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술자리’ 등 잇단 ‘아니면 말고’식 주장에 私黨化 심화 … “민주당 정신 사라졌다”

홍영식의 정치판
11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11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기자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취재를 담당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정권 초반 당시 이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예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기사엔 특정 장소를 거론하지 않고 ‘서울의 한 재래시장 방문’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경호처로부터 그 문구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기자는 “구체적인 장소를 밝히지 않았는데 경호에 무슨 문제가 있나”라고 항의했다.

경호처 대변인이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재래시장은 대통령을 경호하기 매우 힘든 곳이다. 도마와 칼, 뜨거운 물 등 위험한 물건들이 적지 않아 누구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기 쉬운 장소다. 그래서 대통령 방문 2주 전부터 경호 요원들이 미리 현장에 가 위험 요인들을 점검한다. 상인 대표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 일반 상인들에게 대통령 방문이 비밀에 부쳐지지만 경호 요원들이 시장에서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신문 기사에 ‘한 재래시장’이라고 표기만 해도 ‘대통령이 우리 시장에 오는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외부 행사의 경호는 이렇게 엄격하다. 아무리 개인 일정이라고 해도 경호차 여러 대가 앞뒤에 따라붙고 경호원들이 행사장에 미리 가 안전 점검을 한다. 음식은 미리 검식 과정을 거친다. 그런 점에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김앤장 변호사 30명과 서울 청담동에서 새벽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은 상식 밖이다. 대통령의 외부 행사에 아무리 간소한 경호를 한다고 해도 외부에 다 노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김 대변인은 사실 확인 없이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보장되는 국정감사장에서 내질렀다. 더욱이 그는 청와대 출입 기자와 청와대 대변인까지 지냈다. 대통령이 심야에 외부에서 변호사 수십 명과 술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사실 관계 확인 건너뛰면 ‘뒷골목 지라시’에 불과

김 대변인은 술자리 의혹이 거짓임이 드러났는데도 “제보를 받고 국정 감사에서 확인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그날로 돌아가도 같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 했다. 폭로도 기본이 있다. ‘팩트(사실)’ 확인이다. 이걸 건너뛰면 ‘뒷골목 지라시’에 불과하다. 그의 ‘아니면 말고’식 발언으로 문제가 된 것은 한둘이 아니다. 주한 유럽연합(EU) 대사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간 면담 내용을 왜곡 브리핑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재정 민주당 의원과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말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청년 정치인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장경태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 및 조명 설치한 현장 스튜디오 촬영, ‘역술인 천공의 말대로 대통령실의 도어스테핑 중단’ 등을 역시 사실 확인 없이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급기야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이들을 향해 “김건희 여사 사진 조명, 손짓, 민주당이 도대체 왜 이런 걸로 싸우는지 모르겠다”며 “‘사이버 레커’들이 펼치는 지엽말단적인 주장을 가져와 헛발질만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제2 국정 농단’이라며 김 씨를 두둔한 민주당 지도부도 싸잡아 비판했다.

지금 정치권은 박 전 위원장의 지적대로 이런 난장판이 없다. ‘정치 4류’라는 말이 나온 지 29년이 흘렀고 그간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정치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붙잡고 ‘아니면 말고’식 조롱과 비아냥거림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내면서 정치판을 오염시키고 있다. 상대를 설득할 의도도, 기술도, 품격도, 촌철살인의 재치도 안 보인다. 숙의 민주주의도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고 갈등과 이견을 조정해 나가는 정치의 기본은 실종됐고 정치인은 연예인화되고 가십성 이슈들만 판을 친다.

물론 정치 가십화는 국민의힘도 예외는 아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디코이(decoy : 유인용 미끼)’, ‘간장 한 사발’, ‘나즈굴과 골룸(탐욕적인 반지의 제왕 캐릭터)’, ‘삼성가노(三姓家奴)’ 등 적나라하게 드러난 수준 낮은 입씨름으로 정치를 희화화했다.

가십 정치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민주당에선 비정상이 판을 친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재명 대표와 복심으로 통하는 정진상 대표 정무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개인의 일이다. 당과 아무 관계가 없고 이 돈은 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대표의 각종 선거에 사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지도부를 비롯해 민주당 전체가 이 대표 방어를 위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모양새댜. 정청래 최고위원은 “민주당 정치인과 당원은 당연히 이 대표와 정치 공동체”라며 “이 대표를 지키는 것이 당을 지키는 것이고 당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대표와 당의 일체화, ‘인계철선’화는 매우 위험한 인식으로, 우리 정치의 심각한 퇴보를 보여준다.

당 대표가 공적 권력을 사적으로 활용하고 당이 이를 떠받치는 것은 전체주의 정당에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 정치사의 제왕적 총재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당의 입 역할을 하는 대변인이 대표 측근인 일개 당직자 비리 의혹을 방어하는 논평들을 대거 쏟아낸 것은 공당의 바른 태도로 볼 수 없다. 이 대표 관련 의혹들을 촉발한 것도 윤석열 정부가 아니다. 상당수가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치열한 내부 경쟁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도 온통 여권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지적이다.

사법 리스크 방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예산과 법안 심사에서 거야(巨野)의 완력을 자랑했다. 예산안 심사를 통해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야당의 권리라고 하지만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도가 지나쳤다.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별 심사 과정에서 공공 임대주택, 지역 화폐 등 수조원 규모의 ‘이재명표 예산’은 부활 또는 증액시켜 민주당이 집권당이란 소리를 들었다. 반면 신형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개발과 원전 수출 지원 등 윤석열 정부 주요 국정 과제 예산은 감액에 나섰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마쳤는데도 다시 청와대로 가라는 억지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탄핵” … 헌정 질서 무너뜨리는 것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태원 참사는 불 쏘시개다. 촛불 시위에 민주당 의원들이 참여해 정권 퇴진을 외쳤다. 당 지도부는 의원 개인 의견이라며 말리지 않았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헌법 기관인데, 의원 스스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추모는 수단이고 퇴진이 목적이며, 광장 정치를 악용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라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들이 대거 당원으로 가입해 비판 목소리를 가로막으며 당내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원욱 의원은 “민주당의 팬덤 정치도 극에 달한 모습을 보인다”며 “팬덤 정치로 사당화(私黨化)가 매우 심해져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철민 의원도 “요즘 민주당 정신은 사라진 것 같고 많은 국민들은 민주당이 사당화되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70여 년 민주 정통 정당의 맥을 잇는다’는 민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이 시점에서 뼈저리게 되돌아 봐야 할 대목이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