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반발·국회 법 개정 등 KDB산업은행 본점 이전 난제에 부딪쳐
[비즈니스 포커스] 강석훈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6월 회장에 지명됐지만 본점의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산업은행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막혀 2주간 출근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취임식을 연 지난 6월 21일 강 회장은 “엄중한 국내외 경제 상황과 산적한 현안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와 산업은행, 산업은행 구성원들을 위해서라도 회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취임 후 140여 일이 지났다. 강 회장 앞에 산적했던 과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약이기도 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서둘러 해결해야 하지만 국회와 노조 모두 설득해야만 한다.
“100일을 기다렸는데, 더 기다릴 수는 없다”
지난 10월 20일 여의도 국회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의원들은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과 관련해 산업은행이 국회와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는 산업은행 본점이 이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법 개정이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산업은행법 제 4조 1항은 ‘한국산업은행의 본점은 서울 특별시에 둔다’고 명시돼 있다. 이 법안을 삭제 혹은 개정하는 절차가 이뤄져야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이 가능해진다.
국정 감사에 참석한 강 회장은 10월 20일 본점 부산 이전 문제와 관련 국회를 패싱하고 일방적으로 이전을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수석 부행장 중심으로 국회를 찾아 설득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저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 회장에게 “산업은행 직원들은 이전 계획이 행정적·입법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좋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를 상대로도 왜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지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국정 감사에서 부산 이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강 회장은 “취임 후 100일을 기다렸는데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산업은행 이전을 통해 새로운 역할을 하라는 게 정부의 방침이고 동의하는지 아닌지는 국회의 역할이며 산업은행은 정부가 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부산 이전을 두고 시민들을 희망 고문하지 말라는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국회 균형특별위원회 논의와 국회 논의 등 이전에는 시간이 소요된다”며 “그전에 부·울·경 영업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 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산업은행이 국회의 산업은행법 개정 전 이미 본점 이전에 관한 실무 협의를 마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회와의 논의가 애초부터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불거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19일 금융의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 4월 부산시와 이전 실무 협의를 마쳤다. 부지는 부산국제금융센터 문현금융단지 내 유휴 부지로, 사옥은 45개 층 내외로 건설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총사업비를 4000억원으로 계획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법 개정과 함께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산업은행 내부의 반발을 어떻게 가라앉히냐다. 당초 강 회장이 취임식을 2주 만에 열었던 것 또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대한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노조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역 균형 발전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강행하기 위한 ‘적임자’로 강 회장이 취임했다고 보고 있다.
강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경제 학자로, 2016~2017년 박근혜 정부 당시 경제 수석을 역임했다. 보수 정권과의 인연은 윤석열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의 선대위 후보 정무실장을 맡으며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정책 자문과 공약 개발을 담당했다.
산업 버팀목 돼야 할 산업은행, 내부 이슈에만 치중?
초기만 해도 부산 이전과 관련해 노사 간 소통을 시사했던 강 회장은 최근 들어 부산 이전에 대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강 회장은 9월 15일 취임 100일 기자 회견에서 “부산 이전은 국정 과제”라며 못 박기도 했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노조와 직원들이 단순히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지난 4월 ‘산업은행 이전 논란을 통해 본 금융 중심지 정책’이라는 국회 토론회에서 조윤승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이전 반대에 대한 근거들을 제시했다.
산업은행은 한국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관리하는 국책 은행으로서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특히 대기업 구조 조정과 코로나19 긴급 금융 지원 등 국가의 기간 산업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타 금융 회사와의 교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외국계 투자자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국 기관(시중은행·보험사·증권사 등) 시장 참여자를 통해 대부분의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들과의 이해관계나 조율을 위해서는 이들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상장사의 본사 중 72.3%는 수도권에 자리해 있다.
인재 유출 역시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근거 중 하나다. 실제로 강 회장이 본사 이전을 시사한 후 산업은행 직원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은행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연도별 퇴직 인원 및 신입 채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산업은행에서 퇴직한 직원 수는 9월 말 기준 100명에 달했다. 의원 퇴직(자발적 퇴직자)은 2020년 41명, 2021년 43명, 올해 71명으로 최근 3년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퇴직자를 살펴보면 올해 통계는 9월 말 기준임에도 지난해 퇴직자 합계인 77명을 넘어섰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산업계의 버팀목이 돼야 할 산업은행이 내부 이슈에만 치중해 있다는 비판도 강 회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합병과 HMM의 민영화 등 산업은행 관리 아래 있는 기업들의 향방 역시 산업은행이 처리해야 할 이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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