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5개월 만에 환율 1390원 돌파…이 총재 “당분간 0.25%포인트 인상 기조 유지”

[비즈니스 포커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9월 14일 환율이 1390원을 돌파했다. 금융 위기였던 2009년 3월 31일 이후 1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화 초강세는 예견된 일이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80원대를 돌파하면서 1400원대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왔다.

특히 9월 13일(현지 시간)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시장의 분석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한은, 사상 첫 네 차례 연속 금리 올려…흐름 이어 갈까
혼란이 가속화되면서 한국은행의 ‘다음 스텝’에 시선이 쏠린다. 특히 한국은행의 수장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입’에도 덩달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8월 25일 기준금리를 2.50% 상향 조정했다. 사상 처음으로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운영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이창용 총재의 일문일답이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 회의 직후 열린 기지 간담회에서 당분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하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당분간 물가 중심으로 통화 정책을 운용하고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가 아직 유효하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지난 1년간 2%포인트 올린 상태에서 경기 불확실성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9월 결정 등을 고려하면서 0.25%포인트씩 인상을 검토하겠다는 설명이다. 한꺼번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격이 오면 원칙적으로 고려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연말 기준금리를 2.75∼3.00% 수준으로 보는 시장의 기대에 대해서는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이틀 후인 8월 27일 이 총재는 미국 와이오밍 주 잭슨홀에서 로이터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종료하기는 어렵다”며 인플레이션이 꺾일 때까지 금리 인상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통화 정책이 한국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Fed의 통화 정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다”고도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총재는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유가 등 대외적 요인이 크고 유가가 언제 다시 상승할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금리 인상 종료 시점을 언급하기 어렵다”며 “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4∼5%)을 보이는 한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9월 13일 발표한 미국의 CPI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Fed의 기준금리 인상도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9월 20~21일 열린다. 금융회사는 Fed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이 총재의 시장 관련 발언은 8월 말에 이뤄진 것이다. 9월 들어 원·달러 환율 상승세에 속도가 붙으면서 상황은 또 급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9월 13일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긴축 기조가 가팔라지고 일본 엔화의 빠른 약세, 중국 경기의 하강 우려 확대로 글로벌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도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차주에는 Fed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예상했다.

“제가 IMF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창용 총재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지냈고 34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일했다. 서울대 조교수 시절에는 스승인 이준구 서울대 교수와 경제학과 학생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경제학원론’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 후 이 총재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고 2014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으로 임명됐다. 거시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두루 겸비한 ‘전문가’로, 과거에도 한국은행 총재 후보군에 이름을 자주 올렸다. 올해 3월 정부는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장을 지명하면서 “경제·재정 및 금융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와 감각을 바탕으로 국내외 경제·금융 상황에 대응하는 효율적이고 안정적 통화 신용 정책으로 물가와 금융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의 발언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8월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적정 유동성 기준으로 보면 외환 보유액이 몇 천억 달러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봤다면서 “제가 IMF에서 온 사람입니다. 어느 IMF 직원도 한국이 외환 보유액을 (연간 수출액 등 여러 지표 합계의) 150%까지 쌓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외환 보유액 전 세계 9위인 한국처럼 규모가 큰 나라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동시에 IMF에서의 경험을 피력한 자신감 있는 발언으로 비쳐졌다.

투자와 관련한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한은이 내년이면 기준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란 전망에 대해 묻자 이 총재는 “현재는 불확실성이 워낙 큰 상황이어서 3개월 이후의 기조에 대해 지금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면서 “연말이나 돼야 내년 정책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말 이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투자자가 있다면 자기 책임 하에 손실이나 이익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단 3개월 단위로 시장과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었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에 대해 풍부한 시장 경험으로 기존 총재들보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이 총재가 취임 후 기자 회견 등에서 정책에 관한 발언을 할 때마다 채권 시장이 출렁인 만큼 앞으로 금융 시장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투자자의 책임”을 언급한 이 총재의 발언은 2030세대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총재는 9월 11일과 12일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는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 이 총재는 세계 경제 회의, 주요 신흥 시장국 중앙은행 총재 회의, 중앙은행 총재 및 감독 기구 수장 회의 등에 참석해 회원 중앙은행 총재들과 최근의 세계 경제 및 금융 시장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귀국한 이 총재와 한국은행의 ‘다음 스텝’에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