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로 안방 점령하고 이젠 기술력으로 위협
‘제로 코로나’ 이후 디지털 경제 무섭게 성장
AI로 범죄자 색출하고 공산당 충성심 측정까지
4차 산업 주도권 잡기 위해 첨단 기술 육성 총력

[스페셜 리포트] 메이드 인 차이나의 안방 공습, 우리가 몰랐던 중국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면서 군사력과 과학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을 자부했던 미국은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이 충격을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한다. 미국은 이듬해 자존심을 걸고 대통령 직속 기구인 미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했고 미국과 러시아 간 우주 개발 경쟁의 막이 올랐다.

중국산의 전방위 공습은 한국에 ‘스푸트니크 쇼크’에 버금가는 충격을 줬다. 중국의 기술력이 만만치 않은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대륙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하이얼(TV·냉장고), 미디어(냉장고·세탁기·건조기), 레노버(노트북·PC), 샤오미(모바일·액세서리), 디베아(무선 청소기) 등 중국 업체들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무기로 한국의 안방을 점령하고 있다.

삼성·LG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준수한 성능·디자인을 가진 중국산 제품을 일컫는 ‘대륙의 실수’라는 명칭은 이제 옛말이 됐다. 중국산은 이제 더 이상 ‘가성비’가 아닌 기술력으로 한국 제품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톈진에서 열린 ‘제5회 세계지능대회’ 모습. 사진=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톈진에서 열린 ‘제5회 세계지능대회’ 모습. 사진=신화통신·연합뉴스
전기차·로봇까지 ‘메이드 인 차이나’ 전방위 공습

중국은 국가가 주도하는 중국 우선주의와 혁신 중상주의를 바탕으로 디지털 산업의 발전 속도를 높여 왔다. 해외 기술을 모방하고 해외 기업의 진입을 제한하며 자국 기업에 불공정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산업을 육성해 왔다.

한국의 전기버스 시장은 이미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버스가 잠식 중이다.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지급하기 시작한 전기차 보조금을 중국 등 외국산 전기차가 대부분 쓸어가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중국의 신에너지차 산업 육성 정책 등 주요국이 자국 전기차·배터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차별적인 보조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중국의 첨단 산업 굴기에 대응해 한국산 전기차를 우대하는 방향으로 보조금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식당, 제조 현장, 물류 라인 등에서 쓰이는 로봇도 중국산 천하다. 배달의민족의 서빙 로봇 렌털 사업도 대부분 중국산으로 알려졌다. 푸두테크·키논 등 중국산 로봇이 서비스·산업 현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한국 업체 로봇보다 중국산이 약 20% 저렴하다.

중국은 첨단 기술 분야에 규제가 거의 없어 기술 개발에 용이한 환경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첨단 산업 발전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물량 공세가 가능한 배경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가 물량 공세를 앞세운 중국에 글로벌 시장을 뺏긴 디스플레이 산업의 뼈아픈 과거가 전 산업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1년에는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 세계 1위를 17년간 수성해 온 한국이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고급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BOE도 폴더블 OLED 기술을 선보이며 삼성과 LG를 추격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한국의 기술 우위가 약화하고 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의 주요 핵심 산업별 기술 격차를 살펴보면 그 격차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고 경쟁 양상도 치열해지고 있다. 주요국의 기술 수준을 평가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기술 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중국에 평균 3년 앞섰던 한국의 기술 수준이 2020년에는 0.1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AI 기술력 미국 따라잡아…디지털 전체주의 논란도

디지털 기술 경쟁력 발전의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있다. 단 한 명의 감염자도 용납하지 않고 도시를 봉쇄하는 엄격한 방역 정책으로 올해 2분기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4%로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1분기(-6.8%)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도시 봉쇄를 계기로 중국의 디지털 경제성장률이 GDP 성장률을 앞질렀다. 감염자 발생 시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결과적으로 혁신의 속도를 높여준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중국이 그간 갈고닦은 디지털 기술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신선식품을 플랫폼을 통해 주문하고 배송하는 O2O 서비스 등 플랫폼 중심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됐고 디지털 방식의 소비 패턴이 정착됐다.

드론 배송과 원격 의료도 보편화됐다. 산업 현장에서도 감염 방지를 위해 사람이 손수 하던 작업들을 산업용 로봇이 대신하면서 중국이 기존에 실험 중이던 기술을 제조 현장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다.

상하이·베이징 등 주요 도시를 봉쇄하고 5세대 이동통신(5G), 빅데이터, 산업 인터넷, 인공지능(AI) 등 중국이 이전부터 추진하던 첨단 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동안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던 것이다.

AI는 중국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기부터 AI 기술을 모바일과 연계해 방역·의료진단·원격 진료·안면 인식에 활용했다. 중국은 AI 연구 분야에서 논문 수와 인용지수에서 2020년부터 미국에 본격적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미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미국을 넘어 세계 1위를 목표로 AI 산업을 육성 중이다.

2017년 AI 분야 투자·융자 규모는 277억 달러로, 이는 전 세계 70% 수준이다. 2018년 AI 부문 특허 건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AI 관련 세계 피인용 상위 1%, 논문 건수 세계 1위 등 양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현재 글로벌 AI 경쟁 구도는 선도국 미국과 후발 추격자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응용 산업을 포함한 다방면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이다. 핵심 기술력은 미국이 앞서지만 전자 상거래 알고리즘·안면 인식 등 응용 기술과 산업화 측면에서는 중국이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AI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국민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전방위 통제 사회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공산당이 AI를 이용해 당원의 충성도를 판별하는 장비를 개발한 것이 알려지면서 중국의 디지털 전체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치안 유지와 범죄자 추적을 명목으로 2015년부터 CCTV 감시 시스템인 ‘텐왕’을 시행 중이다. 중국 전역에 설치된 6억대의 CCTV가 AI 안면 인식 기술로 14억 인구의 얼굴, 목소리, 걸음걸이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반체제 인사를 감시·통제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율 주행 로봇이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자율 주행 로봇이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중국 표준=글로벌 스탠더드’ 목매는 이유…기술 패권국 야망

중국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벤치마킹해 2015년 ‘인터넷 플러스’와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하고 제조업 경쟁력 높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5년까지 첨단 의료기기, 바이오 의약 기술 및 원료 물질, 로봇, 통신장비, 첨단 화학제품, 항공우주, 해양 엔지니어링, 전기차, 반도체 등 10개 하이테크 제조업 분야에서 기술 자급자족을 달성해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발전하겠다는 전략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기업들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 편입되면서 단순한 하청 제조 공장에 머물렀다.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 등 과거 산업혁명 시기는 중국에 있어선 암흑의 시대였다. 1800년까지 세계 최강국은 중국이었다.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이 세계 제조업의 33%를 차지할 정도였다.

중국은 산업혁명을 따라잡지 못했다. 추격자의 자리에 머물며 서구가 경험했던 산업혁명과 경제 발전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자국이 글로벌 리더로 올라설 절호의 기회로 인식한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빠르게 확보해 가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하청 공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학 기술과 연구·개발(R&D)에 전폭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제조 혁신 전략인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2025년까지 중국 제조업 수준을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 높이고 2049년에는 세계 1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목표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의 다음 단계로 자국 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목표로 하는 ‘중국 표준 2035’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기술 표준에서 벗어나 ‘차이나 스탠더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보유와 함께 관련 기술의 글로벌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도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중국 주축으로 재편하기 위한 세계 표준화 선점 전략의 일환이다.

기술의 표준화 전쟁은 결국 글로벌 규범, 규칙 제정을 둘러싼 경쟁이다. 유럽의 전략 컨설팅 업체인 롤랜드버거는 ‘4차 산업혁명, 이미 와있는 미래’에서 “표준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 시장을 지배한다”고 했다.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가 세계 표준시인 본초자오선의 기준이 된 것은 영국이 18세기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패권국 지위를 획득했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그리니치 표준시(GMT)’로 전 세계인의 시간을 지배할 수 있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