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주택 복원한 눅서울, 모자라고 부족해서 더 완벽한 공간

좁은 후암동 골목 사이에 자리한 눅(nook)서울. (사진=이호영)
좁은 후암동 골목 사이에 자리한 눅(nook)서울. (사진=이호영)
주택이 오밀조밀 늘어선 후암동 어느 골목 사이, 은은하게 빛나는 대문자 N이 이곳이 목적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눅서울은 그렇게 작은 골목에 스며들어 있다. 193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일식 주택)’을 복원한 공간으로 명성을 떨친 것과 달리 외관은 여타 주택과 다를 바 없다. 빼꼼히 나타난 붉은 벽돌 기둥만이 이곳의 80여 년의 역사를 증명해 주는 듯하다. 하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T자 나무 부재가 노출된 벽을 배경으로 하는 아일랜드 주방. (사진=이호영)
T자 나무 부재가 노출된 벽을 배경으로 하는 아일랜드 주방. (사진=이호영)
서울, 서울, 서울건축주 이호영 대표는 24년의 교수 생활과 지방살이를 뒤로하고 2014년 고향인 서울 땅을 밟았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서울은 변화하고 있었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장소들이 우후죽순 거리를 채웠다가 사라졌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신식으로 개조된 건물이 어설프게 솟아 있었다. 젊은 시절을 뉴욕에서 보냈지만 화려하고 북적이는 대로보다 좁고 삐뚤삐뚤한 골목에 본능적으로 끌려온 그다.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웠다. 허름한 골목 안에 서울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확신했다. 창신동부터 시작해 이화동·부암동·서촌·연남동·해방촌·성수동까지 발품을 팔며 골목이 저마다 내뿜는 향기와 그에 깃든 문화를 탐미했다.

정처 없이 떠돌던 건축주의 발길은 후암동에서 멈췄다. “골목에서 한 발 툭 튀어나와 망루처럼 선 낡은 주택 한 채를 본 순간 ‘나만의 트리 하우스를 갖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이뤄질 것만 같았다”고 건축주는 회상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은 시간의 가치를 간직한 동네다. 남산 밑에 둥글고 두터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두텁바위마을’이라고 불린 이곳은 바위가 사라진 뒤에도 이름만은 그대로 남아 후암동이라고 불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근처라 일본 관리직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존재했고 광복 후에는 미군기지와 인접해 군·관 고위층이 모여 사는 마을이 됐다. 동시에 한쪽 판잣집 촌에는 6·25전쟁 피란민과 월남한 이들이 터를 잡았다. 부(富)와 빈(貧), 고(高)와 저(低), 이 모든 것이 혼재한 곳이 바로 후암동이다.

이 특성은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돼 오고 있다. 깨끗이 정비된 서울로7017을 지나면 길가에 놓인 작은 화분조차 정겨운 후미진 골목이 모습을 보인다. 남산 성곽길엔 조선의 역사가 담겼고 오르막길을 따라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은 일제강점기의 산물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그 가운데 눅서울이 있다.
2층 침실 천장의 노출된 목구조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사진=이호영)
2층 침실 천장의 노출된 목구조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사진=이호영)
Oldies but Goodies설계는 서울대 교수이기도 한 건축가 김승회 씨가 맡았다. 33㎡(10평) 정도의 일식 주택을 면밀히 뜯어본 건축가와 건축주는 뜻을 같이했다. 옛것을 들어내고 새것으로 대체하기보다는 세월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해 보자고…. 건축물에 내려진 진단은 ‘신축’이 아닌 ‘복원’이었다. 정밀한 현장 실측이 네 차례에 걸쳐 이뤄졌고 공사가 시작됐다. 집의 구조와 삶의 흔적을 최대한 나타내기 위해 건물 뼈대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제거했다. 나무 기둥 사이 짚과 흙을 채운 뒤 회벽칠을 한 공간은 건축주가 특히 보존하기를 원한 공간이다. 세월을 담은 자연스러운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총 3개의 흙벽에 유리를 씌워 건물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했다.

눅서울의 용도는 명확했다. 건축주는 이곳을 작업실이자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공사를 진행하던 중 많은 사람과 공간을 공유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고 그렇게 눅서울은 조금 더 퍼블릭한 존재가 됐다.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현관문을 들어와 처음 보게 되는 1층이다. 거실 서쪽으로 난 창을 통해 후암동 골목과 서울역을 아우르는 풍경을 엿볼 수 있고 깔끔한 아일랜드 주방 뒤로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인 T자 나무 부재가 세월감을 더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발판을 들어 올리면 비밀의 방이 열린다. 과거 보일러실로 쓰였던 이곳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옛것이 보통 그러하듯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함을 선사한다. 누군가는 명상실로, 누군가는 폭신한 3층 침대를 두고 침실로 사용할 정도로 포근한 장소라고 건축주는 설명했다.

깊게 파인 홈과 못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계단 옆 나무 기둥을 지나 2층으로 오르면 남쪽으로 난 창 너머 옹기종기 몸을 웅크린 후암동 주택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곳곳에 놓인 가구와 소품에는 건축주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뉴욕·파리·런던·서울 등 세계 벼룩시장에서 공수한 스툴·오브제·주전자가 시간의 흔적과 가치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계단 위 조명은 이 집의 유일한 펜던트 등이다. 건축주는 조명 갓을 가리켜 "마치 새장 같다"고 했다. (사진=이호영)
계단 위 조명은 이 집의 유일한 펜던트 등이다. 건축주는 조명 갓을 가리켜 "마치 새장 같다"고 했다. (사진=이호영)
‘눅(nook)’. 아늑하고 조용한 그리고 후미진 골목이라는 뜻이다. 낡은 후암동 골목에 자리한 작은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새로운 것만이 표준이 되고 곧 기준이 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 눅서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치를 톡톡히 입증하고 있다.

눅(nook)서울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2나길 6-2

박소윤 한경무크팀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