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내년 경기 침체 불가피”…장기 디플레 우려도

[글로벌 현장]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사진=연합뉴스)
2022년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악몽과도 같은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연초만 해도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봉쇄 해제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통화 긴축과 이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갈수록 시장을 지배했다. 연초 4800으로 시작했던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한 번도 전고점을 돌파하지 못한 채 수차례 4000 밑으로 추락했다.

2023년 전망도 밝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고 있지만 미 중앙은행(Fed)은 여전히 강력한 긴축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 하반기엔 반등할 것이란 게 월스트리트의 기대다.
비관론 가득 찬 미국 증시…월가 “하반기 반등 대비” [글로벌 현장]

예상보다 끈질긴 글로벌 인플레이션

2022년의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의 태도는 강경했다. 그는 “물가 상승률이 2% 목표치를 향해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너무 빠른 통화 정책 완화는 위험하다는 게 역사의 경고”라고도 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2022년 6월 9.1%로 최고점을 찍은 뒤 11월 7.1%로 둔화했지만 파월 의장은 “더 많은 하락 증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비스 부문의 물가 상승률이 견조하기 때문에 금리를 더 높여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 물가는 인건비가 좌우하는 게 보통이다.

Fed 위원 19명의 금리 전망을 취합한 점도표에서도 2023년 말 최종 금리는 현재 금리(연 4.50%)보다 75bp(1bp=0.01%포인트) 높은 연 5.25%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2023년엔 금리 인하를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다.

Fed는 2023년 미국 성장률을 0.5%로 내다봤다. 2022년 9월 전망치(1.2%)보다 0.7%포인트 낮췄다. 반면 2023년 실업률은 9월 전망치 대비 0.2%포인트 높은 4.6%로 예상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 인상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2022년 12월 금리를 종전 대비 50bp 올려 연 2.5%로 만든 ECB는 2023년 3월부터 양적 긴축(QT)에도 나설 방침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물가 전망이 또 상향 조정됐다”며 “금리를 꾸준한 속도로 상당 수준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19개국의 통화 공동체인 ECB는 2023년 물가 상승률을 6.3%로 예측했다. 9월 전망치(5.5%) 대비 상향 조정된 수치다. 2023년 성장률 전망치는 9월 0.9%에서 이번에 0.5%로 낮췄다.

월가의 2023년 경기·증시 전망도 밝지 않다. Fed의 강력한 긴축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금방 떨어뜨리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인 증시 강세론자였던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간 수석전략가가 180도 바뀐 게 이런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콜라노비치 전략가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2023년엔 기업 실적 하락과 Fed의 더 높아진 최종 금리 전망이 주가에 추가로 반영될 것”이라며 “증시는 2023년 1분기 또는 2분기에 새로운 저점을 시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케네스 제이콥스 라자드 최고경영자(CEO)는 “침체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대규모 감원이 불어 닥쳤다”며 “월가도 추가 감원에 나서는 등 1023년 전망이 대체로 어둡다”고 평가했다.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CEO는 “원자재 가격 하락과 함께 소매 기업들의 할인 판매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며 “인플레이션보다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및 침체)이 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티븐 서트마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전략가는 기술 분석을 토대로 증시 부진을 예고했다. 서트마이어 전략가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경기 침체 이전 증시가 바닥을 쳤던 건 1945년뿐이다. 공식적인 침체가 닥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증시의 새 저점이 2023년 형성될 것이란 예상이다. 그는 “침체 때 증시는 평균 32.5% 하락했고 약세장은 13.1개월 동안 지속됐다”며 “S&P지수는 2023년 중 3240~350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웰스파고는 2023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0.2%로 예측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Fed의 장기 목표(2%)보다 훨씬 높은 3.8%로 보고 있다. 웰스파고는 “2023년 연착륙 확률이 10% 미만”이라며 “다만 완만한 침체를 보일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2023년 S&P500지수는 3410까지 밀렸다가 연말에 4200 선을 회복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투자은행은 “임금과 원자재 가격, 물류비 등이 계속 상승하면서 기업 마진이 축소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투자자들도 대체로 비슷한 견해다. 도이치뱅크가 최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2023년 전망을 물어보니 설문 응답자의 60%가 ‘하락’을 예상했다. 특히 전체의 40%는 ‘10% 넘게 떨어질 것’이라고 비관했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2년 이상 지수가 하락한 것은 2000년(3년 연속)과 1974년(2년) 등 두 번뿐이다.

“증시, Fed 피벗 계기로 하반기엔 반등”

2023년 하반기엔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의외로 많다. 짐 폴슨 루솔드그룹 최고투자전략가(CIS)가 대표적이다.

폴슨 전략가는 “S&P지수는 2023년 말엔 지금보다 최소 25% 뛴 5000 선에 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비관론이 지나치게 팽배해 있다”며 “강세장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폴슨 전략가는 “장기 국채 금리가 새 저점을 찍고 있는 데다 달러 역시 약세로 전환했다”며 “머지않아 Fed가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 분위기가 확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이클 하트넷 BofA 수석전략가는 “증시가 상반기 중 약세를 보이다가 하반기에 강세로 전환할 것이란 게 기본 가정”이라고 설명했다.

토니 드와이어 캐너코드제뉴어티 전략가는 “2023년에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전제한 뒤 “그래도 하반기에는 증시가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Fed가 과도하게 긴축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정책이 전환(피벗)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 클리솔드 네드데이비스리서치 수석전략가는 “경기 침체가 오든 그렇지 않든 증시는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했다. 그는 “거시 경제 역풍이 여전하지만 사이클상 위험 자산이 다시 오를 시점이 왔다”며 “침체가 닥치면 상반기에 바닥을 치고 침체가 없으면 주가가 꾸준히 뛸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3년 말 S&P500지수는 4300에 달할 것으로 봤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수석전략가는 “2023년 침체를 맞으면서 지수가 3750까지 하락하겠지만 연말엔 4000 선으로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실적 기대를 낮추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3600까지 밀릴 수 있다고도 했다.

제프 클라인톱 찰스슈왑 수석전략가는 “2023년 상반기 침체 및 증시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선 현금이 풍부하거나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에 주목하는 게 좋다”고 추천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