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 제품명도 겨우 기재
유통기한, 알러지 정보 없어 소비자 안전 취약

한국소비자원에서 지난 6월 실시한 시각장애인 식품 점자표기 소비자문제 실태조사 갈무리.
한국소비자원에서 지난 6월 실시한 시각장애인 식품 점자표기 소비자문제 실태조사 갈무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함께 지속 가능한 상품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취약 계층에 대한 접근성은 아직까지 미흡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11월 4일 점자의 날을 맞아 실제 상품들의 점자 표기 상태를 점검해봤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를 분석해 본 결과 현재 판매 중인 식품 중 37%는 아직도 점자 표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집계 기준 국내 시각장애인 인구는 약 25만명. 시각장애인들의 문자인 점자임에도 아직 100% 표기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표기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 제품에 대한 점자 표기 의무화가 지정된 것은 의약품뿐이다. 이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해 2024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식품에 대한 표기 의무는 없다.

지난 9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6월 조사)를 살펴보면 음료, 컵라면 등 총 321개 제품 중 121개(37.7%)에 점자 표기가 없다. 음료 조사업체 7개 중에는 롯데칠성음료(점자 표기율, 64.5%)가, 컵라면 조사업체 4개 중에는 오뚜기(63.2%)가 점자 표기율이 가장 높았다. 우유 제품 중에서는 40개 제품 중 단 1개에서만 점자 표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를 대상으로 식품의약안전처에 가이드라인 제정 정책 건의를 진행했다.

식약처, QR·가이드라인 배포

이에 식약처는 지난 7월 6일부터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식품 점자 표기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점자와 음성·수어영상 변환코드(QR 코드)의 식품 표기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포함해 시청각 장애인의 제품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점자에는 제품명을 기본으로 포함하고 주의사항이나 보관방법과 같은 추가적인 정보를 필요시 포함하도록 한다. 변환코드는 잉크, 각인, 소인 등을 활용해 지워지지 않게 표기, 인쇄가 불가능한 경우 스티커나 라벨의 사용이 가능하도록 명기하고 있다.
오뚜기 컵라면에 기재된 점자.사진 제공=오뚜기
오뚜기 컵라면에 기재된 점자.사진 제공=오뚜기
각 기업들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점자 표기를 확대하고 있다. 오뚜기의 컵라면에는 전 제품에 점자가 표기돼 있다. 컵밥(14종), 용기·죽(8종)에도 점자를 확대 적용했으며 제품명, 물 붓는 선, 전자레인지 사용 여부까지 점자로 표기됐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점자 위치를 쉽게 인지하도록 점자 배경은 검은색, 점자는 흰색으로 인쇄했다. 오뚜기가 완성한 점자 표기 패키지는 지난해 3월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협조를 받아 점자 위치, 내용 및 가독성 등을 점검해 완성했다.

오뚜기 담당자는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이 제품을 구매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고려해 이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컵라면 전 제품에 이어 컵밥, 용기죽에 점자 패키지를 확대 적용했다”고 말했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해부터 생수 ‘아이시스8.0’ 300mL와 탄산음료 ‘칠성사이다’ 페트병 500mL 제품 상단에 브랜드명 ‘아이시스’와 ‘칠성사이다’를 점자 표기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2008년부터 캔 음용구에 ‘음료’라는 점자를 표기했고, 2017년부터는 국내 음료 업계 최초로 칠성사이다, 밀키스, 펩시콜라 등 탄산음료 제품에 음료 대신 ‘탄산’이라는 점자를 넣어 표기를 차별화했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지난 6월 실시한 시각장애인 식품 점자표기 소비자문제 실태조사 갈무리.
한국소비자원에서 지난 6월 실시한 시각장애인 식품 점자표기 소비자문제 실태조사 갈무리.
유통기한 표기도 아직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조사 결과에서 우수한 점수를 획득한 두 군데 역시 조사 당시 유통기한 표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의 제품에서는 기재 면적이 좁다는 이유로 제품명 일부만 표기하거나, 제품마다 점 높이나 간격 방향 등이 상이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특히 식품군은 식품 오용 문제, 알러지 정보, 유통기한 확보 등이 소비자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표기 의무는 없고, 표기 기준도 모호해 관련 업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점자 기재 기준, 점자 기재 위치에 따른 위생 문제, 포장재 개발 및 생산 기술 확보 등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도 많다”며 “정부 차원의 기준 마련이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식품업계에서도 점자 표기 확대를 위해 꾸준히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