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 관련 문책 경고로 연임 안갯 속…‘관치 금융’도 우려 돼
[비즈니스 포커스] 연말연초 금융권에 인사 폭풍을 앞두고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거취가 주목받고 있다. 손 회장은 2017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한 후 2019년 1월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회장과 은행장직을 함께 수행해 왔다.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겸직 조항이 없어지면서 2020년 3월부터 초대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을 맡고 있다.손 회장은 우리금융그룹의 최대 실적을 이끌고 우리금융그룹의 숙원이었던 금융지주로의 재출발 등 큰 성과를 이뤄 냈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만 해도 연임 가능성이 상당히 높게 예상됐다.
하지만 2019년 1조6000억원 상당의 금융 피해를 초래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의 징계가 확정되면서 향후 인사의 향방은 알 수 없게 됐다.
이복현 금감원장, “현명한 판단 기대한다”
금융위원회는 11월 9일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회장에 대해 ‘문책 경고’ 상당의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금융위는 이날 정례 회의를 열고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 등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발견된 위법 사항에 대해 퇴직 임원 문책 경고 상당 등의 조치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또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사모펀드 신규 판매를 3개월간 정지하는 업무 일부 정지 제재를 결정했다.
우리은행은 원금 보장을 원하는 80대 초고령자에게 위험 상품을 판매하거나 안전한 상품을 원하는 고객의 투자 성향을 공격 투자형으로 임의 작성해 초고위험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판매 규모는 3577억원으로 은행권에서 가장 많았다. 당시 은행장이었던 손 회장 역시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손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연임을 위해서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시기에 제재가 확정되면서 손 회장에게 연임 성공은 안갯속이 됐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되고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된다.
물론 손 회장의 연임이 완전히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니다. 문책 경고 징계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이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이 집행 정지 신청을 인용한다면 징계 효력이 정지돼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
게다가 손 회장은 법률적 리스크를 이미 해결했던 경험도 있다. 앞서 2020년 3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문책 경고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법원이 집행 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회장직 연임에 성공했다. 이후 손 회장은 DLF 사태와 관련한 징계 처분 취소 소송 1, 2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이 쉽사리 징계 취소 소송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올해 우리은행 내부에서 700억원대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자금 관리 체계가 가장 엄격해야 할 시중은행권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금융권은 물론 전체 기업들에도 큰 충격을 줬다.
여기에 금감원이 우리은행 횡령 사건을 검사하고 있다는 점도 손 회장의 라임 사태 징계가 연말이 다 돼서야 이뤄진 이유이기도 하다.
징계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연일 쏟아내는 ‘말’ 역시 손 회장을 압박하고 있다. 이 원장은 11월 1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열고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 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이 직접 은행지주 이사회를 향해 경영진 선임과 관련한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이 원장은 이에 앞서 손 회장의 징계 결정과 관련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우리금융 측에서 제기할 수 있는 효력 정지 가처분 및 징계 무효 행정 소송 등을 사전에 차단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심사숙고’ 돌입한 우리금융이사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감원은 우리은행 횡령 사태를 조사하느라 이제야 손 회장의 징계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징계 시기가 석연하지 않다는 반응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올해 연말부터 연초는 우리금융지주를 포함해 금융권에 임기가 만료되는 CEO가 상당히 많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대대적인 금융권 인사 시즌이다. 지난 11월 7일 지방 최대 금융지주인 BNK금융지주의 김지완 회장이 자녀가 다니는 회사를 부당 지원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조기 퇴진했다. 김 회장의 조기 퇴진으로 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공석이 하나 더 생겼고 이번 손 회장 역시 징계를 받음으로써 연임 여부를 알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관치 금융’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금융노동조합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정권에 의탁한 관치 인사의 우리금융그룹 장악 시도를 중단하라”며 “무리한 중징계를 통해 현 우리금융지주 CEO를 몰아내고 관치 인사를 시도하는 우리금융 흔들기가 계속된다면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논란을 의식한 것인지 이 원장은 손 회장에 대한 문책 경고 중징계가 결정된 다음 날 “정치적 외압 등 어떤 종류의 외압도 없다”고 단언했다. 이 원장은 11월 1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금융 시장 리스크 점검 및 금융회사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혹여나 향후 어떤 외압이 있더라도 제가 정면으로 그에 맞서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일단 칼자루는 우리금융지주에 넘어갔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11월 25일 정기 이사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노성태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11월 14일 손 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심사숙고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사진의 결정에도 시선이 쏠린다. 우리금융은 사외이사 7인으로 구성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회장 후보를 선출한다. 사외이사는 우리금융의 주주인 IMMPE·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유진자산운용이 추천한 인물들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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