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세운상가 골목에서 LP의 매력을 느끼다

미오레코드 카운터 위의 턴테이블.
미오레코드 카운터 위의 턴테이블.
음악이 듣고 싶을 때는 스마트폰을 꺼낸다.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톱100 앨범을 터치한다. 잔잔한 음악이 필요하다면 유튜브에 ‘퇴근 후 지친 마음을 달래 주는 음악’을 검색해 누군가 만들어 둔 플레이 리스트를 고른다. 내가 원한 분위기의 노래들이 나온다.
이런 편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 들고 다닐 수도 없는 턴테이블을 사고 집 밖으로 나와 레코드숍에 들르고 나만의 인생곡을 찾아서…. A부터 Z까지 LP판을 고르는 수고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 누군가와 레코드숍 투어를 했다. 그때 들렀던 몇 군데의 레코드숍 중 한 곳이 미오레코드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 짧은 치마를 입었다. 매서운 칼바람 때문이었을까, “얇게 입으니까 춥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계획한 데이트를 다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날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곳에서 누자베스의 ‘하이드아웃 프로덕션 : 퍼스트 컬렉션(Hydeout Productions : First Collection)’을 듣고 “이 노래가 내 싸이월드 bgm(배경음악)이었어”라며 웃었던 기억은 또렷하다.

미오레코드는 종로에 있다. 2016년 세운상가 1층에 터를 잡았다가 작년 맞은편 골목의 좀 더 넓직한 곳으로 이사했다. 사장은 세운상가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향 기기가 많아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운상가는 ‘전자제품의 메카’였다. 세운상가는 1967년(내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전) 한국 최초로 종로 3가부터 퇴계로 3가까지 약 1km에 걸쳐 건설된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미국의 폭격에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웠다. 광복 후 미군 부대의 공구들을 판매하는 고물상 지대였던 이곳은 이후 컴퓨터와 음향 기기 등 전자·전기 제품 일체를 취급하는 상가로 변신했다. 1980년대 젊은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곳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1980년대 레코드 붐을 타고 음반 점포가 20개 이상 늘어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오레코드 한 곳뿐이다.

미오레코드 앞에는 LP판과 ‘DRIP COFFE 3500(원)’이라고 적힌 입간판이 있다. 창 안으로 LP와 턴테이블이 보이지만 레코드숍이라는 것을 알고 애써 찾아가지 않는다면 평범한 카페라고 생각하며 지나칠 만하다. 이곳이 맞나, 지도를 보며 기웃거리는 동안 가게 안에서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입구 옆 턴테이블 앞에 서서 핀을 옮기고 헤드셋을 썼다.

벽 서가와 박스 안에 레코드판이 빼곡하다.
벽 서가와 박스 안에 레코드판이 빼곡하다.
겪어 본 적 없는 향수를 일으키다

미오레코드는 7080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세련된 LP숍이라기보다는 작은 골방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구색 조명이 환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 서가에 붙은 마리야 타케우치의 〈버라이어티(Variety)〉와 야마시타 타츠로의 〈포유(for you)〉다. 시티팝 장르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둘이다. 그 아래에는 1950~1960년대 재즈, 스윙, 락, 팝, 펑크, 뉴웨이브, 힙합, 하우스 일렉트로닉 등 장르별로 나눠진 레코드판이 박스에 정갈하게 담겨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레코드숍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의 취향이 도드라진다는 것인데 이곳 사장님은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 없이 모든 음악을 사랑한다. 가게에 있는 LP판의 스토리도 모두 안다. 턴테이블은 카운터에 2개, 출입구 옆에 1개가 있어 여유롭게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한쪽 구석에는 CD와 카세트테이프도 있다. 모두 판매용이다. 의자에 앉아 3500원짜리 드립커피를 마시며 사장님이 디깅한 음악을 듣고 있으면 겪어본 적 없는 향수가 밀려오기도 한다. 디깅(digging)은 디제이가 자신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발굴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용어다.

LP는 클래식일까, 트렌드일까. 전 세계적으로 LP는 붐을 일으켰다. 2021년 미국 LP 판매량은 전년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앨범 판매량의 증가나 음반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는 별개로 레코드숍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다. 물성이 주는 영감을 아는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곳을 찾을 것이다. 그 충만함은 LP를 고르고 판을 꺼내 기계에 넣고 핀을 꽂아 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듣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한 번 그 맛을 본 사람이라면 스마트폰 스트리밍 앱의 세모난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지 않을까. 미오레코드가 한때 유행처럼 지나가는 공간이 아닌 시간과 함께 흐르는 공간으로 오래 있어 주기를 바란다.
LP판과 'DRIP COFFE 3500(원)'이라고 적힌 입간판.
LP판과 'DRIP COFFE 3500(원)'이라고 적힌 입간판.
새로 입고된 비틀즈의 6번째 정규 앨범 〈러버 소울(Rubber Soul)〉.
새로 입고된 비틀즈의 6번째 정규 앨범 〈러버 소울(Rubber Soul)〉.
윤제나 한경무크팀 기자 ze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