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공개…수준 기대보다 낮지만 두려운 것은 ‘생태계’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0월 초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시제품을 공개했다. 옵티머스의 성능은 대중의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가동 수준이 상자를 들고 옮기는 등의 간단한 작업에 불과한 데다 그마저도 현장이 아닌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항간에는 기술적 완성도가 너무 낮다는 평가와 함께 주가 부양용에 불과했다는 식의 비판도 있었다.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주인공’ 될까테슬라는 전통적인 기업들과 다른 관점에서 신기술을 해석하고 신제품을 개발해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 이력이 있다. 기존 자동차 기업들이 연구·개발(R&D) 단계에 머무르는 동안 전기차와 자율 주행차 시장을 한 발 앞서 개척했다. 또한 발사 후 회수해 재사용할 수 있는 우주 발사용 로켓을 최초로 상용화한 이력도 있다.그래서 향후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문을 여는 주인공이 될지는 여전히 큰 관심사다. 이번 행사에서 테슬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로봇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보여줌으로써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장화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머리·팔·다리를 갖추는 등 골격 구조가 사람과 유사하고 팔로 물건을 다루고 직립 보행을 하는 등 동작도 사람과 유사한 로봇을 뜻한다. 많은 로봇 공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이 두 팔, 열 손가락, 두 다리로 움직이는 사람 간의 상호 작용을 기반으로 형성된 인간 사회에 가장 적합한 로봇이라고 주장해 왔다. 말하고 보고 듣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손과 팔을 이용해 사람의 도구를 다룰 수 있다면 사람과 협력하거나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사용하기에 가장 우수한 로봇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로봇 공학자들의 기대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사람처럼 행동하려면 물리적인 동작을 수행하는 손·팔·다리 등의 하드웨어와 하드웨어를 작동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자율적인 판단을 수행하는 인공지능(AI)이 모두 중요해진다.
기존 로봇 기업들과 테슬라 각각의 접근 방향은 이 지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전통적인 로봇 기업들은 대부분 액추에이터·모터 등으로 구성된 기계적 구동부의 하드웨어와 관련 소프트웨어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팔·다리 등의 동작을 구현하는 개발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기존 로봇 기업들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스스로 장애물을 감지해 피하고 길을 찾아가거나 대상 물체를 다루는 방법 등 각종 행동을 결정하는 판단 작업은 여전히 사람의 직접 조종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업화 추진은 기술 개발이 완료되고 난 다음 고객 가치, 즉 로봇의 용도를 발굴하는 순서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보행 로봇의 선도 기업으로 인정받는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개발 단계에서는 걷기·뛰기 등 기본적인 동작에서부터 계단·경사지 등에서 걸어 다니거나 장애물을 뛰어넘는 고도의 동작까지 다양한 보행 방식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상용화 기회를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은 보행 동작의 완성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인 스폿을 출시하면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테슬라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핵심 기술을 보는 시각과 사업화 추진 방식이 기존 기업들과 다르다. 자율 주행차와 전기차의 사업화 과정에서 축적한 각종 기술과 양산 관련 노하우를 휴머노이드의 개발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첫째, 테슬라는 자율 주행용 AI의 활용에 초점을 둔다. 범용화 수준이 높은 팔·다리 등 기계적 구동부보다 기술적 차별화 여지가 훨씬 큰 AI에 집중했다. 머스크 CEO는 옵티머스가 경쟁 로봇들과 달리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율 주행차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자율 주행, 사물 인지·식별 등의 시각 AI를 옵티머스에 적용하면 사람의 조종을 받아야 하는 경쟁 로봇들과 달리 스스로 길을 찾아 가는 기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자율 주행차용으로 개발 중인 전용 컴퓨터를 옵티머스에도 적용할 예정인데 테슬라의 주장대로라면 경쟁사의 휴머노이드가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자동차라면 테슬라의 옵티머스는 자율 주행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로봇의 실제 사용에서 중요한 이슈인 가동 시간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 테슬라는 2.3kWh의 배터리로 휴머노이드를 하루 종일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전기자동차 개발을 통해 확보한 전력 관리 기술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경쟁사들보다 긴 가동 시간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개발 과정에서부터 사업화를 위한 생산비 절감을 추구한다. 테슬라의 강점인 부품 공용화를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도 적용해 사업성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주요 부품인 액추에이터의 공용화 사례를 발표했다. 액추에이터는 사람 몸의 관절과 근육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테슬라는 옵티머스에 들어갈 총 28개의 액추에이터를 단 6종류로 줄였다. 테슬라는 부품 공용화 과정에서도 강점인 AI를 적극 활용했다. 또한 비싼 신소재 대신 저렴한 일반 소재를 충분히 활용하려는 시도도 병행한다. 로봇의 힘줄 역할을 하는 부품의 소재로 신소재 대신 일반 철강을 사용함으로써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머스크 CEO는 이번 발표에서 3~5년 내에 약 2만 달러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시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테슬라가 2만 달러 수준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판매할 수 있다면 일부 서비스 로봇들과 당장 경쟁하게 된다. 휴머노이드의 특징인 팔과 눈을 이용해 식기를 고객의 식탁에 안정적으로 내려놓거나 회수하는 작업과 사람이 이용하는 운반용 카트에 식기를 담고 식당 내부를 이동할 수 있다면 기존 서빙 로봇들과 경쟁하게 된다. 자율 주행 로봇(AMR) 기반의 서빙 로봇들은 이런 작업을 전혀 못하므로 전반적인 생산성이 더 높을 수 있어 서빙 로봇보다 더 비싸더라도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테슬라는 기존 로봇 기업들이 가지지 못한 자율 주행 관련 AI 기술과 대량 양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 사업의 경험을 발판으로 사업화를 염두에 둔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테슬라가 목표 시점으로 잡은 3~5년 후에는 기존 기업들보다 우수한 성과에서 거둘 가능성도 있다. 옵티머스의 등장은 당분간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전통적인 로봇 강자들에게도 긴장감을 주는 시장의 촉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진한 사업 성과 덕분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어 가던 로봇 분야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호기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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