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등 글로벌 고객사 수주하며 매출 40조 돌파
모듈과 부품 생산 강화 위해 자회사 독립
자동차 부품 기업인 현대모비스가 다시 변신을 꾀한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에 속도를 내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대응을 위한 핵심 기술 확보와 신제품 개발, 양산화 작업 등에 주력한다. 이를 위해 모듈과 부품 생산 부문을 자회사로 독립시켜 제조 역량을 높이고 현대모비스에는 연구·개발(R&D)과 알짜 애프터서비스(AS) 사업을 남겼다.
현대자동차‧기아의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도 현대모비스의 과제다. 현대모비스는 전체 매출 중 70% 이상이 현대차‧기아에서 나온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올해 9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에 섀시 모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3분기 유럽‧일본 고객사에 섀시 제품을 북미‧유럽 고객사에 램프 제품을 수주했다.
◆매출 늘고 연구·개발도 증가
변화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우선 현대모비스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글로벌 부품사들이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거둔 직전 연도 매출을 기준으로 100대 부품사 순위를 매년 발표한다. 이는 부품 업체들의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평가에서 2006년 25위였던 현대모비스는 2011년 처음 10위권에 진입했다. 2017년 이후 5년간 유럽·북미·일본 업체들에 이어 7위를 유지했다. 지난해 291억 달러(약 37조4139억원)의 완성차 대상 매출을 기록하며 6위에 올랐다.
현대모비스 측은 “자율 주행과 전동화 등 미래차 시장에 선제적인 투자와 R&D를 확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의 R&D 투입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7년 7700억원이었던 R&D 비용은 2020년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2021년에는 1조1693억원이 투입됐고 올해 전망치는 1조3000억원이다. 5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도 높아졌다. 2017년 2.19%에서 2020년 2.76%로, 2021년에는 2.80%로 높아졌다.
다음은 실적. 올해 3분기에는 매출액 13조1804억원, 영업이익 5760억원, 당기순이익 559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9% 증가했다. 3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25.9%, 4.6%씩 늘었다.
최근 5년간 매출도 오름세다. 2017년 35조1445억원, 2018년 35조1492억원, 2019년 38조487억원, 2020년 36조6265억원, 2021년 41조7021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을 평가는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2017년 5.76%에서 2019년 6.20%로 증가한 이후 2020년과 2021년 다시 5% 밑으로 떨어졌다. 아쉬운 대목이다.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 가속도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한 투자는 활발하다. 지난해 로봇 개발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2491억원)을 사들였고 2020년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1300억원에 인수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친환경차와 자율 주행차에는 500~1000개가 넘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내연기관차보다 최대 3배 많은 수준이다.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반도체 기술 확보 여부가 중요한 셈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차량용 반도체 자체 개발과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글로벌 제조사 수주도 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임원급 현지 전문가를 영입해 고객 밀착형 영업을 강화하고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서 해외 시장을 공략 중이다. 3분기 누적 글로벌 수주 금액은 33억3000만 달러(약 4조7000억원)로 연간 수주 목표 금액의 89%를 달성했다.
북미 시장에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2030년까지 13억 달러를 투입한다. 미국 조지아 주에 전기차용 부품·모듈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기존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도 증설해 글로벌 전동화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현대모비스의 올해 3분기 전동화 부품 매출은 2조49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2.7% 증가했다.
◆車 부품 넘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소프트웨어(SW) 원천 기술을 확보하라”고 주문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전환한다. 단순 기계에서 ‘움직이는 전자 제품’으로 자동차의 변신을 본격 선언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30년까지 총 18조원을 투입한다. 2023년부터 출시하는 모든 차종에 무선(OTA)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도 현대차그룹의 미래 로드맵과 결을 같이한다. 기존 부품에 소프트웨어 역량을 접목한 모빌리티 솔루션 역량 강화에 집중한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예컨대 현대모비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이코너 모듈(e-코너 모듈)’, ‘자율 주행용 에어백’, ‘폴더블 운전대’ 등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코너 모듈을 차량의 네 바퀴에 적용하면 차량이 옆으로 주행하는 크랩(게) 주행이나 90도 회전 주차, 제자리 360도 회전 등이 가능해진다.
최근에는 근접 인식 반응형 팝업 디스플레이 ‘퀵메뉴 셀렉션’을 개발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기능을 한 단계 높였다. 사용자가 퀵메뉴 셀렉션을 적용한 차량용 디스플레이에 접근하면 사용 빈도가 높은 세부 메뉴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또 손짓만으로 원하는 메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생산 자회사 출범···불법 파견 매듭, 지배 구조 개선 해석도
소프트웨어 중심 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해 현대모비스는 이익률이 낮은 생산 부문을 분리했다. 알토란 같은 AS사업과 R&D는 모회사를 중심으로, 계열사는 핵심 부품 전용 공급사로 역할을 나눴다. 현대모비스의 사업군은 전동화와 부품 제조, 모듈(섀시·콕핏·프런트엔드) 조립 등 생산 부문과 AS로 나뉜다. 올해 3분기 기준 생산 부문 합계 매출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률은 0.6%에 그친다. AS 부문의 영업이익률이 17.29%인 점과는 대조적이다.
11월 출범한 생산 전문 통합 계열사는 ‘모트라스’와 ‘유니투스’다. 두 회사 모두 현대모비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다. 그간 현대모비스는 다수 협력사를 통해 생산 공장을 운영해 왔지만 이를 자회사를 설립한 뒤 흡수했다. 사내 하청 인력 모두를 계열사 정직원으로 채용해 불법 파견 위험을 해소했다. 현재 통합 계열사 2곳의 직원 수는 7500여 명이다. 향후 자체 추가 채용을 통해 전문 인력도 육성한다.
뒤숭숭한 회사 분위기는 해결할 과제로 남았다. 계열사로 떨어져 나가는 부서 인력이 이동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고 해외 주재원 파견에도 ‘파견 종료 후 계열사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한순간 계열사 직원으로 지위가 달라지게 돼 불안감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묵은 논란이지만 일각에선 이번 모비스의 사업 개편이 그룹 지배 구조 개편을 위한 전초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고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1.4%를, 현대차는 기아 지분 33.9%를, 기아는 현대모비스 지분 17.4%를 각각 들고 지배하는 식이다. 그룹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이 많아야 한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0.32%) 지분이 거의 없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신규 순환 출자만 금지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이 순환 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배 구조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높아지는 점이 부담이다. 순환 출자 고리를 해소하고 정 회장이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는 것이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셈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이번 자회사 설립은 지배 구조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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