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란 말에 열광…브랜드 철학으로 쌓은 팬덤

[스페셜리포트]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명성 경영 전략’의 저자 존 도얼리는 ‘명성’은 곧 브랜드 이미지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명성 관리 공식을 완성했다. 명성=‘(성과+행위+커뮤니케이션)×진정성 요소’다. 즉, ‘진정성’을 잃는 순간 브랜드 명성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고 진정성을 더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배가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회사의 명성은 진정성에 정비례한다”고 말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열풍 속에 감동을 주는 한국 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찾을 때 진정성이란 단어는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이 진정성을 인정받는 브랜드들은 시장점유율이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브랜드 스토리로 대중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파타고니아’ 유형으로 부른다.

키워드 : #진심 #마케팅 #환경 #가치 #창업가 정신 ①파타고니아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마케팅의 진심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서한. 사진=파타고니아 홈페이지 캡처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서한. 사진=파타고니아 홈페이지 캡처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2022년 9월 14일 결단을 내린다. 그와 그의 가족이 보유한 30억 달러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환경 보호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 재단에 통째 넘긴다는 결정이었다. 그는 홈페이지에 올린 편지를 통해 ‘우리가 향후 50년 동안 사업을 성장시키겠다는 생각보다 지구를 되살리겠다는 희망을 훨씬 크게 갖고 있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사용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 보호를 위해 4조원이 넘는 회사 소유권을 단숨에 포기한 결정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술렁였다. 일각에선 ‘절세 효과’를 위해서라는 의혹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은 드물었다. 창업 이후 환경 보호를 제일의 가치로 일관되게 지켜 온 브랜드 가치관과 맞닿아 있는 행보였기 때문이다.

쉬나드 창업자는 1957년 암벽 등반 장비를 만드는 ‘쉬나드 이큅먼트’를 시작으로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처음으로 만든 것은 피톤이었지만 피톤이 암벽을 손상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피톤 대신 바위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 초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사업은 꾸준히 성장했고 1972년 의류 사업을 추가했다. 쉬나드 창업자는 파타고니아가 성장해 갈수록 자신만의 사업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 buy this jacket)’라는 다소 황당한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 광고는 역설적이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파타고니아의 환경 철학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또한 환경 피해를 줄인 기능성 원단을 개발하고 모든 면제품을 유기농 목화로 제작했으며 매년 매출의 1%를 자연환경의 보존과 복구에 사용하는 ‘지구세(Earth Tax)’를 도입했다. 그 결과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불황이 찾아왔을 때도 파타고니아는 살아남았다.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는 대신 실용적이고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내구성 있는 파타고니아의 제품에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 파타고니아는 불황의 위기를 피해 갈 수 있었고 오히려 25% 이상 성장했다. 지금도 파타고니아의 신념에 비용을 지불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프라이탁
세상에 하나뿐인 값진 쓰레기
프라이탁의 원재료인 트럭 덮개. 사진=프라이탁
프라이탁의 원재료인 트럭 덮개. 사진=프라이탁
프라이탁 매장. 사진=프라이탁 제공
프라이탁 매장. 사진=프라이탁 제공
새벽 3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 오늘도 실패했어요’, ‘이 색깔 어때요’ 등의 글이 줄지어 올라온다. 업사이클링 가방 ‘프라이탁’ 홈페이지에서 신제품을 구매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인증 글이다.

프라이탁은 버려진 천막과 트럭 덮개를 재활용해 가방과 소품으로 재탄생시킨 스위스의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와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는 방수 기능이 있는 견고한 가방을 찾았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트럭 짐칸에 덮인 방수천이었다. 곧바로 재활용 업자를 찾아가 방수천을 구했다. 그 위에 패턴을 그리고 바느질해 가방을 만들었다. 천을 조각조각 잘라 만든 누더기같은 가방에 냄새까지 났지만 가방은 곧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능과 의미 두 가지를 만족시킨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프라이탁은 쓰고 버려진 트럭 덮개나 천막을 가방의 재료로 쓴다. 이 때문에 3~5명의 직원이 전 세계를 1년 내내 여행하며 400톤에 달하는 방수 천막을 수집한다. 가방끈은 폐자동차 안전 벨트를 사용하고 모서리는 자전거 고무 튜브를 활용한다. 모든 작업은 기계 없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빗물을 모아 이 물로 방수천을 세탁하고 가방을 제작하며 버려지는 천 조각도 다시 재활용한다.

프라이탁의 마니아들은 이 지점에 열광한다. 한 천막으로 여러 개의 가방을 만들더라도 낡은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단 하나뿐인 제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프라이탁 마니아들은 이를 ‘세상에 하나뿐인 값진 쓰레기’라고 표현한다. 이들에게는 빛바랜 천도, 특유의 고무 냄새도 가치 있는 희소성이다. 프라이탁의 가격은 20만~70만원 수준이다. ‘재활용 제품의 명품’으로 통한다. 오히려 이것이 구매욕을 자극해 중고 시장에서 정가의 2~3배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프라이탁의 가치에 기꺼이 고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③알맹상점
‘쓰레기 덕후들’의 진심
알맹상점. 사진=알맹상점 제공
알맹상점. 사진=알맹상점 제공
“빈 화장품 용기, 빈 샴푸통과 빈 세제통…. 멀쩡한 용기인데 내용물만 채워 다시 쓸 수 없을까.” 이 고민을 현실로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인 ‘알맹상점’의 세 공동 대표다.

자칭 ‘쓰레기 덕후’로 불리는 세 대표는 망원시장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고 싶어 바구니를 대여하고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한 알맹 캠페인에서 만났다. 이들은 한국에 세제나 화장품을 리필하는 곳이 하나도 없다는 데 주목했다. 그리고 자주 드나들던 카페 한 구석에 다섯 종류의 세제를 놓고 팝업숍을 열었다. 그러자 각자의 빈 용기를 든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덜어’ 판매한다는 쉬운 아이디어를 현실에 옮기기까지는 장애물이 많았다. 한국에서 화장품은 완제품을 덜어 판매하는 데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자격증이 필요했다. 그들은 평균 합격률이 15%를 밑도는 자격증 시험에도 합격했다. 화장품을 대용량으로 구해야 하는 일도 난관이었다. 어렵게 300kg 단위의 화장품을 사 와 쟁일 때는 망하면 자기 용기를 가져온 사람들에게 화장품을 퍼 주고 문을 닫자는 마음이었다. 알맹상점 창업의 목적이 수익성이 아니라 '쓰레기 없는 일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맹상점의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손님들에게 종이팩·병뚜껑·말린 커피 찌꺼기 등 쓰레기를 받아 모은다. 이렇게 모인 자원들은 필요한 곳과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한 곳으로 보낸다. 혜택도 지원도 없고 품이 많이 들고 공간을 차지하며 때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나는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를 어떻게든 활용해 자원으로 순환시키고 싶은 간절함, 쓰레기에 진심인 마음 때문이다. 2021년 7월 2호점도 열었다. ‘쓰레기 덕후들’의 진심에 화답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고객 덕분이다. ④바샤커피
“110년 스토리를 그대로” 진심 마케팅
바샤커피 매장 내부 전경. 사진=바샤커피 제공
바샤커피 매장 내부 전경. 사진=바샤커피 제공
바샤커피 점원. 사진=바샤커피
바샤커피 점원. 사진=바샤커피
브랜드의 진정성은 비단 ‘환경’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바샤커피는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데 진심이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바샤커피는 2019년 싱가포르 1호점을 시작으로 프랑스 파리와 모로코 등 전 세계 8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싱가포르에 가면 반드시 꼭 가야 할 명소로 꼽힌다.

바샤커피가 탄생한 것은 2019년이지만 이 브랜드는 1910년 모로코의 유명 커피 하우스인 ‘다 엘 바샤 펠리스’의 전설을 현대로 끌어왔다. 다 엘 바샤 팰리스는 윈스턴 처칠, 찰리 채플린,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당대의 정치·문화계 인사들이 활발히 모이던 사교의 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 명맥이 끊겼지만 바샤커피가 스토리를 따왔다. 110년이 지난 지금 커피 하우스의 설립 연도인 1910을 전면에 내세우고 다 엘 바샤 팰리스의 매장 인테리어를 재현했다.

흑백 체크무늬의 대리석 바닥, 체크 패턴의 타일을 매장에 사용하고 기둥에 쓰인 그린·블루·옐로·오렌지 컬러를 그대로 옮겨 왔다. 벨벳 의자에 황동 샹들리에까지…. 인테리어는 물론 직원들의 복장도 그 시절을 복제했다. 흰색 유니폼에 모로코 전통 모자를 쓴 직원들이 안내하는 바샤커피 매장은 1910년 전쟁 전의 호화로운 건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한 느낌을 준다.

최상의 맛과 향도 빠질 수 없다. 바샤커피는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공수한 100% 아라비카 원두를 모로코 전통 방식의 저온·저속으로 로스팅한다. 커피 애호가들에게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이유다. 이들은 ‘명품 드립백’을 파는 전략으로 단 3년 만에 싱가포르는 물론 세계에서 최고의 카페로 자리 잡았다. 110년 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브랜드 스토리텔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를 전략이다.
⑤세이브더덕
애니멀 프리, 최초의 용기
세이브더덕의 슬로건. 사진=세이브더덕 제공
세이브더덕의 슬로건. 사진=세이브더덕 제공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뽑거나 가죽을 벗겨내 만들었다면….

니콜라스 바르지가 창업한 비건 패션 브래드 세이브더덕은 ‘지속 가능 패션’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패딩 제품을 만들며 100% 동물성 원료 배제(애니멀 프리)를 실천하고 있다. ‘오리를 살린다’는 브랜드 이름에 걸맞게 모든 제품에 동물 유래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패딩 제품에 활용하는 오리털이나 거위털 충전재를 배제하고 자체 개발한 신소재 충전재를 넣는다. 회사 슬로건 역시 ‘우리는 자연을 따릅니다’다.

지금은 애니멀 프리를 실천하는 패션 브랜드가 많지만 첫 도전은 세이브더덕에 의해 시작됐다. 바르지 세이브더덕 창업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은 의식 있는 소비자를 위해 애니멀 프리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바르지 창업자에 따르면 세이브더덕은 지난 10년간 패딩 재킷 500만 벌을 판매했고 이를 통해 2000만 마리 이상의 오리를 살렸다. 2019년에는 미국 비영리 단체 B랩이 사회적 기업에 부여하는 인증 마크인 ‘B코퍼레이션’ 인증을 받았다. 패션 업체로는 최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