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x한국언론진흥재단|Covid19 Waste Fighter (2) - 마리비블룸

[비즈니스 포커스]
환경의 적 ‘마스크’에 핀 희망의 꽃씨
일상의 필수품이 된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면 환경까지 생각하는 슬기로운 마스크 생활이 필요하다. 한경비즈니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세계 곳곳에서 ‘환경과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혁신의 현장을 찾았다. 이른바 코로나19 쓰레기에 맞서는 전사들(Covid19 Waste Fighter)이다. 글로벌 재활용 컨설턴트 기업인 테라사이클에 이어 둘째 주자로 네덜란드 스타트업 마리비블룸(Marie Bee Bloom)을 찾았다.버려도 괜찮은 마스크?“정원에 마스크를 심었어요. 우리 집 뒤뜰은 마스크로 가득 찼죠. 3일 후 새싹이 돋았고 몇 개월 뒤에는 꽃이 피었어요.”

심으면 꽃이 피는 마스크라니, 이 황당한 생각을 현실에 실천한 이가 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거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마리안 드 그루트폰즈(Marianne de Groot-Pons)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의 필수품이 된 마스크가 환경의 적이 된 것에 착안해 마스크를 심으면 꽃이 피는 100% 생분해성 마스크를 만들었다.

“2년 전 아이들과 바닷가로 여행을 갔어요. 아름다운 해변을 기대했는데 일회용 마스크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밀려와 있었어요. 줍고 또 주워도 다 치울 수 없었죠.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이런 자연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 그루트폰즈 디자이너는 환경 문제에 빠져들었다. 때마침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이 환경 오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가 쏟아질 때였다.
환경의 적 ‘마스크’에 핀 희망의 꽃씨
“제 직업은 그래픽 디자이너예요. 많은 제품들이 제 손에서 탄생하죠. 환경의 적인 플라스틱도요. 이 일을 계속 해나가면서도 지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자연과 사람에게 이로운 물건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은 마리비블룸. 꽃과 벌처럼 자연에 이로운 물건을 만들어 세상을 꽃피우겠다고 다짐했다. 첫 타자는 해안가에 버려진 일회용 마스크였다.

2020년 초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필요성이 강조되며 품절 대란이 온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마스크 착용을 놓고 총리와 보건부장관의 방침이 엇갈릴 정도였다. 2020년 11월이 돼서야 ‘써야 한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퍼지며 그 무렵 네덜란드에서도 마스크가 동이 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구하는 사람도 많고 한 번 쓰고 버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길 위에 파란 일회용 마스크가 가득했죠. 버려도 괜찮은 친환경 마스크를 개발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심으면 꽃이 피는 마스크요.”

그루트폰즈 디자이너는 머릿속 상상의 제품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마스크의 모든 성분을 100% 천연으로 만들고 마스크의 주재료 안에 ‘꽃씨’를 넣겠다는 안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 의사가 높았다. 글로벌에 통한다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곧장 개발에 돌입했다.
환경의 적 ‘마스크’에 핀 희망의 꽃씨
첫째 난관은 100% 천연 재료를 찾는 일이었다. 우선 친환경 제품으로 마스크에 꽃씨를 넣어 꽃을 피우는 게 핵심인 만큼 천이나 생분해 플라스틱 재료 등은 제외했다. 그렇게 재료들을 지우고 나니 쌀종이(라이스 페이퍼)가 떠올랐다. 쌀종이 두 겹 사이에 꽃씨를 박아 넣었다. 꽃씨는 길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 7종으로 구성했다.

가장 찾기 어려웠던 재료는 귀에 거는 끈이었다. 생활 주변에서 재료를 찾다가 들판에 방목 중인 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곧장 양털을 물레에 돌려 털실을 만들고 이를 꼬아 끈을 만들었다. 천연 털을 그대로 쓸 수 없으니 세척이 필요했는데 이 역시 화학 제품을 쓰지 않기 위해 흐르는 강물에 털실을 빨았다. 재밌는 것은 마스크마다 귀에 거는 끈의 색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양은 하얗고 어떤 양은 까맣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색깔의 마스크가 탄생한 것이다.

끈 길이를 조절할 재료도 필요했다. 달걀을 담는 상자를 잘라 꽃 모양으로 만들었더니 효과가 동일했다. 잘 썩을 수 있도록 달걀 상자에 일반적으로 쓰는 종이 대신 식물성 종이를 사용했다. 마지막 재료로 브랜드를 알리는 일도 필요했다. 마스크 위에 마리비블룸의 로고를 찍기 위해 친환경 잉크를 썼다.

“쌀종이·양털끈·로고를 인쇄하는 데 사용하는 잉크와 꽃씨를 제자리에 고정하는 접착제까지 마스크의 모든 것이 친환경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정말 많이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였어요.”

곡절 끝에 탄생한 마스크는 생분해 효과도 탁월했다. 마리비블룸의 자체 실험 결과 마스크를 화분에 심고 물을 주자 3일 후 마스크 안의 꽃씨에서 싹이 텄다. 5일 후에는 마스크가 생분해돼 흔적을 감췄다. 100% 천연 소재로 생분해되는 친환경 마스크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환경의 적 ‘마스크’에 핀 희망의 꽃씨
기능 아닌 메시지에 환호 입소문은 시간문제였다. 활동가를 지원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마리비블룸의 생분해 마스크가 소개되면서 전 세계에서 주문이 밀려들어 왔다. 문제는 대량 생산이었다. 기계로 찍어 내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존의 마스크와 달리 마리비블룸의 마스크는 일일이 꽃씨를 쌀종이에 넣고 접는 100% 수작업의 공정이었다. 수소문 끝에 공정을 함께해 준다는 공장과 손잡을 수 있었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친환경 마스크 소문이 번지면서 유럽을 비롯해 미국·인도·홍콩 등 전 세계 미디어에서도 꽃피우는 마스크에 관심을 보였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개당 3유로(약 4000원)로 값비싼 마스크인 데다 보건용 마스크로 인증받은 제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꽃피우는 마스크에 대한 호기심에 구매를 희망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2020년 11월 개발 후 지금까지 8만여 장이 팔렸다.

“마리비블룸의 마스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원천 차단하거나 보건용 마스크로 인증받은 제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이 마스크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 환호했어요. 마스크를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땅에 심어 꽃을 피운다는 그 메시지 전달에 지지 의사를 보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의 적 ‘마스크’에 핀 희망의 꽃씨
올해 들어 네덜란드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가 격리를 없애고 마스크 의무화도 폐지하면서 마리비블룸의 마스크 판매량이 줄어들었다. 이제 그루트폰즈 디자이너는 꽃피우는 마스크의 다음으로 미세 플라스틱이 쓰이는 다양한 곳에 더 많은 꽃을 피울 계획이다. 이미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유명 사이클 경주 대회에서 선수들의 가슴팍에 붙은 백넘버에 꽃씨를 심었다. 경기때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백넘버 대신에 한 번 쓰고 꽃을 피울 수 있는 백넘버다.

“마리비블룸은 앞으로도 지구에 이롭고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꽃을 피운 마스크, 꽃을 피운 백넘버 등을 통해 사람과 지구는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예요. 마리비블룸이 바라는 세상입니다.”
환경의 적 ‘마스크’에 핀 희망의 꽃씨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