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말 바꾸기에 이번엔?, 중도파 ‘반신반의’…“‘이 대표 개인 의혹에 당이 인계철선 됐다” 불만

홍영식의 정치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검찰 수사와 관련, 여권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검찰 수사와 관련, 여권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 경선 때부터 이재명 대표는 당의 ‘인계철선’이 된다고 얘기했다. 대표를 건드리면 당 전체가 딸려 들어갈 수밖에 없고 전면전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얘기다. 검찰의 칼날이 이 대표 턱밑을 바짝 겨누고 있다. 이 대표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운명이 검찰의 손에 맡겨진 상황이다.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윤석열 정권과 투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이 대표가 자신의 특검 카드에 국민의힘이 거부하자 민주당 단독으로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명운을 걸겠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인 것을 다시 꺼낸 것은 수세에 몰려 다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선 이후 이 대표의 행보를 보면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이나 한 듯하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선 패배 두 달 만의 정치 복귀 및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선거 출마, 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대표 경선 도전 등 사전 치밀한 계획을 짜 놓은 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최고위원을 비롯해 당 지도부는 친명계(친이재명계) 일색이 됐고 측근들을 요직 곳곳에 꽂아 넣는 등 의원이 된 지 두 달여 만에 무주공산이 된 당은 완전한 ‘이재명당’으로 변신했다.

조 의원은 이 대표와 민주당의 일체화·사당화(私黨化)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 대표가 잘못되면 민주당도 ‘공도동망(共倒同亡)’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숨 죽이고 있던 비명계들이 가만있을 리 없고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친명계는 여권이 이런 민주당의 분열을 통한 정권 개편을 노리고 이 대표에게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선 패배로 위기에 빠졌는데 방산株매입이 정상이냐”

검찰의 칼끝은 이 대표 목줄을 향하고 있다. 가지를 잘라낸 다음 나무 몸통을 향하는 형국이다. 이 대표가 ‘분신’이라고 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2021년 4~8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6억원이 넘는 돈을 받고 구속됐다. 수사 결과에 따라 액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돈이 대선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게 입증된다면 이 대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 대표가 최측근으로 인정한 정진상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공소장에 이 대표와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4~2017년 두산건설 등에 용도 변경, 인허가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성남FC에 후원금 160억원을 내도록 한 혐의로 두 사람을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있고 정 실장을 출국 금지했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평화부지사로 발탁한 이화영 씨는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쌍방울과의 연결 고리 의혹도 받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개발 의혹과 함께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은 하위 직원이라 성남시장 재직 때 몰랐다고 한 발언과 백현동 개발 관련 발언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 대표 자택 맞은편 경기주택도시공사 직원 합숙소를 대선에 활용한 의혹도 받고 있다.

친명계가 장악한 당 지도부는 연일 결사 항전을 외치지만 당내에선 불안감이 적지 않다. 민주당 내에선 이 대표 수사를 바라보는 세 부류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이 대표를 보호하겠다는 ‘찐명계’, 조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과 같이 그 대척점에 선 ‘반명’계, 그 중간에 서 있는 중도파 등이다.

반명계는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해영 전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그만하면 됐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설훈 의원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일찌감치 예견했었다며 이 때문에 대표로 나오지 말라고 요구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원욱 의원은 “민주당이 총선 승리, 대선 승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물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 독주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명계의 주장은 아직은 찻잔 속 미풍에 불과하다. 관건은 중도파의 향배다. 지난 대선 때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를 지지했던 상당수 의원들은 일단 관망하고 있다. 대여 전면전을 선포한 마당에 대놓고 이 대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 분열을 획책하는 역적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는 유동규 입에 운명 달려
하지만 이들은 이 대표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친명계가 당을 완전히 장악한 마당이어서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저변에 깔려 있다. ‘이재명 리스크’는 비단 사법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중진 의원의 말이다. “이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면서 정통 민주당의 본색이 사라졌다. 민주 정당으로서 활발한 토론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 대표의 뜻만 받드는 사조직이 돼 버렸다. 이 대표가 내세우는 정치적 대의가 뭔지도 모르겠다. 친명계가 신주류로 등장했지만 새로운 색채와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이재명 리스크를 방어하는 데만 당력을 쏟을 뿐이다. 견제가 사라지고 힘이 한쪽에만 쏠리면 조직 무기력, 냉소주의를 낳기 십상인데 지금의 민주당이 바로 그렇다.”

이 대표에 대한 신뢰의 위기도 지적된다. 또 다른 의원은 기자에게 “대선 패배로 당이 위기에 빠져 있었는데 패배 주역이 방산 주식을 사는 게 정상이냐”고 되물었다. 지난 대선 때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를 공약했다가 대표가 된 뒤 이를 뒤집은 것, 배우자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대한 말 바꾸기 논란 등 신뢰에 흠이 간 사례는 많다. 이 대표는 최측근 김용 부원장에 대해 이 대표는 “여전히 그의 결백함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당에선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친명계의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김 부원장이 개인 비리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차하면 김 부원장 선에서 꼬리를 잘라 이 대표 쪽으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이 대표와 측근들의 비리 의혹은 당무와 아무 관련이 없는 데도 민주당이 모든 당력을 쏟아부으며 대표 방탄에 나서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로 시곗바늘을 확 돌려 놓은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가 한·미·일 훈련에 대해 ‘친일 국방’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당내 불만이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일본 자위대 함정의 훈련 참여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일본 극우 세력의 ‘독도의 분쟁화’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훈련 장소가 독도보다 일본에 더 가까운 공해여서 억지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극단적 친일 안보’ 주장은 북핵 위기 앞에 적절하지 않고 자칫 중도층의 마음을 돌아서게 할 수 있다는 게 당내 일각의 우려다.

이런 불만들은 물밑에 잠재돼 있다. 하지만 이 대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수사 내용들이 계속 흘러나온다면 불만들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 여권 의도와 관계없이 당 분열과 정계 개편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의 행보도 주목된다. 이 전 총리 측 의원들은 검찰 수사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고 한 유동규 전 본부장의 입이 이 대표의 운명을 가르는 열쇠가 되고 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