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미래 신체를 위한 스마트 동맹…신체 해킹 같은 문제도 고민할 때
겨우 사물인터넷(IoT : Internet of Things)이란 용어에 익숙해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신체 인터넷(IoB : Internet of Bodies)이란 낯선 개념이 엄습한다.2016년 처음 등장한 이후 2020년 다보스 포럼에서 IoB에 관한 리포트가 제출되면서 급속히 확산 중이다. 필자 나름대로 IoB를 정의한다면 세 가지의 총합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1. 신체 인터넷(IoB)은 사물인터넷(IoT) 2.0 버전이다 : 사물뿐만 아니라 생물의 몸 모두를 포괄하는 무선 네트워크로 확장.
2. IoB는 모바일 헬스(mHealth) 2.0 버전이다 : 의료 관리 서비스를 넘어 노동·소비 등 여타 영역으로 확산된 모델.
3. IoB는 웨어러블 2.0 버전이다 : 휴대나 신체 착용뿐만 아니라 체내 투입된 무선 기기.
IoB를 IoT 2.0, 즉 확장된 IoT로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러 가전 제품과 에너지·안전장치가 하나로 연결된 네트워크에 인간의 인체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IoT를 일반 사용자의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응용한 모델이 ‘스마트 홈’이다. LG와 삼성이 단연 앞선 분야다. 현재는 스마트 TV를 중심으로 냉장고·전등·CCTV·에어컨이 일괄 조종·통제되는 수준이지만 이미 헬스케어·원격 검침·스마트 커넥티드 카 등으로 연계 확장 중이다.
SK텔레콤·KT 같은 통신 업체들도 IoT의 또 다른 허브를 구축한다. 광고에서 자주 등장하듯이 음성 인식 와이파이 중계기를 중심으로 TV·모바일폰·컴퓨터와 연결해 정보 취득·쇼핑·건강 관리·주차장 관리·전기가스 보급 등에 접목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 신체가 ‘추가’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 네트워크 사용 주체가 이미 스마트폰 같은 단말기와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연결돼 있는데 인체의 무엇이 더 추가돼야 IoB라는 독립적 개념이 성립될까.신체에 의한, 신체에 관한, 신체를 위한 네트워크
우선 IoB라면 인간의 신체가 네트워크의 중심이어야 한다. 이 중심성은 단순히 위치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적 중심성을 말한다. 신체가 하나의 포털임과 동시에 중심 콘텐츠로서 여타 네트워크화된 사물들을 배치, 통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IoB는 기존 IoT에 인간 신체가 단순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의한, 신체에 대한, 신체를 위한’ 네트워크로 기능할 때 그 이름값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신체 중심 네트워크의 전례가 존재한다. 1995년 소개된 ‘무선 신체 구역 네트워크(WBAN : Wireless Body Area Network)’가 그것이다.
의료·치료용으로 고안된 WBAN은 신체 내부·표면·휴대 형태로 존재하는 센서와 무선 기기들 간의 통합적 연결로 원격의료·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다. 그리고 2001년 ‘신체 구역 네트워크(BAN : Body Area Network)’란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처럼 긴급 의료용으로 고안된 BAN에도 정보 보안과 효율성을 고려한 배타적 무선 통신 주파수가 있다. 신체 동작 센서와 생존 징후(vital signs) 감시 센서가 있어 위기 시 환자의 신체 상태 정보가 전문가나 간병인에게 전송돼 지체 없이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BAN을 활용해 구축된 건강·의료 시스템은 모바일 헬스 혹은 유비쿼터스 헬스(uHealth : Ubiquitous Health)다. 모바일 헬스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임기 초기 크게 탄력 받았지만 IT 강국 한국은 의료 집단 내 분쟁과 입법 집단의 무지로 인해 지연되다가 코로나19 사태가 극심해진 최근 들어 보건소 중심으로 뒤늦게 시행 중이다.
BAN에 기초한 모바일 헬스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우리 상황에 매우 필요한 IoB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 모바일 헬스를 급진전시켜 IoB로 촉진한 것이 바로 웨어러블 기기다. 모바일 헬스의 기반 BAN과 웨어러블은 불가분의 관계, 더 나아가 융합의 단계를 향하고 있다. 웨어러블은 스마트 워치의 대중화로 친숙해졌다. 그런데 웨어러블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어 편의상 <표1>에서 ‘착용형 정보기기’ A그룹과 외골격 탑재형 로보틱스 B그룹을 구분했다. 당연히 IoB는 A그룹과의 연관성이 지배적이다.
A그룹에서 A-a는 통상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이 가미된 게임·영화·문화·예술·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적합한 기기들이다. 반면 A-b는 사용자의 신체와 관한 정보를 수집 처리 전송하는 건강·의료 관련 기기들로 IoB의 기본 용도에 더 밀착돼 있다.
A-b 웨어러블은 2016년부터 2019년 3년간 3억2500만 기에서 7억2200만 기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올해 안에 11억 기 이상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A-b 웨어러블은 신체 표면에 자리한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현재의 신체 표면, 즉 외장형 웨어러블 1.0의 상당 부분이 체내 삽입형(insertable) 혹은 섭취형(ingestible), 즉 내장형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착용이란 뜻의 웨어러블은 그 쓸모를 다하게 되므로 필자가 IoB를 웨어러블 2.0이라고 부른 것 자체가 모순이 될 수도 있다.
신체 착용형이냐 신체 침투형이냐의 차이는 지팡이를 쓰느냐 철심을 박느냐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왜냐하면 테크놀로지가 휴대나 착용이 아닌 신체의 일부로 통합된다는 것은 트랜스휴머니즘의 지향인 바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이고 이에 따른 법적·제도적·기술적·윤리적 논쟁과 혼선이 수반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실질적인 위협도 만만치 않다. 사용자 신체 정보의 관찰·보관·외부 전송이 가능한 만큼 역으로 외부에서 그 신체와 신체 정보에 접속해 관리·통제 역시 가능해진다. 신체와 신체 정보가 다른 사물과 연결된 네트워크의 일부가 된 만큼 이론적으로 그 네트워크에 침투할 출입구가 많아져 ‘신체 해킹’이 금융 계좌 해킹보다 더 빈번할 수도 있다.신체 해킹,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현실 “호텔 옆방에 투숙한 누군가가 와이파이를 이용해 심장에 해킹해 들어올 수도 있지요. 그렇게 해서 부통령이 암살될 수도 있어요.” 언뜻 들으면 피해망상증 환자의 횡설수설 같지만 이것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심장 전문의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다.
실제로 체니 전 부통령은 2007년 그의 몸 안에 있던 인공 심장 박동기에서 와이파이 기능을 제거한다. 이 실화에 기초해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홈랜드’에서 이 원격 해킹 암살 사건을 그대로 연출한다.
인터넷 해킹을 통한 심장 충격 암살이라니,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컴퓨터 보안 전문가 바나비 잭은 이것이 사이버 펑크(cyber punk) 픽션이 아니라고 증명했다. 2013년 잭은 심장 박동기에 연결된 와이파이 해킹을 통한 전기 충격 살인의 공정을 대중적으로 시연한다. 그 직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즉각적으로 장비 제조 공정과 의료 관리 체계 강화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보다 먼저 진행된 인슐린 펌프(Insulin pump) 해킹 시연도 유명하다. 잭은 아이디나 일련번호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90m 반경에 있는 당뇨병 환자들의 인슐린 펌프에 무작위로 접속할 수 있었다. 체내 인슐린 펌프를 무선 해킹한 후 분비량을 치사량까지 올려 환자의 저혈당 쇼크로 인한 사망 유도를 시연한 것이다. 그의 실험 대상이 실제 사람이 아니고 마네킹이었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진부한 기술 공포증(technophobia) 카드를 꺼내는 게 아니다. IoT를 넘어 IoB 시대에 접어드는 우리에게 필수적 경각심을 말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 문자 스팸·사기에 시달리는 우리의 허술한 사이버 보안 의식과 시스템을 생각하면 IoB가 우리에게 판도라의 상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듯이 2019년 기준 인공 심장 박동기 임플란트를 한 전 세계 사이보그는 300만 명이 넘고 매년 60만 명이 신규 이식한다. 또 블루투스와 연결 앱 인슐린 펌프 사용자는 2021년 기준 112만 명으로 타입 1 환자 400만 명 중 약 25~30%에 해당한다.
이들의 인공 심장과 혈중 포도당 안녕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 IoB란 힙한 개념에 너무 열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테크놀로지 발전의 완급은 하늘의 결정이 아니라 인간 사회 집단 의지에 있다는 것을 되새겨 본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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