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코로나19 사태가 주춤해지자 약속이 급속히 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약속 자리를 파하면서 ‘예상보다 일찍 끝나네’ 하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곤 했습니다. 대화 도중에도 주제 중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함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까. 며칠간 궁리 끝에 깨달았습니다. 2년여간 가장 중요한 대화의 주제였던 주식 얘기가 빠졌다는 것을.

그렇습니다. 2020년 3월 시작해 2년 가까이 불을 뿜던 한국의 주식 열기는 싸늘하게 식어 버렸습니다. 식사 자리뿐만 아니라 TV 예능 프로그램, 길거리 뒷골목, 사무실 곳곳을 장악했던 주식이란 주제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은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전쟁, 지리멸렬한 정치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2020년부터 2년 가까이 이어진 주식 열풍은 단순한 주식 투자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사태로 암담해진 분위기에서 주식은 활력소 역할을 했습니다. 월급으로 수도권에서 집 살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주식은 아파트로 가는 희망의 열쇠였습니다. 물려받은 것은 없는 청춘들에게는 한 단계 점프할 수 있는 도약대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해외 여행 갈 돈을 벌겠다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뼈빠지게 일해도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것을 멈추고 퇴사해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30대 파이어족들은 밭에 씨를 뿌리듯 주식을 산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점차 시들었습니다.

이제 이런 희망은 잠시 접고 다시 고난의 버티기에 들어갈 시간이 된 듯합니다. 시장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도 평생 주식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면 현명한 버티기를 해야겠지요. 다음 기회를 만나면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약간의 복기를 해봤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후회스러웠던 순간은 작년 5~6월께였습니다.

갑자기 주식 시장에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패턴에서 벗어나면 판이 바뀔 수 있으니 두 배로 의심하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주식 열기 때문에 소심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단 주식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소극적으로 말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을 강조할 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도 ‘설마 빠져도 얼마나 빠지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상승장에서 확인한 동학개미의 힘을 믿고 싶었던 확증 편향의 결과였습니다. 또 “Fed에 맞서지 말라”는 시장의 격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경고가 필요했던 순간들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카카오뱅크 상장 전 장외에서 시가 총액이 신한·하나·KB국민·우리 등 4대 금융지주 시총의 합계보다 많았을 때. 이 말도 안 되는 밸류에이션을 보고 의심은 했지만 그냥 넘어갔습니다. 카카오뱅크 소비자로서 느낀 편리함과 기존 은행에 대한 불신 때문에 카뱅의 혁신에 너무 높은 점수를 주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강화하고 싶은 인지적 편향이 파고든 결과입니다.

혁신은 시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가수익률(PER) 300배, 500배를 정당화해 주지는 못합니다. PER 500배라는 것은 그 회사가 500년간 이익을 내야 그만한 가치에 도달한다는 말입니다. “임진왜란 때부터 매년 저렇게 돈을 벌었어도 저 회사 못 산다”는 농담을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이유입니다. 스토리와 숫자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주어졌을 때 스토리에만 집중한 것도 아픈 대목이었습니다. 주식 시장은 숫자로 이뤄져 있음에도.
역사로부터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2000년대 초 IT 버블이 꺼진 계기 중 하나가 과도한 주식 공급이었습니다. 버블 속에 실체를 알 수 없는 회사들이 앞다퉈 상장하면서 공급이 급증했습니다. 이 부담은 나중에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작년, 재작년도 비슷했습니다. 주식 붐을 타고 엄청나게 많은 회사가 상장했습니다. ‘공모주 광풍’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작았습니다. 그냥 공급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이중 상장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물적 분할을 했습니다. “이중 상장으로 해외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지적도 했지만 더 물고 늘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지난 2년 주식 시장에 들어온 2030들의 눈물의 투자기를 다뤘습니다. 모든 세대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지만 쌓아 놓은 자산이 없는 그들이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인간은 후회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후회의 과정을 통해 다음 결정을 할 때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다니엘 핑크의 말이 생각하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