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66%.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인 2001년 기록한 지지율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인기 속에 임기를 마쳤습니다. 램 임마뉴엘 시카고 전 시장은 “클린턴에 대한 박수는 서민과 중산층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고도 성장을 누렸습니다.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1994년 임기 중 진행된 중간 선거에서 패해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에 내줬지요.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란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1996년 말 그는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비결은 정책이었습니다. 재선을 준비하며 클린턴의 컨설턴트들은 여론 흐름을 살피다 핵심 개념을 찾아냈습니다. ‘사커 맘’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축구클럽에 데려다 주는 중산층 엄마. 이들이 재선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세금 감면 등 대형 정책도 있었지만 집중한 것은 생활 밀착형 정책이었습니다. 교복 착용, 미성년자가 볼 수 없는 TV 프로그램이 나오면 소리가 나는 칩 부착, 대학 학자금 지원 등이었습니다. 사커 맘들의 삶을 파고든 클린턴의 정책에 당시 언론은 ‘스몰 딜’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에 미국인들은 공감했고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1998년에는 탄핵 위기에 몰렸습니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클린턴은 위증 사법 방해 혐의로 탄핵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권위는 추락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는 ‘오럴 오피스’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언론은 르윈스키 사건밖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고비마저 넘어섰습니다. 클린턴은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목표는 간단했습니다. 생존이었죠. 생존 전략은 대통령이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술은 대통령인 제가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이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저를 지켜 줬습니다.” 그 결과 클린턴 집권기 미국의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고 222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실업률은 하락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그의 집권기에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러시아의 핵무기 해체 등에서 진전을 이뤄 냈습니다.

길게 클린턴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현안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사소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 대신 그 자리를 슬리퍼, 비행기, 빈곤 포르노, 무속, 거짓말, 청담동 첼리스트 루머 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은 뒷전입니다.

클린턴은 대통령 지지율이 국민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전략이 무엇이고 전술이 무엇인지도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 전략과 전술 전부를 무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 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해외 순방을 하면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성과를 스스로 가리는 논란을 만들어 내며 지지율이 올라갈 공간 자체를 막아 버리고 있다.”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는 부분이 좀 달랐습니다. 일반적 상식은 ‘진보는 개혁에 강점이 있고 보수는 능력에 강점이 있다’ 정도 아닐까 합니다.

어려울 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어서 압수 수색을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권은 대통령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진영이 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보수가 잘할 수 있는 것, 경제·정책으로 서둘러 키를 돌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논쟁에서 튀어나오는 단어의 수준이 미래를 국가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 과언일까요. 감세·규제·양극화·저출산·복지·자영업자 대책을 놓고 논쟁을 해도 쉽지 않은 미래입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날 국가 전략을 가지고 치열한 논쟁을 해도 걱정되는 미래입니다.
한 미국 정치인의 발언은 되새겨 볼 만합니다. “미국은 당파적 전리품이나 정치적 프로젝트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대한 지도가 없다면 모든 정치적 길은 몰락에 이를 것이다.” 정치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