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디자인 토크쇼 행사서 쿠페 복원 프로젝트 공개
조르제토 주지아로(84)는 자동차 디자인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폭스바겐 골프와 제타 1세대 등 대중적인 차부터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슈퍼카까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1999년 전세계 자동차 저널리스트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선정됐고, 2002년 ‘자동차 명예의전당’에도 올랐다.한국에선 ‘포니’의 아버지로 기억된다. 포니는 ‘꿈을 꿨어요 포니, 갖고 싶어요 포니, 아름다운 포니, 현대 포니’라는 광고 문구처럼 1975년 데뷔에 성공한다. 포니의 등장과 함께 한국 자동차 역사의 막이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장 주지아로와 현대자동차는 다시 한번 만났다. 이들은 포니와 함께 만들어졌으나 양산에 이르지 못하고 유실돼 단 몇 장의 사진만 남은 ‘포니 쿠페 콘셉트(개발 방향성을 담은 시제차)’ 복원에 나선다.
현대차는 24일 경기 용인에 있는 현대차그룹 인재개발원 마북캠퍼스 비전홀에서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디자인 토크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현대차는 주지아로가 대표로 있는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 GFG 스타일과 공동으로 포니 쿠페 콘셉트를 복원하기로 하고 내년 봄 최초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서 헤리티지(유산)를 구축해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취지다.
주지아로는 “과거의 열정을 갖고 디자인해 시제품까지 완성하겠다”며 “우리가 잃었던 포니 쿠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지아로 홀린 정주영
“현대에선 빠르게 결정하고 일을 해냈죠. 창업주는 천재였어요.”
이날 주지아로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떠올리며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포니를 시작으로 포니 엑셀, 프레스토, 스텔라, 쏘나타 1·2세대 등 현대차 초기 모델들을 디자인했다.
주지아로는 “1973년 말 창업주가 이탈리아 토리노로 찾아와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를 디자인해달라’고 말하며 한국으로 초청했다”며 “당시 한국은 자동차 산업이 시작된 곳이 아니어서 당황했다”고 떠올렸다.
반신반의했던 그는 1974년 울산을 방문하며 현대에 매료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1971년 그리스로부터 선주문 받은 2척의 선박을 불과 3년 만에 건조한 것을 목격한 것이다. 주지아로는 “(현대가) 의욕을 가지고 있는 강한 기업이라고 생각해 포니 디자인을 맡았다”고 했다.
이어 “약 50명의 엔지니어와 협력해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빠르게 결정했고 일을 진행했다. 당시엔 부품조달도 힘들었는데 결국 8개월 만에 자동차를 만들었다. 기적과 같은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포르쉐911처럼 디자인 계승 모델 개발 포니는 현대차그룹과 한국 자동차 업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모델이다. 최근 공개된 고성능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Rolling Lab) ‘N 비전 74’은 포니 쿠페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 부사장은 현대차의 미래 디자인은 ‘계승’에 주안점을 둔다고 강조하며 참고할 만한 모델로 포르쉐911를 꼽았다. 포르쉐911은 반세기 넘게 최초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스포츠카 전설’로 대접받고 있다. 현재 8세대까지 나왔다.
이 부사장은 “계승할 수 있는 디자인은 정말로 어려운 작업이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과거 헤리티지 복원이 방법이 될 수 있다”며 “과거 디자인을 계승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를 반영하고 계승하는 모델 개발에 힘쓰겠다. 아이오닉5 다음에도 계승하는 디자인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지아로의 손으로 다시 태어날 포니 쿠페 콘셉트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리다’라는 철학을 지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부사장은 “현대차의 과거 50년 전 출발이 포니였다”며 “포니 쿠페는 현대차의 헤리티지를 품은 영적인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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