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조′ 가계 부채 ·IMF 이후 최악 인플레이션에 금리 인상 딜레마

외환위기·금융위기와 다르다? 위기를 읽는 5가지 신호 [먹구름 낀 글로벌 경제③]
“한국에서 경제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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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Fed)이 내년 1분기까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처럼 가계 부채가 높은 곳은 경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위기를 맞을 것인가, 아닌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30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에 참석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나 금융 위기 때처럼 한국에서 경제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강조했다.

반면 가계 부채가 한국 경제를 흔들 진원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안나 추아 씨티그룹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월 3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가계 부채로 경기 침체를 맞이할 수 있는 국가로 한국을 콕 집었다.

위기 촉발의 이유를 내부에서 찾느냐, 외부에서 찾느냐의 차이로 의견이 갈린다. 1997년 외환 위기, 2008년 금융 위기 때와 다른 충격과 이를 막을 완충제는 무엇일까. 한국 경제의 위기를 읽는 시그널을 점검했다. 1. 빚으로 지은 집
올해 가계 부채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계 신용 잔액은 1869조4000억원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외환 위기 직후 가계 부채는 184조원이었고 금융 위기 때는 607조원에 불과했다.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입은 경제 타격을 버티기 위한 가계 빚과 부동산·주식 등 자산 투자에 유입된 돈이 맞물리면서 대출이 급증했다. 문제는 가계 대출의 80% 이상이 금리 인상에 취약한 변동 금리라는 점이다(7월 기준). 한국은행이 올해 4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물가 잡기에 나서면서 대출 금리도 급등했다.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상단이 연 7%를 넘겼고 전세 자금 대출과 신용 대출을 받은 대출자의 월 이자 상환액은 2년 새 최대 2배로 뛰었다.

이 중 금리가 오를수록 상환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일반 가계 다중 채무자는 451만 명이다. 이들의 채무 불이행이 급증하면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모든 금융 위기 전에는 가계 부채가 급증했고 지금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기 요소는 가계 부채와 부동산 버블”이라며 “월소득의 절반을 대출 이자로 내는 가계가 늘면 소비가 줄고 이는 기업의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서 결국 실물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2. IMF 이후 최악 인플레이션 가계가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맨 가운데 물가는 외환 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지난 6월 6%를 넘어선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5% 후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998년(7.5%) 이후 가장 높은 5.2%를 기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금융 위기를 겪은 2008년 물가 상승률은 4.7%였다. 3. 금리 딜레마 이 상황에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 딜레마에 빠졌다. 가계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하해야 하지만 치솟은 물가와 변동성이 커진 외환 시장을 고려하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Fed가 최근 3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서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는 제로 수준에서 3~3.25%까지 올랐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발맞춰 한국은행 역시 올해 2.5%까지 금리를 올렸다. 연말까지 추가 금리 인상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10월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한국은행이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의 부담도 커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준금리 3% 시대가 열리면 대기업의 59%가 영업이익으로 금융 비용을 부담할 수 없게 된다고 추산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가계 부채 증가와 소비 위축,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모든 배경에는 결국 금리 인상이 자리한다”며 “환율 급등 역시 미국의 고금리로 기축 통화인 달러의 매력이 높아지면서 원·달러 시장까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향후 Fed가 기준금리를 얼마나 더 인상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4. ‘위기 방파제’ 외환 보유액은 충분하다 위기의 신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지만 정부는 외환 위기나 금융 위기 때와 같은 경제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한다. 글로벌 경제 충격의 ‘위기 방파제’인 외환 보유액이 충분하고 대외 건전성이 외환 위기나 금융 위기 때와 비교해 양호하다는 이유에서다.

추 부총리는 “금리 인상은 일정 기간이 되면 다시 정상적인 수준의 조절이 일어난다”며 “중국의 외환 보유액이 세계 1위인데 경제 규모 대비로 보면 GDP의 18% 수준”이라며 “한국은 경제 규모의 25%를 외환 보유액으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은 9월 말 기준 4167억7000만 달러다. 금융위기였던 2008년 2012억달러와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하지만 지난달 원달러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외환당국이 달러화를 시중에 풀면서 한달새 외환보유액이 200억 달러 가까이 급감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강(强)달러 현상이 심해지자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대다수 나라가 외환보유액을 대규모로 소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5. 6개월 이상 무역적자 IMF 이후 처음경제 대들보 역할을 하던 수출에도 위기의 신호가 나왔다. 기존에는 원화 가치가 낮아지면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상승해 무역 수지 흑자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달러가 홀로 승승장구하면서 다른 국가의 통화 가치가 동반 하락했다. 이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 증가로 이어지기 어렵고 오히려 전 세계 수입 물가가 올라 세계 교역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9월 무역 수지(수출액-수입액)가 37억7000만 달러(약 5조4300억원)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6개월 연속 이어진 적자다. 한국이 반년 이상 연속 무역 적자를 낸 것은 IMF 외환 위기 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이다. 수출 효자였던 반도체는 9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5.7% 감소했고 지역별로는 대미 수출만 16% 증가했을 뿐 중국(-6.5%), 독립군가연합(-29.9%), EU(-0.7%)가 모두 부진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