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VFX 업체가 방송사에 동일한 군함 영상 제공…법원의 판단은?

[지식재산권 산책]
영화 ‘명량’ 포스터   사진=한국경제신문
영화 ‘명량’ 포스터 사진=한국경제신문



드라마나 영화 등의 영상물을 제작할 때 시각적 특수 효과(VFX : Visual effect), 그중에서도 컴퓨터 그래픽(CG)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판타지나 공상과학(SF) 장르의 작품에서 사용 빈도나 비율이 가장 높지만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나 현실의 얘기를 다루는 작품에서도 CG는 자주 사용된다. 과거 실재했던 물건을 CG를 통해 영상에 구현했을 때 저작권을 둘러싼 권리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순신 장군과 명량 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은 2014년 개봉돼 1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명량’에는 왜군의 대장선인 ‘안택선’과 중형 군함인 ‘관선’이 등장하는데 이들 군함을 영상으로 구현할 때 CG 기술이 활용됐다.

영화 미술팀이 안택선과 관선을 디자인하고 모형을 제작해 촬영했고 이 촬영한 자료를 토대로 3D 모델링 형태의 복제본이 만들어졌으며 이 복제본에 색상·질감·무늬 등 텍스처(texture)를 입력하고 완성된 데이터에 움직임(애니메이션)을 부여한 뒤 이를 바다 등의 실제 배경을 촬영한 영상과 합성해 최종적인 영화 장면이 제작됐다.

영화 제작사의 의뢰를 받은 VFX 업체는 영화 미술팀이 작성한 시안과 시뮬레이션 이미지를 토대로 CG 3D 모델링 소스를 구현했다.

한편 모 방송사는 2016년께 이순신 장군에 대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5부작 드라마를 제작해 방영했다. 이 드라마에도 CG 기술을 통해 구현된 안택선과 관선이 등장하는데 동일한 VFX 업체가 CG를 담당했다.

영화 제작사는 방송사와 드라마 연출 프로듀서(PD)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행위의 정지 및 예방과 침해물의 폐기 그리고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영화 속의 안택선과 관선은 저작권의 보호 대상인 미술 저작물이고 영화 제작사가 그 저작권자이며 VFX 업체가 영화 제작사의 허락 없이 위 미술 저작물에 의거해 드라마의 CG 장면을 제작해 저작권을 침해했는데 방송사와 PD는 이런 사실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드라마를 방영하는 등으로 복제권·배포권·공중 송신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또 영화 제작사는 방송사와 PD가 드라마를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외부에 공표해 성명 표시권을 침해하고 영화 속 안택선과 관선의 내용 일부를 변경해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도 들었다.

법원은 영화 속 안택선과 관선의 콘셉트·디자인·설계도·모형은 기존의 고증 자료와 구별되는 저작자 나름의 창조적 개성이 나타난 미술 저작물이고 그 저작권은 제작을 맡은 영화 제작사에 귀속된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방송사와 PD는 VFX 업체에 의해 구현된 CG 3D 모델링 소스는 위 미술 저작물의 2차적 저작물이고 그에 대한 저작권은 VFX 업체에 귀속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위 미술 저작물과 비교할 때 위 모델링 소스에 창작적 표현 형식이 부가됐다고 보기 어려워 2차적 저작물이 아닌 복제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설령 위 모델링 소스가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하더라도 부가된 창작적 표현 형식은 영화 제작사의 상세한 지시에 따른 것으로 VFX 업체는 매체 변경을 위한 기계적인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이므로 위 모델링 소스에 대한 저작권도 영화 제작사에 귀속된다고 봤다.

나아가 위 모델링 소스에 대한 저작권이 원시적으로 VFX 업체에 귀속된다고 하더라도 영화 제작사와 VFX 업체 간의 계약에 따르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일체의 저작 재산권이 영화 제작사에 양도됐다고 판단했다.

이렇듯이 영화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다는 전제에서 법원은 저작권 침해의 두 요소인 의거 관계와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방송사와 PD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이 사건은 그 외에도 여러 쟁점이 있지만 여기서는 저작권의 귀속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진구 법무법인(유) 세종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