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시도 끝 한화에 통매각 가닥
21년간 천문학적 혈세 쏟아부어 ‘세금 먹는 하마’ 오명도

[비즈니스 포커스]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에 ‘통째’ 팔린다.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 은행인 KDB산업은행은 9월 26일 대우조선과 한화그룹이 2조원의 유상 증자 방안을 포함한 조건부 투자 합의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1조원), 한화시스템(5000억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4000억원), 한화에너지 자회사 3곳(1000억원) 등 한화그룹이 2조원 규모의 제삼자 배정 유상 증자에 참여해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49.3%와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지난 21년 동안 ‘주인 없는 회사’로 부침을 겪었던 대우조선해양은 험난했던 구조 조정 여정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9월 26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해양 현안 관련 긴급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9월 26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해양 현안 관련 긴급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12조 공적 자금 투입에도 자력 생존 못 해

대우조선해양은 1973년 설립된 대한조선공사의 옥포조선소가 모태다. 대우그룹이 1978년 인수하면서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우조선해양은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다. 1993년 한국 최초의 전투잠수함인 이천함을 건조하고 선박 수주 세계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우그룹이 외환 위기와 유동성 위기를 맞은 후 200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계열사들이 공중 분해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였다.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 찾기는 난항의 연속이었다. 수차례 매각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08년 한화그룹이 우선 협상 대상자에 선정됐지만 금융 위기로 무산됐다. KDB산업은행은 2009년, 2012년, 2014년에도 매각을 시도했지만 ‘부실 공룡’인 대형 조선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없었다.

2019년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지만 2022년 초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시장 과점 우려를 들어 양 사의 기업 결합에 대해 최종 불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또다시 매각이 불발됐다.

‘절대 망하지 않는 대마불사(大馬不死)’, ‘국민 혈세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 ‘세금 먹는 하마’. KDB산업은행 체제 아래 대우조선해양의 행보에 대한 비판적인 수식어가 늘어갔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에는 적지 않은 혈세가 투입됐다. KDB산업은행은 고비 때마다 대우조선해양에 산소 호흡기를 대줬다.

대우조선해양이 극심한 노사 분규와 누적된 적자로 존폐 기로에 섰던 1989년 KDB산업은행은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기존 대출금 2500억원을 7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으로 상환 유예하고 1500억원의 신규 대출을 제공하는 등 대우조선 구하기에 나섰다.

채권 은행이던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가 된 배경이다. 이때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그룹 총수 자리를 잠시 내려놓고 1년 7개월간 옥포조선소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한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극적으로 회생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산소 호흡기 달고도 계속된 방만 경영

살아난 대우조선해양은 1994년 대우그룹의 지배 구조 개편 과정에서 대우중공업에 합병됐다. 대우중공업은 1993년 매출 8822억원, 순이익 167억원을 기록했고 대우조선해양은 매출 1조5545억원, 순이익 2600억원을 냈다.

하지만 외환 위기의 파장이 이어지던 1999년 대우중공업에 다시 유동성 위기가 닥쳤고 대우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0년 대우중공업은 대우조선공업·대우종합기계·대우중공업으로 쪼개졌고 여기에서 KDB산업은행은 1조1714억원의 출자 전환을 주도했다. 2002년 대우중공업에서 해양 부문이 분리돼 탄생한 것이 대우조선해양이다.

업계에선 지난 21년간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 자금이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2015년에는 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명분으로 4조2000억원을 투입했다.

2017년에는 2조9000억원 규모의 한도여신(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제공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분식회계, 방만 경영 등 논란이 계속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주인 없는 회사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조선사의 선박 건조 계약 방식은 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헤비테일’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수주 실적이 매출에 반영되기까지 2년 이상이 걸린다.

KDB산업은행을 대주주로 사실상 공기업 형태로 운영돼 온 대우조선해양의 임기 3년짜리 사장들은 자신의 임기 내 수주 실적을 쌓기 위해 저가 수주에 열을 올렸다. 대우조선해양이 저가 수주를 주도하면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빅3 간 출혈 경쟁을 유도하며 한국 조선업 전체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비판도 있다.

친정부 성향의 낙하산 사장도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대우조선해양에 친정부 성향의 인사나 KDB산업은행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전임 사장인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 등은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과 경영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4월 문재인 정부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박두선 사장도 낙하산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서울 중구 한화그룹 사옥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한화그룹 사옥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한화, 육해공 완전체 구축…‘한국판 록히드마틴’ 도약

먼 길을 돌아왔지만 대우조선해양이 돌고 돌아 만난 새 주인은 한화그룹이다. 2008년 인수가 무산된 이후 둘째 도전이다.

한화그룹이 처음 인수를 추진했던 2008년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몸값은 6조원에 달했지만 현재는 가격이 2조원까지 떨어졌다. 당초 한화는 특수선(군함·잠수함) 부문만 분리해 인수하고 싶어 했으나 KDB산업은행이 ‘통매각’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빅3 조선사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된 한화그룹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이자 주력 사업인 방위 산업 부문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한화그룹은 2030년까지 글로벌 방산 톱10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하며 최근 사업 재편을 통해 방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분산돼 있던 (주)한화의 방산 부문과 한화디펜스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통합해 지상에서부터 항공 우주에 이르는 종합 방산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한화그룹의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서의 시너지 효과도 예상된다. 시장에선 이번 인수로 액화천연가스(LNG)·풍력 사업의 시너지가 극대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양 방산의 강자인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기존 우주, 지상 방산에서 해양까지 아우르는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갖춘 ‘한국형 록히드마틴’으로 거듭날 것이란 관측이다.

한화그룹은 “한국에서 기술 불모지와 같은 우주에 투자해 온 한화그룹은 이번 대우조선의 인수 역시 ‘국가 기간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로 인수에 나섰다”며 “이번 인수는 그룹의 사업적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서자 시장에선 한국항공우주산업(KAI)까지 품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 지은 뒤 항공 우주 사업과 방산 분야 확장을 위해 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KAI의 최대 주주는 지분 26.41%를 갖고 있는 한국수출입은행이다.

공공 기관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한국수출입은행이 KAI 지분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HMM의 민영화를 공식화한 상태다. 한국수출입은행이 KAI 민영화에 나선다면 한화그룹이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지목된다.

한화그룹은 최근 민영화 시동을 걸고 있는 KAI 인수 작업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우주 산업은 국가 주도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민간 주도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한화그룹의 우주 항공 사업 역량이 주목받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 내 우주 사업 전반을 지휘하는 스페이스 허브를 이끌며 민간 우주 시대를 개척하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KAI는 항공기·헬기·드론 등 체계 종합 기업으로 최근 우주 위성 서비스 시장에도 뛰어들어 글로벌 업체들의 인수 희망 0순위로 꼽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AI는 최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관한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 발사체 총괄 주관 제작’ 입찰에 나란히 참여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화그룹이 KAI까지 인수하면 경쟁 관계를 해소하면서 글로벌 방산 1위 록히드마틴 못지않은 글로벌 방산 업체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KAI 측은 이번 매각 추진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인수 대금보다 큰 2.3조원 영구채는 변수

물론 변수는 있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2조3300억원 규모의 한국수출입은행 영구채 해소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공적 자금을 수혈받은 뒤 영구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 CB는 만기가 30년짜리다.

영구채는 원금을 갚지 않고 계속해 이자만 지급하는 채권으로, 만기가 길기 때문에 회계상으로는 자본으로 분류된다. 대우조선해양의 2분기 말 자본은 2021년 말 대비 30% 감소한 1조5000억원이다. 이는 자본에 포함된 영구채(2조33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이미 자본을 완전히 까먹은 사실상 완전 자본 잠식 상태라는 의미다.

당초 영구채의 금리는 2022년 말까지 1%대 저리가 적용되지만 2023년부터는 기간에 따라 금리가 상승하는 스텝업 구조였다. 하지만 KDB산업은행은 9월 26일 매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화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국수출입은행이 보유 중인 영구채의 스텝업을 유예하기로 하고 기존 발생 이자는 주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증권가에선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유상 증자 이후 한화그룹의 재무 구조 정상화와 실적 개선 가능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유상 증자 이후 재무 구조 정상화와 실적 턴어라운드가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영구채 2조3000억원으로 채권단이 자본 잠식을 막아 주고 있던 상황이고 우발 채무 등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으로 사업을 재편하며 재평가 기대감이 높았지만 대우조선해양 실적이 연결로 반영되는 2023년부터 실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