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엔저는 서민층의 생활고 심화로 이어져
과거와 달리 일본의 수출도 부진해 사상 최대 무역 수지 적자
한국도 수출 둔화 및 저출생·고령화·지역 경제 쇠퇴 등 우려
디지털 혁신과 수출 전략 연계성 중요

[경제 돋보기]

일본 엔화 가치의 급격한 약세, 지나친 달러화 강세는 아시아와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한국 경제에도 부담이 되고 있지만 11월 들어서는 엔저 현상이 다소 주춤하고 있다. 2022년 초 달러당 115엔에 불과했던 엔화는 10월 한때 달러당 151엔까지 급락하는 등 엔저 현상이 심화되면서 대내외적인 불안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완만한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 확인되면서 엔화는 11월 10일에 달러당 146엔에서 141엔으로 급등, 11월 11일에는 138엔대를 기록한 이후에도 140엔 전후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내년에는 적어도 미국의 금리 인상 폭이 올해보다는 좁을 것으로 보여 엔저 압력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하지만 일본으로서는 극심한 엔저가 서민층의 생활고 심화로 이어져 여당 지지율이 부진한 상황이다. 과거의 엔저 시기와 달리 이번 엔저에서는 일본의 수출이 뚜렷하게 늘어나지 못하고 올해도 사상 최대의 무역 수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일본은 막대한 해외 자산의 수익이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경상 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줄고 있어 저출생·인구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채권 대국으로서의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수출 활성화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종합 경제 대책을 지난 10월 각의 결정하면서 엔저를 활용한 수출 확대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엔저에 힘입어 뚜렷하게 수출이 확대되고 있는 분야는 농림수산물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종합 경제 대책에서 고급 농산물을 중심으로 일본산 농림수산물의 수출을 2021년의 1조2000억 엔에서 2025년까지 2조 엔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농림수산물의 해외 마케팅 지원, 새로운 고급 품종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역 관광 산업의 부흥, 지역 토착 중소기업의 수출 활성화 등 지역 차원에서의 수출 확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첨단 분야의 성급한 해외 투자가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반도체·배터리 산업의 부활·강화와 함께 일본 내 생산 비율을 높인 공급망 강화에 주력하는 등 차세대 수출 산업을 위한 생산·투자 활성화, 경쟁력 강화에도 한층 주력할 방침이다.

한국도 엔화와 함께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수출이 둔화되는 한편 중·장기적인 과제인 저출생·고령화, 지역 경제 쇠퇴 등의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으로선 이러한 과제에 대응하면서 수출 활성화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일본처럼 지역 차원의 ‘버는 힘’의 강화, 지역별 수출 전략의 활성화, 이를 위한 농림수산물의 고급화 및 수출 마케팅 지원, 지역 관광 산업의 일체적인 활성화, 지역 토착 중소·영세 기업의 수출 촉진 등이 중요하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디스플레이 등 수출 주력 분야에서 중국 등의 추격자와 차별화된 고부가 가치 차세대 수출 제품의 지속적인 개발과 함께 해외 투자와 수출의 선순환 강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한 신제품 경쟁력 강화, 생산성 제고, 탈탄소 공법의 선행적 개발,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강화 등을 통해 제품과 함께 관련 소부장의 수출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의 디지털 서비스 수출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고 고도 서비스 분야의 수출 산업화를 위한 디지털 혁신과 수출 전략의 연계가 중요하다. 스마트 시티, 디지털 정부, 카카오·라인 등 플랫폼을 활용한 디지털 서비스 등이 초기부터 80억 명의 세계 시장을 상대로 수출 지향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서비스 수출을 각종 프로젝트, 인프라 패키지 수출 전략과 연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출 경쟁력의 유지와 함께 무역 적자를 축소하기 위한 차세대 청정 에너지 관련 수출 경쟁력의 제고도 중요하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관련 기기·소부장·솔루션 분야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국내적으로도 에너지 자급도를 확대하고 원자력의 강화와 함께 화석 연료의 의존도를 감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
역대급 엔저 속 한국 수출 전략의 고민 [이지평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