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2022년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폴란드 원전 사업 수주를 두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WEC)가 한수원과 한국전력공사(한전)를 상대로 지식재산권(IP) 소송을 제기했다.

업계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10월 21일(현지 시간) 한전과 한수원을 상대로 미국 수출입통제법에 따라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 1400의 수출을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했다.

APR 1400은 정부와 한국전력기술을 비롯한 공기업이 자체 개발한 2세대 원자로다. 1세대 OPR 1000을 개발해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해 캐나다·프랑스형 원자로를 대체한 이후 이를 APR 1400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APR 1400에 자사 기술이 적용됐다고 주장하며 한수원이 체코, 폴란드 등 다른 국가에 APR 1400을 수출하려면 자사와 미국 에너지부(DOE)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원전이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사용하고 있어 미국의 수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파악된다”며 “한전과 한수원은 원전 수출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의 대응책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으로 해외 원전 수주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한수원을 비롯한 ‘팀코리아’가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수주를 성공하며 폴란드와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지만 소송 향방에 따라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한국과 폴란드는 최근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MLRS), 레드백 장갑차 등 대규모 수출 계약을 맺으며 방산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전사업에서도 폭넓은 협력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폴란드는 2033년까지 최초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며, 원전을 통해 현재 90% 이상인 석탄 화력 발전 의존도를 낮추고 러시아에 대한 석유, 가스 의존도를 줄일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8월 30일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와 전화 통화로 원전·방산 분야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폴란드 원전 수주 프로젝트에서는 한국·미국·프랑스 간 3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이 폴란드 측과 10월 말 신축 사업 수주 관련 의향서(LOI)를 체결할 것으로 알려져 유력 후보로 떠오르자 미국 측이 막판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원전 동맹도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강국 부활을 기치로 원전 활성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며 2030년까지 10기 이상의 해외 원전 수주를 목표로 제시한 바 있으나 이번 소송으로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 5월 21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원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지만 2018년 중단된 한미 원자력고위급위원회(HLBC)가 여전히 재가동되지 않는 등 아직 가시화된 성과는 없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전과도 IP 갈등을 벌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전이 APR 1400을 앞세워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서자 2017년 제동을 걸었다. 지난 6월 9일 방한한 웨스팅하우스가 당초 예정됐던 한전과의 ‘해외 원전시장 협력 공동선언문’ 서명 행사를 돌연 취소한 것도 원전 협력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