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살만의 사우디에 대한 6가지 궁금증

[비즈니스 포커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추정되는 재산만 2조 달러(약 2700조원)에 달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11월 17일 방한해 20시간 동안 윤석열 대통령, 재계 총수들을 만나고 100조원 규모의 26개 프로젝트에 투자 협약을 체결한 뒤 떠났다.

2017년 왕세자에 오른 빈 살만은 1985년생으로 올해 38세다. 86세 고령인 살만 국왕을 대신해 총사업비 1조 달러(약 14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신도시 사업인 ‘네옴시티’를 포함한 국정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에서 건설·에너지·석유화학·철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네옴시티 건설 외에도 방산·원전·문화·수소 분야에서도 한국과 강한 협력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옴시티는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고 있는 장기 전략인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의 일환이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제2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왜 자국 업체가 아닌 한국 등 외국 업체들에 핵심 사업을 맡기려고 할까. 빈 살만 왕세자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6가지 궁금증을 정리했다.

1. 네옴시티 프로젝트란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 끝단에 요르단과 홍해를 접하는 2만6500㎢(서울의 44배) 면적의 토지를 미래 지향적 설계를 통해 모듈형 스마트 시티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크게 자급자족형 친환경 직선도시 ‘더 라인(미러시티)’, 바다 위 팔각형 첨단 산업 단지 ‘옥사곤’, 사막 위 스키장을 갖춘 친환경 관광 단지 ‘트로제나’ 등 3개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트로제나에서는 2029년 네옴 동계 아시안 게임이 개최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탈석유와 2060년 탄소 중립을 표방하는 만큼 네옴시티의 핵심인 더 라인은 100% 친환경 에너지로 운용할 계획이다.

혁신적인 설계와 엄청난 규모로 일각에선 완성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라는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네옴시티 조감도를 보면 공상과학 영화 속 도시가 떠오른다. 빈 살만 왕세자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대해 “만약 돈이 있다면 기준을 높이고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부터 시작하는 데 왜 기존 도시들과 비슷하게 만들어야 하나”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2. 일본 패싱했는데…한국만 다녀간 이유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규모 인프라 사업인 만큼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국가들도 참여한다. 국가별 네옴시티 프로젝트 수주 규모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54%, 중국 14%, 한국 13%, 스페인 9%, 그리스 6%, 영국·이탈리아·인도·아랍에미리트(UAE) 각 1%다. 현재 국가별 수주 규모 비율은 사우디아라비아가 54%로 가장 높은데 소규모 기초 공사가 현지 업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더 라인 건설을 위한 공사 발주가 시작돼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더 라인 터널 공사를 수주했고 한미글로벌은 총괄 프로그램 관리(PMO)를 따냈다. 시장에선 2023년부터 네옴시티 관련 발주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공사 발주가 본격화되면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빈 살만 왕세자가 당초 방문하려던 방일 계획을 철회했는데 일각에선 일본이 인프라 건설 기술력에서 한국에 밀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이 건설·원전·정보통신기술(ICT)·콘텐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뛰어난 경쟁력을 바탕으로 패키지를 이뤄 발주처의 수요에 맞춰 수출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만큼 MOU 실현과 추가 수주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11월 17일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SPA 제공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11월 17일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SPA 제공
3. 천문학적인 사업비, 어떻게 충당하나

업계에선 네옴시티 더 라인 건설에 필요한 자금 규모가 50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네옴시티 전체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은 총 1조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를 공공 부문 투자, 민간 부문 투자, 프로젝트 기업 공개 상장을 통해 순차적으로 조달해 나갈 계획이다.

첫째 단계에서는 3190억 달러 조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그중 절반(1595억 달러)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PIF)에서 조달한다. 올해 4분기 내에 해외 국부 펀드 탭핑을 통해 자금을 유치해 나머지 절반(1595억 달러)의 일부를 조달할 계획이다.

2024년까지 잔여 필요 투자금을 민간 부문 투자와 네옴시티 개발 회사인 ‘네옴(NEOM)’의 공개 상장을 통해 조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네옴의 초기 사업 영위를 위해 펀드를 통해 748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핵심인 최첨단 친환경 미래도시 '더 라인' 조감도. 사진=NEOM 제공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핵심인 최첨단 친환경 미래도시 '더 라인' 조감도. 사진=NEOM 제공
4. 석유로 먹고사는데…왜 네옴시티 만들까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석유 매장량에 힘입어 석유 산업을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 왔지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붐과 포스트 오일 시대를 맞아 석유 산업 의존 경제 구도에서 탈피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을 발표하고 비(非)석유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민간 부문의 기여도를 65%까지 높이는 것이다. 향후 고용에 대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현재 11.6%의 실업률을 2020년까지 9%로 감소시켜 민간 부문 비석유 제품 분야의 고용 탄력성을 0.74에서 3.2까지 증가시키는 것이다. 다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생산적인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ICT 부문을 성장시키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ICT 부문 전략 2023’을 발표했다. 국가 경제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석유 의존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ICT 전환과 관련 인재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ICT 부문 경제 기여도를 2017년 3.6%에서 2023년 4.6%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경제 다각화를 추구하고 있다.

5. 풍부한 천연자원…축복일까 저주일까

자원 부국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전 세계 석유의 약 16%가 매장돼 있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원유 매장량 2위로 석유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경제 다각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석유 의존도를 보이고 있고 국가 총수입의 60% 이상이 석유 관련 산업에서 나오고 있다. 석유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해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경제성장률과 정부 재정 수지가 불안정한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다.

천연자원에 의존해 성장을 이룬 국가가 산업 경쟁력 제고에 힘쓰지 않으면서 경제 침체에 이르는 ‘네덜란드병’과 유사한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4년 하반기 이후 석유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저유가 기조와 함께 높은 인구 증가율과 청년 실업률로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적인 이유로 낙태가 금지돼 인구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돈다. 실업률은 11%이고 청년 실업률은 20%를 초과하는데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30세 이하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청년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고유가로 벌어들인 돈으로 1970년대부터 인프라 건설·도로·대학·병원·주택·항만에 투자하는 등 경제 개혁 정책을 추진해 왔다. 당시 자국 내 숙련 인력 부족으로 외국 인력을 대거 끌어들이면서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자국민보다 높아졌다.

정부는 정권 유지 등을 위해 공공 부문 노동자에게 고임금과 직업 안정성, 연금 제도 등 다양한 비급여 혜택을 제공해 주면서 자원으로 획득한 부를 재분배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민은 높은 임금 등 근무 여건이 좋은 공공 분야에 몰리게 됐다.

공공 부문에 대한 정부 보조금과 고용이 한계에 몰리자 민간 분야로 취업을 유도하기 위해 자국민 의무 고용 쿼터제(니타카트)를 도입하기도 했다. 청년층 인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민간·비석유 부문의 발전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분야의 높은 임금차로 인해 민간 분야를 선호하지 않고 청년 실업률이 여전히 높아 사회의 주요 불안 요소로 지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7월 16일(현지 시간) 제다에서 열린 GCC+3(걸프협력회의+이집트·이라크·요르단)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7월 16일(현지 시간) 제다에서 열린 GCC+3(걸프협력회의+이집트·이라크·요르단)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사진=AFP·연합뉴스
6. ‘80년 동맹’ 미국과는 왜 등 돌렸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와 안보를 교환하며 80년간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다. 석유 증산, 안보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맞물리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발단은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반체제 언론인인 자말 카슈크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면서다.

미국은 셰일 혁명을 거치며 에너지 패권을 손에 쥐게 됐다. 2017년에는 최대 산유국이자 원유 수출국 지위를 탈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유 수입이 급감했고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해진 미국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이상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은 국가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바이든 행정부 들어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지원 중단,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패권 경쟁을 벌이는 이란의 핵 합의(JCPOA :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 복원 움직임,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안보 협약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 고조되면서 미국과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이란 핵 합의는 미국·프랑스·영국·러시아·중국·독일 등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2015년 이란과 체결한 합의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 노력을 중단하는 대가로 대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바 있다.

핵 합의 복원을 중동 정책의 핵심 기조로 삼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4월 복원 협상이 시작됐지만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이란과 핵 개발 전면 중단을 요구하는 6개국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교착 상황에 빠지자 이란은 이에 반발해 핵무기 제조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농축 농도를 60%로 높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핵 합의 재개가 이란의 핵 무장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안보 위협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존 시스템인 ‘페트로 달러’ 체제를 깨고 위안화 결제 및 ‘페트로 위안’이라고 불리는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 거래 허용을 고려하는 등 중국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