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중국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 ‘삼국지’를 통해서였습니다. 그중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조조의 장수 사마중달을 물리친 제갈공명의 공성계(空城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제갈공명은 성을 모두 비우고 홀로 하얀 옷을 입고 현악기를 켜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본 사마중달은 그 뒤에는 어마어마한 전략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퇴각합니다.
1950년대 마오쩌둥이 공성계를 활용합니다. 미국과 소련의 핵 경쟁으로 위협이 엄존할 때 두 강국이 힘을 합치면 중국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모른 척합니다. “중국은 핵위협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위협은 없다고 가장하고 자신의 말을 세상이 믿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허세 아래 깔린 전략적 감각과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중국식 접근법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다음은 바둑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바둑의 매력이었습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서방 세계와 중국의 전략을 체스와 바둑에 비유했습니다. “체스는 외골수를 낳고 바둑은 융통성을 키워 준다.” 바둑은 세력을 키우고 포위하고 때로는 많은 돌을 내주며 더 많은 돌을 잡는 전략을 씁니다. 전략적 전통의 기원은 ‘손자병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손자는 직접적 분쟁을 피하고 심리적 우위를 통해 승리하는 것을 최고의 승리로 칩니다. 말들을 죽여 가며 왕을 잡기 위해 중심으로 나아가는 체스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런 전략으로 중국은 1500년대까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강국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19세기 초에도 세계 생산의 30%는 중국이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아편전쟁 이후 100년간의 암흑기로 들어섭니다. 이후 내전과 문화혁명을 거치며 중국은 초토화됐습니다.
다시 일어선 것은 한국을 모델로 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덕입니다. 2000년대 초 중국을 자주 갔습니다. 수천년 역사에서 한국인이 중국에서 가장 좋은 대접을 받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불안도 있었습니다. 갈 때마다 베이징과 상하이 거리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성장이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중화주의(中華主義)’를 되살린 계기였습니다. 자본주의 상징인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지요. 당시 왕치산 부총리는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게 “당신은 내 스승이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이후 중국은 ‘제국으로의 귀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제3세계에 돈을 뿌리고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중국몽(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등을 통해 패권국의 야심을 드러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에 대한 야심은 행진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몇 해 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할 때 이런 분석이 나왔습니다. “중국과의 결전에 집중하기 위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선을 정리한 것이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이후 미국은 대만 문제에 적극 나서고 반도체 등을 통해 지역 동맹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는 작전입니다. 두 강대국의 총성 없는 전면전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여기에 중국의 기술력은 무시하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디스플레이·전자제품·자동차·석유화학·배터리는 물론 스마트폰까지 한국을 거의 따라왔습니다. 반도체 정도만 한국이 확실한 우위에 있을 뿐입니다.
더 찜찜한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봉쇄됐던 시기에 중국이 국내에서 어떤 실험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이 신장위구르에서 인공지능(AI) 기술로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실험을 했다는 뉴스를 보면 AI 기술력은 이미 한국을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어떤 실험을 했을지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중국을 다뤘습니다. 알지 못하면 준비할 수 없고 준비하지 못하면 또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가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과거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미국 편에 서겠다고 선언하면 정치적으로는 심플해 보입니다. 하지만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경제 문제는 어떻게 할지 대책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뭔가 얻어오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왠지 뒤통수만 맞는 느낌입니다.
추석 연휴 때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을 봤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순신 장군이 장수를 배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기술하며 그곳에 배치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저렇게 쓰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반도에 불고 있는 미·중 전쟁의 폭풍에 맞설 장수는 준비돼 있는지 의문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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