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만 있던 폐가를 아기자기함으로 채운 전북 무주 ‘나무와 그릇’

전북 무주군 설천면 지전마을에 위치한 카페 '나무와 그릇'
전북 무주군 설천면 지전마을에 위치한 카페 '나무와 그릇'
'나무와 그릇'이 자리한 지전마을 돌담길은 지난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 262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와 그릇'이 자리한 지전마을 돌담길은 지난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 262호로 지정되었다.
차창 너머 풍경이 논으로, 천으로 뻥 뚫린 시골길을 내달리다 보니 그 평화로움에 취해 그만 목적지를 지나칠 뻔했다. 돌담에 투박하게 쓰인 표지를 따라 다다르니 곳에는 빨간 우체통이 마중 나와 있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자 한눈에 담긴 광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푸른 잔디와 가을꽃이 어우러진 마당,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감, 굴곡진 기와가 얹힌 지붕 등 정겨운 풍경이 영락없는 시골집이다. 동화 속 온화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따스히 반겨줄 것 같은 분위기다. ‘시골집의 로망’ 하면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모아 놓은 곳이 분명하다.
이곳은 전북 무주 지전마을에 자리한 마실거리와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나무와 그릇’ 카페다.
“시골집도 예뻐요”일반적인 시골집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벌레와 거미줄, 얼른 버려야 할 것 같은 주인 잃은 물건들이 잡다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깨끗한 화장실이나 기력을 충전시켜 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엔 온통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 소품 하나하나 주인이 애정을 담아 잘 관리한 티가 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곳 주인인 중년의 부부가 폐가였던 곳을 매입해 뼈대만 살려둔 후 2년 동안 본인들의 취향이 담긴 물건들로 채워 꾸몄다고 한다. 안주인이 가장 아끼는 떡살은 안채 주방으로 향하는 문 손잡이가 됐고 부엌의 연기가 나갈 수 있도록 창살을 꽂아 두던 기둥은 안채 중앙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하이라이트는 화장실이다. 이곳의 화장실은 총 두 곳인데 남녀 공용 화장실에 더해 그릇을 모아둔 갤러리 안쪽에 여성 전용 화장실이 하나 더 있다. 자작나무 손잡이와 잠금장치를 대신하는 나무 걸쇠, 에스닉한 타일을 보니 커피를 몇 잔이고 마셔도 안심 된다. 늘 시골에서 화장실을 갈 때면 마음을 굳게 먹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시골 특유의’라는 뜻의 러스틱(rustic)과 ‘생활’을 의미하는 라이프(life)의 합성어인 러스틱 라이프의 로망이 완벽히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곳 주인 부부가 전국의 공방을 돌아다니며 골라 온 컵과 그릇, 직접 만든 코스터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곳 주인 부부가 전국의 공방을 돌아다니며 골라 온 컵과 그릇, 직접 만든 코스터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음료와 함께 내어 주는 주전부리는 포크 대신 사용하는 나뭇가지가 인상적이다.
음료와 함께 내어 주는 주전부리는 포크 대신 사용하는 나뭇가지가 인상적이다.
“저는 망태기가 그려진 머그컵에 주세요”아침 출근길에 수혈하듯 들이켜는 일회용 커피 잔에는 보통 초록의 사이렌 여신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내어준 커피 잔에는 망태기가 그려져 있다. 방어할 새도 없이 실소가 터진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괜스레 망태기를 한 번 보고 또 한 모금 마시고 보고 자꾸만 보게 된다. 함께 곁들여 주는 주전부리는 어느 날은 통밀보리빵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쑥개떡이기도 한데 계절마다 내주는 간식거리는 달라도 포크 대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나뭇가지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나뭇가지는 어릴 적 소꿉놀이 할 때나 가지고 놀았던 것 같은데 또다시 별것 아닌 것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보리차가 담긴 자그마한 주전자 손잡이는 그보다 더 작은 싸개로 싸여 있는데 중학교 기가(기술과 가정) 시간에 한 땀 한 땀 꿰매 만든 천쪼가리가 생각난다. 앙증맞은 주전자 손잡이 싸개 하나, 엉성한 모양새의 망태기가 그려진 컵 하나, 포크 대신 사용하는 나뭇가지 하나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ㄷ’자 모양으로 구성된 이곳은 대문으로 들어섰을 때를 기준으로 정면으로 보이는 안채와 안채 좌우의 두 개의 별채로 구성돼 있는데 대문과 가까운 별채에는 그릇·컵·젓가락·수저받침대 등의 수공예품을 사이좋게 모아 놓고 판매하고 있다. 주인 부부가 전국에 있는 공방을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작가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망태기가 그려져 있던 것과 같은 모양의 컵에는 모과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커피포트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체리·소파·들풀 같은 아늑하고 따뜻한 것들이 그려진 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오래된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는 이곳의 하이라이트 포토존.
오래된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는 이곳의 하이라이트 포토존.
주인이 직접 나무 판자에 옮겨 적은 시 구절이 투박한 듯 낭만적이다.
주인이 직접 나무 판자에 옮겨 적은 시 구절이 투박한 듯 낭만적이다.
“아이유 앨범 재킷 사진처럼 찍어 줘”사실 이곳에서 프로필 사진을 바꿀 만한 인생 샷을 남기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마치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 재킷이 연상되는 이곳의 포토 스폿을 봤는데 보자마자 ‘인생 샷 각’이라고 생각했다(실제로 아이유의 앨범 재킷 사진을 촬영한 곳은 서촌 근처 대오서점이다).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한 카페나 식당들 중에는 포토존을 조성해 놓은 곳이 많다. 저기에선 무조건 인생 샷을 하나 건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꾸며 놓은 곳도 있지만 반대로 공간의 특성이나 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거부감이 느껴지는 곳도 있다. 그중 최악은 조악한 네온사인과 조화로 꾸며진 곳인데 이런 곳은 믿고 거른다.
또 다른 별채에 조성된 이곳의 포토존은 뒤뜰의 돌담과 가을꽃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별채 마루에 앉아 있기만 해도 아날로그 감성이 그득하다. 오래된 헌책방에 온 것 같은, 따뜻한 시골집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오래된 책들이 한 권씩 포개져 있는 멋스러운 모양새는 억지로 따라하기도 쉽지 않은 모습으로 포토존을 완성한다.
이곳에서 인생 샷을 찍고 싶다면 하늘하늘한 소재감이 느껴지는 원피스나 치마를 입고 치맛자락을 꽃잎처럼 흐트러뜨린 채 찍는 것을 추천한다. 돌담에 소복이 쌓인 눈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겨울도 좋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비 오는 날도 좋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면 필름카메라를 목에 메고 와 대문 앞 바구니 달린 자전거, 주방으로 향하는 빨간색 문, 시구절이 쓰여 있는 나무 판자, 화분을 심은 항아리, 돌담 위 소담히 쌓인 기왓장, 부지런한 주인이 차곡차곡 모아 놓은 장작, 손때가 묻어 빛이 바랜 의자, 화려하지 않아도 보기 좋게 피어난 들꽃 하나하나 담아 가도 좋다.

나무와 그릇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지전길 25-2
운 영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오후 6시 라스트 오더)
휴무 매주 화·수 정기 휴무(11월 기준, 이후 휴무 인스타그램 참조)
인스타그램 @namuwagrt

강은영 한경무크팀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