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사업자 지정 취소 위법”…법원, 운영사 손 들어줘

[법알못 판례 읽기]
2021년 11월 17일 경기도 김포시 일산대교 요금소에서 통행 요금 무료화 촉구 피켓 뒤로 통행료 징수 재개를 알리는 문구가 전광판에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1년 11월 17일 경기도 김포시 일산대교 요금소에서 통행 요금 무료화 촉구 피켓 뒤로 통행료 징수 재개를 알리는 문구가 전광판에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통행료 무료를 두고 경기도와 일산대교 운영사인 일산대교(주)가 벌인 법정 다툼에서 일산대교(주)가 웃었다.

법원은 경기도가 일산대교(주)를 상대로 내린 사업 시행자 지정 취소와 통행료 징수 금지 처분이 모두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경기도가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 의지를 밝힌 것을 고려하면 일산대교 무료화를 둘러싼 분쟁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의 통행료 징수 금지, 위법한 처분”

수원지방법원 행정4부(공현진 부장판사)는 2022년 11월 9일 일산대교(주)가 경기도를 상대로 낸 사업 시행자 지정 취소 처분 취소와 조건부 통행료 징수 금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경기도의 처분을 모두 위법하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판결에 따라 일산대교는 지금처럼 유료로 운영된다.

재판부는 “경기도가 ‘사회 기반 시설의 효율적 운영 등 공공의 이익에 필요한 경우’라고 주장하며 (일산대교) 사업 시행자 지정을 취소했지만 원고는 2017~2020년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자체 사업이 어려운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며 “최소 운영 수입 보장금(MRG) 규모가 당초 예상을 크게 벗어나 경기도에 과도한 예산 부담을 줬다고 인정하기에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통행료가 부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용자 편익에 비해 교통 기본권을 크게 제약받았다고 볼 만큼의 부담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번 분쟁은 경기도 주민들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산대교의 비싼 통행료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불거졌다. 일산대교는 28개 한강 다리 중 유일한 유료 도로다.

현재 통행료는 △경차 600원 △소형차(1종) 1200원 △중형차(2~3종) 1880원 △대형차(4~5종) 2400원이다. 소형차 기준으로 km당 요금(652원)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109원)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189원) 등 다른 주요 민자 도로에 비해 3~4배 비싸다.

경기도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2021년 2월부터 일산대교(주)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일산대교(주) 인수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그해 10월 26일 일산대교(주)에 대한 민간 투자 사업 시행자 지정을 취소하는 공익 처분을 내렸다.

공익 처분은 민간투자법 제47조에 따라 사회 기반 시설의 효율적 운영 등 공익을 위해 지자체가 민자 사업자의 관리·운영권을 취소한 뒤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경기도의 공익 처분 도입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사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결재했던 안건이다.

경기도의 공익 처분으로 일산대교는 다음 날인 10월 27일부터 무료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산대교(주) 측이 곧바로 처분 취소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무료 기간은 얼마 못 가 끝났다. 수원지법은 11월 3일 일산대교(주)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경기도는 그날 일산대교 통행료 징수를 금지하는 공익 처분을 내렸고 일산대교(주)는 이에 대해 취소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하며 맞대응했다. 법원이 11월 15일 둘째 가처분 신청도 인용하면서 일산대교는 11월 18일 오전 0시부터 다시 유료로 바뀌었다.

경기도 “무료화 계속 추진”…장기전 예고

경기도는 패소 후에도 일산대교를 무료화하겠다는 뜻을 이어 가고 있다. 1심 판결이 나온 날 곧바로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경기도는 보도 자료를 통해 “일산대교 무료화는 교통기본권 보장, 교통량 증가에 따른 사회적 편익 증진, 인접 도시 간 연계 발전 촉진 등 공익적 효과가 크기 때문에 법률적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방현아 경기도 건설국장은 “일산대교는 누구에게나 제공돼야 하는 생활 기반 시설로, 당초 국비나 도비로 건설됐다면 통행료가 부과되지 않았을 도로”라며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일산대교 무료화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강한 의지를 고려하면 일산대교 통행료를 둘러싼 소송전은 대법원까지 가서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주요 지자체들도 일산대교 통행료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일산대교 이용자들이 많은 고양·파주·김포시는 판결 후 “민자로 건설됐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일산대교는 한강 다리 중 유일하게 유료이기 때문에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무료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일산대교 옆에 무료 다리 하나 건설하라’, ‘왜 우리만 돈을 내라고 하나’ 등 이번 판결에 대한 불만이 담긴 글들이 게재됐다.

경기도는 소송을 진행하면서 일산대교 사업권 인수도 시도할 방침이다. 인수 금액은 4000억원 안팎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관계자는 “국민연금과 일산대교(주) 인수에 관한 협상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14일 일산대교 톨게이트 앞에서 통행료 무료화를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14일 일산대교 톨게이트 앞에서 통행료 무료화를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일산대교 무료화’ 6·1 지방선거에서도 화두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는 지난 6·1 지방선거에서도 주요 화두였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후보자 시절부터 일찍이 무료화를 공약으로 내건 가운데 경쟁자였던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까지 방침을 바꿔 무료화 공약을 선언했을 정도다.

일산대교 무료화를 맨 처음 밀어붙인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 재직 중이던 2021년 9월 일산대교 무료화를 선언했다. 경기도는 10월 말 일산대교 운영사인 일산대교(주)에 대한 사업 시행자 지정 취소 및 통행료 징수 취소 처분을 내리며 일산대교 통행료를 없애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일산대교(주)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일산대교 무료 기간은 22일 만에 종료됐다. 이 대표는 일산대교에 대한 공익 처분을 마지막 결재로 경기지사직을 내려놓고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그 후 다소 잊히는 듯했던 일산대교는 약 7개월 후인 올해 5월 지방선거 현장에서 매력적인 카드로 떠올랐다. 민주당 후보로 나온 김 지사가 이 대표의 뒤를 이어 일산대교를 무료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였던 김 수석도 무료화 공약을 던지면서 정치권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김 수석은 5월 20일 김포 일산대교 톨게이트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단지 1.8km를 건너가기 위해 주민들은 1200원을 내야 한다”며 “경기지사가 되면 즉시 일산대교 무료화 추진 협의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 수석의 발표에 김 지사 측은 곧바로 반발했다. 김 지사 측 선거대책위원회 선임 대변인이던 홍정민 민주당 의원은 논평을 내 “일산대교 무료화를 비난했던 한 달 전 본인 모습도 기억나지 않느냐”며 “이재명의 일산대교 무료화는 나쁜 무료화고 김은혜의 무료화는 좋은 무료화인가”라고 따졌다.

김 수석은 공약 발표 한 달 전인 4월 14일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 토론회에서 “이 전 지사가 일산대교 통행료를 공짜로 한다며 1조원이 넘는 돈을 후임 지사에게 떠넘기고 갔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은 방침 뒤집기 논란에 대해 “이 전 지사와는 다르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는 “이 전 지사의 무료화 추진은 대선 치적 쌓기용 실적에 불과했다”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추진된 무료화는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내지도 못한 채 주민들에 희망 고문만 제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포시·고양시·국민연금이 참여하는 협의체에 모든 방법을 올려놓고 해결책을 찾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