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라…대화의 시작은 ‘겸손한 질문’ 먼저
[경영 전략] 좋은 의도로 새로운 변화를 말했는데 구성원들에게 ‘바뀌는 게 없을 걸’이라는 반응을 느낀 적이 있는가. 서로 힘을 모아야 더 큰 결과를 얻는다고 수없이 말해도 자기 일만 하는 구성원 때문에 답답한 적도 있는가. 요즘 조직의 리더라면 구성원의 불신과 협업의 어려움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최근 미국의 홍보 컨설팅사인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에서 글로벌 응답자의 약 60%가 기본적으로 타인을 불신한다고 응답했다. 국내 응답자의 결과를 보면 미디어·정부·기업·비정부기구(NGO) 등 모든 기관에 대한 불신이 이전 조사보다 더 커졌다. 리더가 진실되게 말해도 믿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요즘 세대의 특징으로 개인주의를 드는 경우가 많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 속에서 살아온 세대다. 그리고 조직에서도 협업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성과를 중요하게 판단하고 그에 맞게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협업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럼에도 신뢰와 협업은 조직이 성과를 내는 데 필수적이다. 2020년 ADP연구소의 글로벌 몰입도 조사를 보면 리더를 완전히 신뢰하는 경우 업무에 완전히 몰입할 가능성이 14배나 높았다.
몰입은 조직 성과의 핵심 요소다. 그리고 점점 더 빨라지는 변화와 높은 불확실성으로 개인이 성과를 만들기는 어렵다. 조직의 성과에서 상호 의존성은 더욱 더 높아질 것이다. 불신과 경쟁의 환경에서 조직 성과에 필수적인 신뢰와 협업을 만들어 내려면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협업의 동기 부여를 만들어라조직 문화의 구루인 에드거 샤인은 ‘리더의 질문법(Humble Inquiry)’이란 책에서 신뢰와 협업을 만드는 리더의 소통법으로 ‘겸손한 질문’을 제시했다.
겸손한 질문은 답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묻고 상대방을 향한 호기심과 관심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기술이다. 이때 단순하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관찰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며 관계 맺기 과정에서 자신을 더 많이 나타내는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 태도다.
겸손한 질문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로서 서로 간의 신뢰를 높인다. 그리고 상대방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상대방은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협업의 동기가 높아진다.
리더의 질문법에 나오는 한 가지 예를 보자.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 A로 가야 하는데 B와 C의 갈림길을 만났다. 현지인에게 “B로 가면 A가 나오나요”라고 묻자 “예”라고 답했다. “C로 가도 A가 나오나요”라고 묻자 역시 “예”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는 게 더 좋을까요”라고 묻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라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당신이 “A로 가는 길을 찾고 있어요. 좀 도와 주시겠어요”라고 물었다면 어떻게 답이 돌아왔을까.
어쩌면 B나 C로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들었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A에는 왜 가려고 하냐”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이처럼 겸손한 질문은 딱 잘라 말하는 단언적인 질문과 달리 답을 얻는 것을 넘어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도 있다.
최근 필자는 “리더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라”,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따라서 많은 리더들이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첫째, 리더로서 겸손한 질문은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자. 리더는 리더다워야 한다는 오래된 암묵적 가정이 리더와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리더는 어려운 문제에 답을 제시해야 하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는 가정이다.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겸손하게 질문하면 나약하게 보이거나 권위가 떨어지고 어쩌면 리더 역할을 포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쉽게 생각하고 덤비면 이내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겸손한 질문을 실행하고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실행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자.
판단하려는 버릇을 버려라둘째로는 자신을 나타내고 진정성 있게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겸손한 질문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일어난 건가요”라고 겸손하게 질문했는데 구성원들은 야단 맞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뭔가 캐내려고 한다는 의심도 가질 수 있다. 우선 정말 궁금해 묻는 것이고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표현하고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에게 말할 때 말의 빠르기, 억양, 몸짓, 눈의 움직임, 인상 등 말 이외의 다양한 신호를 전달한다. 상대방은 본인도 잘 모르는 다양한 신호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통의 진정성 여부는 실제로 표현하는 것과 본인도 모르는 신호가 얼마나 일치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때 본인도 모르는 신호가 어떻게 전달되는 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다른 일에 집중할 때 누군가 말을 걸면 인상을 찌푸린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다. 화를 낸 기억은 없는 데 말이다.
따라서 요즘은 갑자기 누군가 자리로 와서 말을 걸면 준비된 소통의 환경부터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겸손한 질문에 앞서 자신의 목적부터 알리고 자신이 보내는 다양한 신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피드백을 받으면 자신의 진정성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드백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겸손한 질문부터 떠올리자. 리더가 되면 판단하려는 버릇이 생긴다. 질문을 통해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대화를 계속 이어 가고 싶지만 질문에 구성원이 답하면 곧바로 답을 내듯 딱 잘라 말하는 버릇이다. 그러면 더 깊은 대화가 이뤄지기 어렵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사라진다.
피드백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판단하고 딱 잘라 말하는 경우가 더 심해진다. 그리고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는 생각으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피드백을 요청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요청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할까요”라는 말에 바로 판단하고 답을 주고 싶은 마음을 참고 “그 상황이 어떻게 일어난 건가요”라고 겸손한 질문을 하면 상황을 보다 더 정확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이 밖에 구성원과 함께 연습하고 경험하는 기회를 자주 가질 필요가 있다. 리더가 분명하게 말하고 답을 주는 것이 익숙한 문화에서 겸손한 질문을 하는 문화로 바꾸려면 리더 혼자만으로 어려울 수 있다. 구성원들은 갑작스러운 리더의 태도 변화에 의아해할 수도 있고 모종의 은밀한 계획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구성원의 반응은 리더의 새로운 시도를 멈추게 만든다.
따라서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 해보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예를 들어 상명하복의 문화가 뿌리 깊은 미국 육군에서는 계급장을 떼고 얘기하는 ‘사후 리뷰(after action review)’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정 프로젝트가 종료됐을 때 직위와 직책을 벗어 놓고 서로 겸손하게 질문하기와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얻고자 한 것, 잘한 것과 아쉬운 것, 앞으로 개선할 것에 대해서 말이다.
김용우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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