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주택 복원한 눅서울, 모자라고 부족해서 더 완벽한 공간
정처 없이 떠돌던 건축주의 발길은 후암동에서 멈췄다. “골목에서 한 발 툭 튀어나와 망루처럼 선 낡은 주택 한 채를 본 순간 ‘나만의 트리 하우스를 갖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이뤄질 것만 같았다”고 건축주는 회상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은 시간의 가치를 간직한 동네다. 남산 밑에 둥글고 두터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두텁바위마을’이라고 불린 이곳은 바위가 사라진 뒤에도 이름만은 그대로 남아 후암동이라고 불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근처라 일본 관리직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존재했고 광복 후에는 미군기지와 인접해 군·관 고위층이 모여 사는 마을이 됐다. 동시에 한쪽 판잣집 촌에는 6·25전쟁 피란민과 월남한 이들이 터를 잡았다. 부(富)와 빈(貧), 고(高)와 저(低), 이 모든 것이 혼재한 곳이 바로 후암동이다.
이 특성은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돼 오고 있다. 깨끗이 정비된 서울로7017을 지나면 길가에 놓인 작은 화분조차 정겨운 후미진 골목이 모습을 보인다. 남산 성곽길엔 조선의 역사가 담겼고 오르막길을 따라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은 일제강점기의 산물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그 가운데 눅서울이 있다.
눅서울의 용도는 명확했다. 건축주는 이곳을 작업실이자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공사를 진행하던 중 많은 사람과 공간을 공유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고 그렇게 눅서울은 조금 더 퍼블릭한 존재가 됐다.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현관문을 들어와 처음 보게 되는 1층이다. 거실 서쪽으로 난 창을 통해 후암동 골목과 서울역을 아우르는 풍경을 엿볼 수 있고 깔끔한 아일랜드 주방 뒤로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인 T자 나무 부재가 세월감을 더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발판을 들어 올리면 비밀의 방이 열린다. 과거 보일러실로 쓰였던 이곳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옛것이 보통 그러하듯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함을 선사한다. 누군가는 명상실로, 누군가는 폭신한 3층 침대를 두고 침실로 사용할 정도로 포근한 장소라고 건축주는 설명했다.
깊게 파인 홈과 못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계단 옆 나무 기둥을 지나 2층으로 오르면 남쪽으로 난 창 너머 옹기종기 몸을 웅크린 후암동 주택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곳곳에 놓인 가구와 소품에는 건축주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뉴욕·파리·런던·서울 등 세계 벼룩시장에서 공수한 스툴·오브제·주전자가 시간의 흔적과 가치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눅(nook)서울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2나길 6-2
박소윤 한경무크팀 기자 sos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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