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 11일 인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캠퍼스를 방문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 11일 인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캠퍼스를 방문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은 2010년 5대 신수종(新樹種) 사업을 발표했다. 새로운 10년을 이끌 먹거리를 마련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대부분 신사업들이 기존 삼성 계열사들의 주력 산업이거나 유관 산업이었던 데 반해 바이오 분야는 삼성으로선 새로운 도전이었다. 게다가 제약·바이오 분야는 기술 진입 장벽이 높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 수조원씩 쏟아부어야 한다. 성공 가능성도 낮았다.

삼성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다고 선언했을 때 두 시선이 교차했다. ‘삼성이 하면 다를 것’, ‘삼성도 묘수가 없을 것’.

삼성이 바이오에 뛰어든 지 10년이 넘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의 현황을 3가지 관점에서 짚어봤다.

① 이재용이 점찍고

“삼성은 정보기술(IT)·의학·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5년 중국 보아오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부회장은 뉴삼성을 이끌 제2 반도체로 바이오를 점찍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선 이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바이오 사업을 회사의 미래 먹거리로 거론하며 육성 계획을 밝혔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후보 물질 확대 등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10월 11일 인천 삼성바이오 송도캠퍼스를 방문했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삼성바이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2032년까지 바이오 사업에 7조5000억원을 투자해 인천 연수구에 ‘제2 바이오 캠퍼스’를 조성하고 공장 4개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생산 능력을 갖추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로 풀이된다.

② 삼성이 하면 달랐다

삼성바이오는 현재 1·2·3공장 생산 능력이 36만4000리터다. 선발 업체인 독일계 다국적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스위스 론자를 따돌리고 생산 설비 기준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약 2조원을 투자한 4공장은 생산 능력이 25만6000리터로 단일 공장 세계 최대다. 내년에 완전 가동하면 삼성바이오의 총생산 능력은 62만 리터로 론자 등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또 이는 글로벌 바이오 위탁 생산 능력의 30%에 달하는 수치다. 10여 년 뒤 2캠퍼스까지 완공되면 생산 능력은 약 100만 리터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1월 3공장 가동 이후 생산 능력 증진과 맞물려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2020년 매출 1조1648억원을 기록하면서 제약·바이오 1조 클럽에 진입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928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과 비교해 매출액은 150%, 영업이익은 343% 증가했다. 2021년에도 매출 1조5680억원과 영업이익 5373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에선 올해 3분기도 삼성바이오의 실적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③ 성공 비결 앞으로도 통할까

삼성은 반도체·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제조 경험을 바탕으로 위탁 생산(CMO)부터 바이오 분야의 첫 삽을 뜨기 시작했다. 후발 주자지만 과감하게 대형 공장을 건설하며 체급을 키웠고, 바이오 의약품 생산에서 가장 까다로운 품질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반도체를 만드는 제조업 최강자의 전략은 주효했다. 삼성바이오는 미국‧유럽‧일본 등 20여 개 국의 인증기관으로부터 모두 132건의 제품‧품질 승인을 받았다. 글로벌 제약사 12곳을 고객사로 유치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모더나에서 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을 수주했다.

막대한 생산 능력은 삼성바이오의 사업 영역을 CMO뿐만 아니라 위탁 개발(CDO), 위탁 연구(CRO)까지 확장하는 주춧돌이 됐다. 삼성바이오는 2030년 CRO-CDO-CMO의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단순 제조에서 벗어나 바이오 의약품 개발 능력까지 갖춰 부가 가치를 더욱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삼성바이오는 지난 4월 미국 제약 업체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전체를 인수하며 바이오 시밀러 기술 역량을 내재화했다.

다만 의약 산업의 오프쇼어링(생산 시설 해외 이전)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세계 바이오산업의 핵심인 미국과 글로벌 기업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특허권과 신약 연구·개발 등 돈이 되는 고부가 가치 산업만 노렸던 글로벌 제약사들은 최근 제조 부문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 제조 측의 부가 가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거치며 의약품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지난 9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 명령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NBBI)’에 대한 배경이다. 미국 내에서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게끔 독려하는 것이다. 미국 우수의약품제조관리시설(GMP) 기준을 고려하면 바이오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건설할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바이오 행정 명령 관련)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며 “한국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자 입장에선 위기이자 미국에 진출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희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바이오가 미국에 5공장을 건설하면 미국의 바이오 제재 행정명령에 대한 우려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존림 삼성바이오 대표는 최근 미국 의약품 전문지 ‘피어스파마’를 통해 삼성바이오가 해외에 공장을 건설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고 미국에서 몇 개 주에 대해 검토한 상태라고 밝혔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