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강방천 차명 투자 의혹에 불명예 퇴진…“자산 운용 준법·윤리 의식 수준 훨씬 더 높여야”
[비즈니스 포커스] ‘3만원대 주식을 10년 후 440만원에 판 투자의 전설’, ‘1억원을 투자해 156억원을 번 사나이’….2020년 5월과 11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전 대표와 강방천 에셋플러스운용 전 회장의 무용담이 매스컴을 탔다. 화제성은 폭발적이었다. 다음날 직장인들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들의 주식 투자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주린이’도 등장했다. 그들을 롤모델 삼아 투자에 나선다는 이들이 급증했다. 존 리 따라 하기, 강방천 따라 하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주린이들은 존 리 대표의 말에 따라 커피도 끊고 자동차도 보류하며 주식을 사들였다. 강 전 회장의 말에 따라 좋은 소비 후 그 회사의 주주가 됐다. ‘동학개미 멘토’, ‘가치 투자 전도사’란 칭호가 따라붙었다.
유명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등 각종 채널은 물론 서점가에도 이들의 책이 쏟아져 나왔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공동 저자로 책도 펴냈다. ‘강방천&존 리와 함께 하는 나의 첫 주식 교과서.’ 책표지에는 이런 메시지가 적혔다. ‘나를 따르라’. 동학개미 멘토의 퇴진 “아저씨 믿고 주식 투자 시작했는데 ㅜㅜ.”
“월세 산다고 부동산 투자 말고 주식 투자하라더니 아내 명의로 투자한 게 부동산이라고요?”
“책도 사고 유튜브 강의도 다 들었는데 너무 실망스럽네요.”
동학개미 운동의 선봉자로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열풍을 이끈 대가들이 불명예 퇴진했다. 강 전 회장은 차명 투자 의혹과 관련, 최근 직무 정지가 내려졌고 존 리 전 대표 역시 차명 투자 의혹으로 지난 6월 임기를 6개월여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두 사람 모두 차명 투자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들을 ‘멘토’로 모셨던 개인 투자자들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금융감독원은 9월 14일 강 전 회장의 차명 투자 의혹과 관련해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직무 정지와 과태료 부과 등을 결정했다. 직무 정지는 금융회사 임원 제재 중 해임 권고 다음으로 수위가 높은 중징계다. 금융위원회에서 이를 의결하면 금감원의 제재가 확정된다. 확정되면 향후 4년간 금융회사 임원에 선임될 수 없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에셋플러스자산운용에 대한 정기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의 자기 매매 정황을 포착했다. 강 전 회장이 본인과 딸 등이 대주주인 공유 오피스 운영 업체 ‘원더플러스’에 수십억원의 자금을 빌려준 뒤 법인 명의로 자산을 운용했는데 손익이 결과적으로 대주주에게 돌아가는 자기 매매라고 봐야 한다는 게 금감원 측의 주장이다. 강 전 회장은 원더플러스의 대주주이고 2대 주주는 강 전 회장의 딸이다.
금감원은 본인 명의 회사에 자금을 대여해 법인 명의로 자산을 운용한 행위가 일종의 차명 투자라고 보고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산 운용사 임직원의 투자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기 명의로 매매해야 하고 차명 투자는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은 “개인 돈을 회사에 빌려준 일은 있지만 이미 모두 돌려받았고 차명 투자 목적이 아니다”며 이를 부인하고 있다. 자기 매매라면 손익이 강 전 회장 자신에게 돌아와야 하는데 법인으로 들어간다는 주장이다.
차명 투자 조사가 시작되자 은퇴 소식도 전했다. 7월 29일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 전 회장의 공개 서신에는 ‘23년간 에셋플러스에서 맡았던 소임을 다하고 떠나고자 한다. 어려운 시기에 함께하지 못해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 그는 자신의 은퇴가 금감원의 조사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를 따른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컸다. 특히 강 전 회장과 함께 ‘동학개미 멘토’로 불린 존 리 전 대표가 한 달 전 차명 투자 의혹으로 사표를 제출하며 불명예 퇴진한 데 이은 것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앞서 존 리 전 대표는 2016년 지인이 설립한 부동산 관련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업체 P사에 부인 명의로 지분 약 6%를 투자한 의혹을 받고 있다. 투자금은 약 2억원이다. 메리츠자산운용이 운용하는 4개 사모펀드 역시 P사 상품에 총 6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금감원은 메리츠운용을 상대로 수시 검사를 진행한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다. 존 리 전 대표는 P사가 이해관계인에 해당하지 않고 펀드 투자 결정에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며 “불법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존 리 전 대표는 금감원의 조사가 시작되자 6월 말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에서 물러났다. 현재 금감원은 존 리 전 대표에 대한 제재 여부도 내부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존 리 전 대표의 의혹에 투자자들은 공분했다. 차명 투자 의혹은 물론 투자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됐다는 사실에 특히 분노했다. 그가 투자자들에게 그동안 주식 투자를 권유하며 “월세살이를 하더라도 부동산 대신에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라”고 말한 것과 정반대되는 의혹이었기 때문이다. 오얏나무 아래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두 사람은 공통으로 투자에 가족 명의를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 투자업계 임직원의 차명 투자는 자본시장법 위반 사항이다. 자본시장법 제37조는 금융투자업자의 신의성실의무를 담고 있다. 금융 투자업자는 공정하게 업을 영위해야 하며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 자기가 이익을 얻거나 제삼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강 전 회장의 징계 소식이 전해진 8월 9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자산 운용사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고객의 투자 자금을 관리·운용하는 자산 운용업은 무엇보다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가 근간이 돼야 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등 사모펀드 사태를 예로 들며 “최근 자산 운용 산업에 대한 시장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경영진부터 준법·윤리 의식 수준을 이전보다 훨씬 더 높여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임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금융 사고 예방 등 내부 통제 점검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 전 회장과 존 리 전 대표 등 자산 운용사 경영진의 차명 투자 의혹이 잇따르자 낸 경고음이다.
두 사람 모두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불법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확실한 목소리를 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듯이 경영진 스스로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조금이라도 이해 상충 소지가 있거나 직무 관련 정보 이용을 의심받을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를 단념하고 고객 자금의 운용 관리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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