 대형 출판사의 책에 비해 입고가 쉽다는 점도 독립 서점들이 최근 주류가 된 이유 중 하나다.
‘책만 팔아선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이에 따라 책방들은 다양한 대관과 모임 주최로 부수익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소규모 모임이 차질을 빚으면서 책방들은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다. 이 시기를 이겨 내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들도 있었다.
버텨 낸 서점들도 물론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감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마케팅이다. 대형 서점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고객 서비스로 입소문을 탔다.
2017년 연남동에 문을 연 ‘서점 리스본, 포르투’의 ‘생일책’은 고객과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 혹은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인물에 관한 책, 초판 발행일이 자기 생일과 같은 책을 모아 둔 것이다. 이른바 ‘책 덕후’들의 취향을 겨냥해 지인의 생일 선물이나 혹은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세계 문학 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 ‘라블레’의 이름 앞에는 ‘서점 극장’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매주 목요일 열리는 ‘목요 낭독회’는 세계 문학책을 낭독하는 시간으로 ‘서점 극장’이라는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작은 서점, 동네의 '문화 기지'로
이처럼 최근 동네 서점들은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굿즈를 내거나 특별한 포장 방식을 택하는 등 특색 있는 마케팅을 더해 서점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책방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고객층들은 각 서점이 내세우는 마케팅 방식에도 통달했다. 이에 따라 요새 책방 대표들에게 인스타그램 등 SNS 운영은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주 업무다. 이들은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이른바 ‘서점 투어’를 다니면서 서점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로 2040 여성들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엔 최근 ‘핫 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족들까지 합류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저절로 켜게 만드는 감각 있는 인테리어를 갖추느냐도 서점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됐다.
이처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서점은 각 동네의 문화 기지 역할을 수행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 서점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서울시에서도 동네 책방을 지원하는 정책이 있다. 서울시는 서울도서관을 통해 ‘2022 서울형 책방’을 운영 중이다. ‘서울형 책방’은 서점을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문화 프로그램 운영 지원 사업, ‘움직이는 책방’은 ‘책 읽는 서울 광장’과 연계해 지역 서점이 직접 기획한 특색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그럼에도 서점이 겪는 어려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실상 각 지역구에서 마련한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점 대표들도 있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2022년 한국서점편람에서 동네 책방이 겪는 애로 사항으로 독자들의 온라인 서점 이용 증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매출 하락과 임대료 부담, 도서 물류 경쟁력 약화 등을 꼽았다. ‘도서 정가제’는 독서 인구는 물론 책방들에도 ‘양날의 검’이 됐다. 규모가 작은 동네 서점들은 도매상에 미리 돈을 치르고 책을 받는 ‘현매 방식’을 택하는데 책이 팔릴지 팔리지 않을지 가늠할 수 없고 다양한 책을 구매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동네 서점들의 고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난관을 딛고 지금 이 시간에도 동네 서점들은 여전히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서점 사장님들은 인건비 걱정에 매장을 떠나지 못하고 여러 모임을 위한 강사 섭외에 전화기를 하루 종일 붙잡고 있다. 이들에게 서점은 생계 수단이 아닌 삶의 가치다. 개인의 취향이 묻어난 서점의 가치를 알아 주는 고객들이 있는 이상 서점은 없어져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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