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빅 스텝에 ‘휘청’
가계 빚·다중 채무자·좀비 기업 경제 시한폭탄으로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0월 12일 기준금리를 2.5%에서 3%로 0.5%포인트 높이는 ‘빅 스텝’을 단행하면서 10년 만에 기준금리 3% 시대가 열렸다. 기준금리가 3%대까지 높아진 것은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이다. 4·5·7·8월에 이어 다섯째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2023년까지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한국은행도 인상 기조를 이어 갈 가능성이 높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도는 상황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2023년 초반까지는 (물가 상승률이) 5% 이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조치지만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8만 가구 “집 팔아도 빚 못 갚아”

2021년 말 가계 부채는 1800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나 서민 생계 자금 대출이 많아진 영향이 있다. 여기에 초저금리 시기 싼 이자로 돈을 빌려 부동산·주식·암호화폐 등에 투자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 내서 투자)’ 열풍이 가세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집을 비롯한 보유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거나 현재 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쏟아야 하는 금융 부채 고위험 가구는 38만1000가구에 달한다. 고위험 가구는 전체 금융 부채 보유 가구의 3.2%를 차지하며 이들이 보유한 금융 부채는 전체 금융 부채의 6.2%인 69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더 큰 문제는 미국 통화 긴축 등의 영향으로 향후 한국의 기준금리와 시장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 취약 차주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빠르게 불어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분석 결과 기준금리가 0.25%포인트만 뛰어도 전체 대출자의 이자가 3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빅 스텝으로 0.5%포인트로 커지면 이자는 6조5000억원으로 불어난다. 그러면 대출자 1인당 부담해야 하는 연평균 이자는 32만7000원 증가한다.

한국은행이 10월에 이어 11월에도 빅 스텝을 밟는다면 기준금리가 1.0%포인트 뛰면서 전체 대출자의 이자는 13조원으로 급등하게 된다. 대출자 1인당 부담해야 하는 연평균 이자도 65만5000원으로 늘어난다.

저금리 기조에서 ‘벼락거지’를 면하기 위해 빚을 내 집을 산 영끌족들은 금리 급등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가계 대출의 77%가 금리 인상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변동 금리여서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 재산에 대출까지 그러모아 집을 장만한 영끌족 직장인 A 씨는 “올해 연봉 인상분을 대출 이자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게 생겼다”고 말했다.

이자도 못 내는 좀비 기업 15%↑

코로나19 사태를 빚으로 버텨 왔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은 1000조원에 육박했다. 2022년 1분기 기준 960조7000억원으로 2021년 말(909조2000억원)과 비교해 51조5000억원 증가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기준금리가 3%로 인상되면 소상공인 124만 명이 도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자영업자들은 금리 인상 직격탄을 맞고 있다. 3개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끌어다 쓴 다중 채무 자영업자 수와 대출액 증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신용 평가 기관 나이스평가정보가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다중 채무 자영업자는 지난 6월 말 41만4964명으로 2021년 말(28만6839명)과 비교해 6개월 사이 44.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다중 채무 자영업자의 대출액은 162조원에서 195조원으로 20% 증가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3고(高)’가 겹친 복합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하면 기업들의 대출 이자 부담은 약 3조9000억원 늘어난다. 0.25%포인트만 인상돼도 약 2조원의 기업 이자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한계 기업)’도 최근 5년 새 15% 늘어났다. 한국은행이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계 기업은 2017년 3111개에서 2021년 5372개로 14.8% 증가했다.

기업 대출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올해 9월 말 기업 대출(개인 사업자 등 중소기업 대출 포함) 잔액은 694조8990억원으로, 2021년 말(635조8879억원)보다 9.3%(59조111억원)나 증가했다.

가계·기업·정부 등 3대 경제 주체가 짊어진 부채 규모는 2021년 처음으로 5000조원을 돌파하며 한국 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기업·정부의 부채 총액은 5188조5000억원으로 2020년 4726조2000억원 대비 462조3000억원(9.8%) 증가했다.

가계 부채(가계 신용)는 1726조1000억원에서 1862조1000억원으로 7.8% 늘었다. 기업 신용은 2153조5000억원에서 2361조1000억원으로 9.6% 불어났다. 국가 채무(중앙+지방정부)는 846조6000억원에서 965조3000억원으로 14%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9월 말 종료 예정이었던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상환유예’ 조치를 또다시 연장했다. 이번이 5번째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를 최대 3년 연장하고 상환을 최대 1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리지 않게 돼 발등의 불을 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상환 능력이 없는 차주들의 부실 리스크만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지원이 종료되는 시점에 더 큰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번지며 경제를 위협하는 잠재적인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실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