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평판, 경영진 마인드로 '반전' 꾀할 수 있어
[스페셜 리포트]위기는 브랜드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반전의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2009년 맛과 불청결로 내우외환에 빠졌던 도미노피자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공개 사과, “그동안 맛없는 피자를 제공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대중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아 매출이 수직 상승한 것처럼. ‘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가’의 마지막 주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도미노피자’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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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서가 감사문으로 “귀사가 전 세계에 판매하는 신발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가죽이 기후 변화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 신발 업체인 팀버랜드의 제프 스워츠 최고경영자(CEO)는 2009년 6월 1일 그린피스를 지지하는 환경론자에게서 6만5000통에 달하는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모두 똑같았다. 브라질에서 가축을 기르는 농부들이 목초지를 조성하기 위해 불법으로 아마존의 열대림을 훼손하고 있으므로 팀버랜드가 브라질에서 가죽을 수입한다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팀버랜드 임원들은 귀찮은 메시지로 여겼다. 임원들은 “브라질에서 구매하는 가죽이 7%밖에 안 되니 브라질에서 구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이 논란을 끝내자”고 주장했다.
스워츠 CEO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팀버랜드 가죽을 공급하는 브라질 업체들은 그 가죽이 어떤 소에서 얻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예상대로 브라질 공급 업체들은 가죽이 정확히 어떤 소에서 나오는지 모른다는 것을 조사 결과 확인했다. 스워츠 CEO는 그린피스와 협력해 가죽의 원산지를 추적하기로 했다. 가죽이 어느 지역에서 오는지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 협력하고 가죽 공급 업체들은 이 시스템에 따라 가죽을 제공할 때 환경 파괴 지역에서 공급하지 않도록 철저히 확인할 것을 서면으로 보증하게끔 했다.
팀버랜드를 압박하던 그린피스는 스워츠 CEO의 행동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웹사이트를 통해 팀버랜드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는 감사문을 올렸다. 2009년 7월 29일, 환경론자들이 스워츠 CEO에게 e메일을 보낸 지 불과 두 달 만의 일이다.만석닭강정
만석반도체로의 변신 강원도 속초에는 3대 명물이 있다. 흔들바위, 오징어 그리고 닭강정이다.
1983년부터 속초 명물로 꼽혀 오던 만석닭강정은 40년째 그 명성을 이어 가는 맛집이다. 속초 관광객들이 한 손에 만석닭강정 박스를 든 모습이 속초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만석닭강정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8년 7월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점검에서 만석닭강정은 위생 취급 기준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조리장 바닥과 선반에 음식 찌꺼기가 남아 있고 주방 후드에는 기름때와 먼지가 발견됐다.
유명 음식점의 위생 기준 위반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맛집에 속았다는 배신감도 상당했다.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고 매출은 70% 가까이 급감했다. 이 업체의 연간 매출 40%가 7~8월 여름 성수기에 나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타격이었다. 만석닭강정 경영진은 곧바로 매장 앞에 사과문을 내걸었다. 개선 사항도 줄줄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해명’에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었다.
그런데 3개월 뒤 만석닭강정 사진 한 장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글의 제목은 ‘만석반도체’였다. 직원들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위생복을 갖춰 입었고 밖에서도 모든 조리 시설을 볼 수 있도록 모든 유리문으로 투명하게 공개돼 있었다. 누리꾼들은 마치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는 반도체 생산 공정을 방불케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만석닭강정은 식약처 점검에서 지적된 매장을 곧바로 폐쇄하고 바로 옆 매장에 신규 시설을 설치했다. 모든 사업장의 후드와 덕트를 전면 교체하고 닭강정 조리 시설, 검수·포장실, 판매 공간 등을 투명 유리로 막아 위생 관리를 강화했다. 또 이 모든 것을 밖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검수·포장실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하얀 위생복을 착용했다.
위생에 대한 자신감은 만석닭강정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사람들은 다시 속초 명소로 만석닭강정을 찾는다. 2022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현지인 추천 랭킹 톱10’에 이름을 올릴 정도다.다이소
자포자기 순간이 만든 생존 전략남녀노소 모두가 즐겨 찾는 1000원짜리 상점 다이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다이소의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는 대학 졸업 후 지방 유지의 딸과 결혼해 양식업을 물려받았다. 탄탄대로를 걸을 줄만 알았지만 경험 부족으로 3년 만에 파산하고 만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끼니 걱정을 했던 그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번 종잣돈으로 트럭 행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트럭에 불이 나 상품이 모두 불타 버렸다. 충격에 그의 부인도 쓰러지고 히로타케는 혼자 상품 구입부터 진열·정리·판매·회계 업무까지 처리해야 했다. 자포자기 심정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행상을 보던 히로타케는 어느날 손님이 몰려들어 가격을 묻자 일일이 가격을 알려 주는 일이 귀찮았다. 그는 그냥 제품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100엔(약 1000원)이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반응이 꽤 괜찮았다. 손님의 지갑을 열기에 100엔이면 부담없는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히로타케는 그때부터 마트의 한 공간을 빌려 100엔 숍을 열었다. ‘싼 게 비지떡’이란 손님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가격이 저렴해도 품질은 높이자는 사업 전략을 구상했다. 제품 원가가 100엔 이상이 돼도 100엔에 팔았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심을 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판매 전략은 적중했다.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매출은 수직 상승했고 아시아와 미국으로 진출했다. 귀찮아서 손을 휘휘 저으며 “100엔이요”라고 말했던 순간이 그를 부의 반열에 앉힌 것이다.유재석
무명에서 국민 MC로 ‘브랜드 평판 1위.’
한국에서 수년째 브랜드 평판 1위를 달리는 인물이 있다. 대통령도,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도 아니다. 예능 방송인이자 ‘국민 MC’로 추앙받는 개그맨 유재석 씨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조사한 유재석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 분석은 긍정 비율이 85.97%다. 실상 설문 응답자 다수가 유재석 씨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런 그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아니 길었다. 31년 전,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한 유재석 씨는 당시 장려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귀를 후비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훗날 TV 프로그램에서 “최소한 은상 이상일 줄 알았다”며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데뷔 후 기쁨도 잠시 무명 세월이 10년간 이어졌다. 박수홍·김국진·남희석 씨 등 동료 개그맨들이 시대를 풍미할 때 유재석 씨는 앞이 캄캄한 무명 시절을 보냈다. 그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와 반성을 한 후 다짐했다. “겸손하자.” 2000년 서세원 씨의 ‘토크박스’에 출연해 이름을 알리면서 유재석 씨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그의 가치관을 밝혔다. 그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타가 되고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며 “뜨고 나서 변했다는 사람들을 제 주변에서 많이 봤는데 전 정말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되뇌었다. “항상 겸손하고 항상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노력하겠습니다.”
데뷔 31주년. 유재석 씨는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동료 개그맨 문상훈 씨가 최근 그에게 건넨 편지는 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일화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가 없다고 속편한 핑계를 댈 때마다 (유재석) 형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친절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는 내내 의심해 왔던 말을 한 번 더 믿기로 합니다.”
이 밖에 위기에 처하자 진심을 다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 기회로 바꾼 사례는 경영사에 차고 넘친다. 아동 착취 문제에 늦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한 1990년대의 나이키가 그렇다. 또 존슨앤드존슨의 1982년 시카고, 1986년 뉴욕 사고 대응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존슨앤드존슨이 적극적으로 리콜한 것만 기억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존슨앤드존슨에는 중요한 신조(credo)가 있다. 이 회사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대상은 첫째가 의사·간호사·환자이고 둘째가 직원, 셋째가 사회, 마지막 넷째가 주주다. 이 기반 위에 조성된 기업 문화가 있어 제대로 된 위기 대응이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근 카카오와 SPC가 위기 대응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기업 문화와 경영진의 마인드가 제대로 된 대응을 가로막고 있다.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반전의 기회로 만든 기업들을 눈여겨보는 이유다. 이들은 ‘위기는 위기 자체보다 어떻게 대응했는가로 기억된다’는 명제를 증명해 보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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