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소노미 따라잡기-지속 가능 경제 활동 판별 기능

[ESG 리뷰]
6대 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매출·투자 비율 공시해야
한국에서 지속 가능 경영 및 투자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지 벌써 3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간 전 세계 주요국은 그린 뉴딜과 탄소 중립 정책을 발표했고 수많은 글로벌 기업은 지속 가능 경영을 강화했다. 대규모 투자 자금이 지속 가능 펀드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펀드에 유입되면서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택소노미, 그린 워싱 논란 종식시킨다

하지만 짧은 기간의 급성장으로 내실을 다지는 노력은 부족했다. 이에 따라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에 대한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그린 워싱 논란을 종식시키고 진정한 지속 가능 경제 활동에 정책과 투자가 집중되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택소노미(taxonomy)가 선행돼야 한다.

택소노미(taxonomy)의 사전적 의미는 그리스어로 ‘분류하다(tassein)’와 ‘법·과학(nomos)’의 합성어로, 표준화되고 체계화된 ‘분류 체계’를 뜻한다. 지속 가능 발전 분야에서 택소노미는 투자 자금이 탄소를 적게 배출하고 회복력이 있으며 자원 효율적인 경제로 유입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지속 가능 경제 활동 분류 체계를 뜻한다. 모든 지속 가능 정책·경영·투자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택소노미는 전 세계적으로 유럽연합(EU)과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초기 개발을 주도했고 현재 한국·몽골·중국·아세안 등 30여 개국이 자체적으로 택소노미를 발표 혹은 개발 중이다.

택소노미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제도화가 높은 수준으로 단계별로 진행되는 곳은 EU다. 2018년 3월 EU 집행위원회는 자본이 지속 가능 관련 경제 활동에 유입될 수 있도록 3대 목표와 10대 액션 플랜을 담은 ‘지속 가능 금융 액션 플랜(Action Plan on Financing Sustainable Growth)’을 발표했다. 그중 택소노미를 10대 액션 플랜의 첫째로 선정했다.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에 대한 정의와 범위 확립을 관련 정책과 투자·경영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2020년 6월 EU 집행위가 세계 최초로 택소노미 규정을 채택했다. 택소노미는 크게 환경 목표에 중점을 둔 ‘그린 택소노미’와 사회 목표에 중점을 둔 ‘소셜 택소노미’로 나뉜다.

그린 택소노미는 EU 집행위에서 2020년 11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6월 구체적인 친환경 기술 선별 기준(Technical Screening Criteria)을 담은 위임 법률이 채택됐다. 기후 변화·수자원·순환 경제·오염 방지·생물 다양성 등 6대 환경 목표를 설정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나머지 환경 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준다면 친환경 경제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6대 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매출·투자 비율 공시해야
EU, 내년 1윌 시행…소셜 택소노미 논의도
소셜 택소노미는 EU 집행위에서 2021년 7월 초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어 지난 2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아직 위임 법률은 채택되지 않았다. 소셜 택소노미는 그린 택소노미를 기반으로 노동자·소비자·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인들의 사회 규범적 목표 달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경제 활동을 정의해 해당 분야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확대하고 최소 안전 기준을 구체화해 위험을 회피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종합적으로 택소노미는 ①지속 가능성에 대한 환경·사회 목표를 설정하고 ②해당 목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수행하고 있는지와 ③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사회적 피해를 회피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 기업이 전체 비즈니스 중 몇 %를 그린 택소노미에 부합하는 경제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그림2>에서 확인할 수 있다.
6대 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매출·투자 비율 공시해야
이렇게 마련된 EU 택소노미 정책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 목표별로 이해관계인 협상을 통해 구체적 기술 선별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포함한 위임 법률을 EU 의회에서 채택,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6대 환경 목표 중 ‘기후 변화 완화·적응’ 목표에 대해서는 이미 2021년 6월 위임 법률 채택이 완료됐다. 하지만 천연가스와 원전의 포함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불거지면서 보충 위임 법률을 통해 지난 7월 최종 확정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참고로 천연가스와 원전 기술에 대해서는 엄격한 탄소 배출량과 안전 관련 기술 선별 기준이 적용됐다. 예를 들어 천연가스는 전 과정 배출량이 kWh당 100g CO₂e 미만이거나 직접 배출량이 kWh당 270g CO₂e 미만 등의 인정 기준을 충족해야 녹색 경제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후 변화 완화 및 적응 이외의 나머지 4가지 환경 목표에 대해서는 아직 기술 선별 기준이 완성되지 않았다.

택소노미는 과학적 연구 결과와 국제 원칙을 기반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정부·기업·투자자·소비자·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인의 논의를 거쳐야 하는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택소노미가 구속력을 갖는 법률로 채택되면 이에 부합하는 산업과 기술은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후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관계인들의 충분한 논의는 택소노미의 필요 충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6대 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매출·투자 비율 공시해야
한국은 의무 아닌 자발적 선택 사항으로 추진
택소노미는 모든 지속 가능 경제 활동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특히 기업과 금융회사의 의무 공시 기준을 직접적으로 규율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성이 크다. 앞으로 회사의 비즈니스 및 금융 상품이 택소노미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입증하고 시장에서 평가받는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EU의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DR)은 이미 작년 초부터 유럽 역내 금융회사에 적용돼 ESG 펀드의 그린 워싱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밖에 택소노미는 지속 가능 테마 채권(녹색 채권, 사회적 채권, 지속 가능 채권, 지속 가능 연계 채권 등) 발행, 지속 가능 연계 대출 규정의 기초가 된다. 특히 소셜 택소노미는 EU 공급망 실사법과 연계돼 노동자·소비자 등 이해관계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초 프레임워크로 작동하게 된다.

한국은 2020년 10월 국가 차원의 탄소 중립 선언 이후 2021년 4월 ‘환경 기술 및 환경 산업 지원법’ 개정에 따라 환경부에서 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이하 K-택소노미)를 추진해 2021년 12월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9월 원자력 기술을 포함한 K-택소노미 개정 초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 중이다. K-택소노미가 EU 등 글로벌 택소노미와 다른 것은 △의무 사항이 아닌 자발적 선택 사항이라는 점 △환경 이슈에 국한한다는 점 △전환 부문을 설정했다는 점 등이다. 아직 제도 초기여서 이해관계인 인식 수준과 공론화 정도, 사회 인프라가 준비되지 못한 것을 반영한 결과다.

K-택소노미는 6대 환경 목표에 기여하는 69개 경제 활동으로 구성되고 유효 기간에 따라 기한에 관계없이 친환경 경제 활동으로 인정되는 ‘녹색 부문’과 향후 10년간만 과도기적 상황에서 인정되는 ‘전환 부문’으로 구성된다. 최근 EU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의 택소노미 포함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고 한국 역시 전문가 토론과 공청회를 거쳐 전환 부문에 원자력을 제한적으로 포함해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6대 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매출·투자 비율 공시해야
K-택소노미는 활동 기준·인정 기준·배제 기준·보호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녹색 경제 활동으로 인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활동 및 인정 기준은 EU 택소노미의 6대 환경 목표와 카테고리는 동일하고 세부 기술 기준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배제 및 보호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제도 초기 단계라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K-택소노미 논의가 이해관계인들이 공감하는 합리적 합의점을 찾고 이와 연계된 한국의 지속 가능 발전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다음에 유의해야 한다.
ESG 라벨링 등 활성화부터 나서야
첫째, 충분한 이해관계인 소통 과정을 통해 합의점을 다시 찾아야 한다. K-택소노미 6대 목표 중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서는 탄소 중립 선언과 함께 사회적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 투자자, 환경·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인 간 기술 수준에 대한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산업별·기술별 세부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기후 변화 적응, 수자원, 자원 순환, 환경 오염, 생물 다양성 등 그 외 5대 목표는 논의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둘째, 소셜 택소노미 논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연구 용역을 발주하면서 첫발을 뗀 상황이지만 EU는 이미 소셜 택소노미 관련 최종안 보고서를 확정하고 입법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곧 시행될 EU 공급망 실사법 등 사회 측면이 강조된 무역 규제에 대응하고 그린 택소노미의 최소 사회 기준(Minimum Social Safeguard)의 적용 수준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소셜 택소노미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셋째, 택소노미와 공시 제도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ESG 관련 공시를 할 때 기업은 택소노미에 부합하는 비즈니스 모델 비율을 공시하고 금융회사는 택소노미에 부합하는 투자 규모 절대 금액과 전체 투자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공시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이미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상장 기업의 ESG 의무 공시 제도가 이르면 2024년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제도 설계 단계부터 택소노미 관련 공시와 연계가 필요하다.

넷째, 택소노미 기준 적용에 대한 관리 감독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택소노미를 기준으로 분류된 경제 활동에 대해 검·인증 시스템을 구축해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기준을 마련하는 것만큼 엄밀히 적용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자칫 택소노미를 기반으로 한 공시, 채권 발행, 금융 상품의 설계·판매 등 연계된 모든 경제 활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간 차원의 ESG 라벨링, 택소노미 관련 연구와 실무 적용 활성화를 돕는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 국내외 택소노미 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데다 공시 의무화 이전 단계이기는 하지만 그린 워싱 우려와 함께 진정한 지속 가능 경영과 투자에 대한 수요는 매우 큰 상황이다. 따라서 제도가 정착되기 이전에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민간 차원의 ESG 라벨링 등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09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최용환 NH아문디자산운용 ESG리서치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