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가격 상승 버티기 어려울 것”…커피숍, 유제품 가격 줄인상 예고
[비즈니스 포커스]서울우유협동조합은 우유 제품 가격을 11월 17일부터 평균 6%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표 제품인 흰 우유 1리터의 가격은 대형마트 기준 2710원에서 2800원 후반대로 올랐다. 매일유업도 900mL짜리 흰 우유 제품 가격을 2610원에서 2860원으로 9.6% 인상했고 남양유업 맛있는 우유GT는 출고가를 8% 올려 2600원에서 2800원으로 가격이 높아졌다. 한 우유업계 관계자는 “당장 낙농가에서 인상된 가격으로 원유를 제공받아야 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원유 가격 인상으로 우유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유 가격 인상으로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유제품·빵·커피 등의 가격도 줄줄이 인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고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단행한 원유 가격 인상의 파장이 소비자들의 장보기 부담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리터당 52원 오른 원유 가격업계 1위인 서울우유를 신호탄으로 매일유업·남양유업·동원F&B 등 우유 생산 기업들은 11월 17일부터 일제히 5~11% 수준으로 자사가 판매하는 우유 가격을 인상한 상태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인기를 끌고 있는 대형마트·편의점 자체 상표(PB) 우유도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유 가격이 오른 이유는 낙농진흥회가 11월 3일 원유(原乳)의 기본 가격을 11월 16일부터 리터당 49원씩 올리기로 한 것이 원인이다. 특히 낙농진흥회는 올해 원유 가격 인상이 늦게 결정된 점을 감안해 올해 연말까지 원유 가격을 리터당 3원씩 추가 인상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원유 가격이 올해보다 52원 비싸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우유 가격 인상 폭은 크지 않다. 낙농진흥회가 원유 가격 인상을 49원 예고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흰 우유 1리터의 가격이 3000원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과거 원유 가격이 리터당 약 20원 올랐을 때 우유 가격이 150∼200원 비싸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원유 가격이 50원 넘게 상승한 만큼 500원 이상 우유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우유 1리터의 가격이 3000원을 돌파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 배경이다.
다행히 우유 값 3000원 시대가 오는 것은 막았다. 우유 업체들이 인상 폭을 최소한으로 조정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유 가격을 인상한 매일유업 관계자는 “원유 값 외에도 인건비와 물류지 급등과 같은 가격 상승 요인 압박이 많았지만 소비자 물가 안정을 고려해 인상 폭을 줄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유 가격 상승이 단순하게 우유 가격 인상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유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들의 가격 인상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우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제품의 가격 인상이 바로 이어지는 추세다.
빙그레는 바나나맛 우유 값을 11월 중에 올리기로 했다. 편의점 기준 1500원에서 1700원으로 13.3% 오른다. ‘국민 요구르트’로 불리는 요플레 오리지널 값도 16% 오른다.
내년에는 커피·빵·과자 등이 줄줄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올해 잇달아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의 원성을 산 프랜차이즈 커피업계는 내년 다시 한 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한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업체와 맺은 우유 공급 계약이 연말에 끝나는 만큼 내년부터 가격 인상 압박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유가격연동제’ 손봐야 지적도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커피업계는 연간 단위로 우유 생산 기업들과 우유 공급 계약을 하고 제품을 공급 받는다. 업종 특성상 매일매일 대량으로 우유를 들여오기 때문에 대형마트보다 훨씬 싼값에 이를 체결한다.
따라서 11월 17일부터 우유 가격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맺었던 계약을 토대로 우유를 공급받아 아직 제품 가격 인상 압박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내년에 다시 계약해야 하는 만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인상된 우유 가격을 토대로 협상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우유를 넣은 카페라떼 등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23년 새해를 맞이하기까지 불과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만큼 내년 초 정도에 가격 인상을 검토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제빵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들 또한 수개월 혹은 연간 단위로 계약해 우유를 공급받는다.
제빵업계 관계자는 “최근 맺은 계약이 끝나면 우유를 사용하는 빵 등의 원가 인상 압박이 커져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와 같은 제과점의 빵 가격도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원유 가격 인상으로 관련 업계의 제도에 대한 불만도 다시 한 번 거세지고 있다. 한국의 원유 값은 ‘원유가격연동제’를 통해 정해진다.
원유 가격을 매년 조정하는 제도로, 전년도 원유 기본 가격과 우유 생산비 증감액 등을 바탕으로 결정된다. 협상위원회가 전년 대비 원유 기본 가격 변동액의 10% 내에서 협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제도가 생긴 취지는 이렇다. 2004년과 2008년 원유 값이 각각 14%, 20% 오르는 등 이른바 ‘우유 파동’이 일어났다. 큰 폭의 오름세를 막기 위해 정부는 2013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역시 급등한 사료 가격과 국제 유가 등 낙농가의 원재료 부담이 커졌다는 이유에서 원유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유제품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원유 가격 안정은커녕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문제 삼는다.
협의를 통해 원유 가격이 정해지게 되자 매년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원유 가격을 어김없이 올리고 있다. 여기에 맞춰 우유나 유제품 가격 또한 인상되며 결과적으로 물가 불안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원유 가격은 지난해 8월에도 협의에 따라 리터당 21원 오른 바 있다.
원유가격연동제와 함께 시행 중인 ‘원유 쿼터제(총량제)’와 관련해서도 유제품업계의 불만이 높다. 원유 쿼터제는 유제품 생산 업체들이 매년 축산 농가에서 사전에 계약된 분량을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하는 제도다.
한 유제품업계 관계자는 “우유나 유제품 소비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의무적으로 계약된 물량을 사야 하다 보니 창고 안에는 재고만 쌓여 유제품 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제도 자체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원성이 자자한 만큼 향후 정부가 원유가격연동제를 보완해 나갈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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