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을 알리는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보신 적이 있는지요.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여운을 즐기지 않습니다. 잽싸게 일어나 나가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을때 면 다음 편 관객들이 들어와 앉아 팝콘과 콜라를 먹을 준비를 합니다.
영화관은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인 ‘빨리빨리’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공간입니다. 자판기 커피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손을 집어넣고 기다립니다. 빼낸 후에도 뜨거운 물이 줄줄 나옵니다. 뭐가 그리 급한 걸까요.
경제 발전 전략도 ‘빨리빨리’였습니다. 대기업들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쓴 전략은 ‘빠른 추격자 전략’이었습니다. 선진국들은 6개월 걸려 이사회를 겨우 소집합니다. 그 시간에 한국 기업들은 공장을 지어 돌렸습니다. 소비자들도 속도를 외칩니다. 유럽에서 한 달 걸리는 인터넷 설치도 당일 안 된다고 하면 통신사를 바꿔 버립니다. 이 소비자들은 산업 발전의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문화적 특성에 맞게 움직인 회사들은 성장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쿠팡입니다.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하기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 없는 직장인을 위해 밤새도록 여는 상가는 없을까.’ 쿠팡은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뭔가 필요하면 쿠팡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주문합니다. 다음날 아침 제품이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주변에는 쿠팡 중독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혁신이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라는 슘페터의 정의와 쿠팡의 로켓배송은 맞아떨어집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쿠팡을 다뤘습니다. 2000년대 한국에서 혁신 기업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콘텐츠 소비의 패턴을 바꿔 놓은 네이버, 커뮤니케이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카카오, 간접 투자를 대중화한 미래에셋 등입니다. 삶에 자리 잡는 순간 이 기업은 당대를 지배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애플과 아마존·스타벅스·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 등이 그렇습니다. 2010년대 한국에서는 그런 기업을 꼽으라면 쿠팡이 1순위일 것입니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매출 20조원대 회사가 됐습니다. 파장은 컸습니다. 유통 업체들은 앞다퉈 배송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켓컬리는 스타가 됐고 산란일이 ‘오늘’인 달걀을 배송해 주는 가농바이오란 회사의 실험도 관심을 받았습니다.
노동 시장에도 파괴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쿠팡 플렉스’로 검색하면 쿠팡 배송 일을 한 경험담이 넘쳐납니다. 하루에 얼마를 벌었다는 내용부터 공무원 그만두고 배송 운전사를 한 사연까지…. 쿠팡은 한국에서 2년 연속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이 됐습니다. 젊은이들은 감정 소모 없이 언제나 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쿠팡 캠퍼스(물류센터)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최근 쿠팡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파괴자 쿠팡’은 가는 곳마다 논란도 일으켰습니다. 로켓배송 초기에는 물류 회사도 아닌데 배송을 한다고 기존 택배 회사들과 부딪쳤습니다. 몇 년 전 대규모 구조 조정으로 노조와 갈등을 빚으며 위기도 맞았습니다. 엄청난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노동의 질 논란도 촉발했습니다. 상장 때는 국부 유출과 차등 의결권을 이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쿠팡이 무서운 것은 어디로 향하는지 정해 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로켓배송에서 시작해 음식 배달(쿠팡이츠), OTT(쿠팡플레이)로 확장한 것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기회가 발견되면 어디든 들어가 성공하는 게 그들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코드는 성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게다가 쿠팡은 이제 설립 12년 된 기업입니다. 덩치는 커졌지만 정서적으로는 미숙한 청소년기를 겪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쿠팡이 반짝이는 빛을 발휘하다 사라진 수많은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으려면 더 많고 깊이 있는 사회와의 대화가 필요할 듯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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