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지갑 · 탈중앙화 거래소 구축…텔레그램의 ‘슈퍼 앱’ 변신 가능할까

스마트폰 속 텔레그램 애플리케이션 로고. 연합뉴스
스마트폰 속 텔레그램 애플리케이션 로고. 연합뉴스
글로벌 메신저 텔레그램이 2022년 11월 30일 비수탁형(non-custodial) 암호화폐 지갑과 탈중앙화 거래소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그램이 블록체인 생태계에 진출한다는 것에 큰 기대를 보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시장 진출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이번 글에서는 텔레그램이 왜 블록체인 진출을 지금 발표했는지, 어떠한 이유에서 이토록 블록체인에 진심인 것인지, 그들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미 SEC 규제로 첫째 고비 맞았던 TON 텔레그램 블록체인의 역사는 TON을 개발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ON은 텔레그램의 오픈 네트워크로, 파벨 두로프 최고경영자(CEO)와 그의 형제 니콜라이가 개발한 지분 증명(PoS) 기반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다. 모든 블록체인 플랫폼들이 목표로 하듯이 TON의 목표 역시 탈중앙성이라는 블록체인 이념을 계승하되 이더리움의 제한적인 속도와 확장성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TON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8년 1월 백서를 발표했고 그들의 자체 암호화폐 그램(Gram)에 대한 두 차례에 프라이빗 자금 모집을 통해 투자자들로부터 약 17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여기에 2019년 상반기 테스트넷을 출시하면서 텔레그램과 블록체인이 발생시킬 시너지 효과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늘었다.

TON의 행보는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2019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만나며 TON의 행보는 미궁 속에 빠졌다.

SEC는 2019년 10월 미국 증권법(Securities Act of 1933)을 근거로 들며 TON의 암호화폐 ‘그램’의 판매가 증권성을 띤다는 명목으로 텔레그램을 고소했다. SEC는 그램을 ‘증권’으로 봤고 TON이 그램을 제공하는 대가로 17억 달러의 투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그램과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SEC의 이와 같은 결정에 두로프 CEO를 비롯한 TON 측은 인정할 수 없었고 SEC와의 긴 싸움을 치렀다. 법적 공방은 텔레그램 측의 패배로 마무리됐고 결국 2020년에 들어서며 텔레그램은 TON의 개발을 중단했다.

두로프 CEO는 눈물을 머금고 TON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2020년 5월 13일 작성한 그의 글에서 그가 미국 정부의 규제에 얼마나 환멸을 느끼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수익을 위해 금 채굴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 금을 원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금을 팔기 위해 투자한다. 이 이유 때문에 당신이 금을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금지됐다. 만약 해당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렇게 느끼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금 투자와 암호화폐 투자를 비유해 미국 정부의 규제를 해학적으로 비판했다. 두로프 CEO는 해당 글을 통해 ‘공식적으로는’ TON과 텔레그램관의 관계는 종결됐다고 발표했고 앞으로 자신은 TON이라는 이름과 기술을 사용하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이후 2020년 6월 23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텔레그램의 TON 개발의 공식 종료를 발표하고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반환을 약속했다.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7전8기…두로프 CEO의 집념이 향하는 곳[비트코인 A to Z]
텔레그램이 공식적으로 TON 개발에서 손을 뗀 이후 TON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체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TON 블록체인을 사용하지만 텔레그램과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프리 TON’과 TON의 이름을 이어 받아 텔레그램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뉴 TON’이다. 현재 우리가 TON이라고 일컫는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바로 뉴 TON(이하 TON)이다.

비록 두로프 CEO가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TON과의 모든 관계를 끝내고 관계가 없다고 말했지만 성명 발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TON에 대한 관심을 표했고 자신의 이념을 이어 받아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TON에 기대를 보냈다.‘사용자 계정’ 파세요…텔레그램의 재도전2022년에 들어서며 텔레그램은 직접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 다시 진출했다. 그동안 TON의 행보를 응원해 오던 두로프 CEO는 2022년 8월 23일 TON의 도메인 네임 서비스(DNS) 옥션 플랫폼의 성공에 축하를 보내는 메시지에서 공식적으로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진출을 발표했다.

그는 7억 명의 사용자를 가진 텔레그램이 직접 나서 DNS 옥션 플랫폼을 론칭한다면 엄청난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TON 체인 위에서 디앱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지 약 두 달 만인 2022년 10월 28일 두로프 CEO는 텔레그램 사용자 경매 플랫폼인 ‘프래그먼트(Fragment)’를 TON 체인 위에서 출시했다. 사용자 계정을 오픈된 공간에서 공식적으로 사고팔 수 있는 최초의 마켓 플레이스로, 프래그먼트를 통해 구입한 사용자 계정은 텔레그램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TON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에 저장된다.

아직 지원되지는 않지만 두로프 CEO는 훗날 사용자가 구매한 사용자 계정을 통해 내 채널, 내 이모지, 내 스티커 등에 대한 공공연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를 사고팔 수 있는 마켓 플레이스를 구축해 사용자가 자신의 창작 활동에 대한 온전한 보상을 누릴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프래그먼트가 가지는 진정한 의의가 텔레그램의 공식적인 블록체인 첫 진출이라는 점을 넘어 사용자들에게 진정한 소유권을 되돌려 주겠다는 탈중앙화 정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프래그먼트는 2022년 11월 30일 두로프 CEO의 발표를 통해 출시된 지 약 한 달 만에 약 5000만 달러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탈중앙화에 대한 두로프의 집념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7전8기…두로프 CEO의 집념이 향하는 곳[비트코인 A to Z]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2022년 11월 30일 두로프 CEO는 텔레그램이 비수탁형 암호화폐 지갑과 탈중앙화 거래소(DEX)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FTX 사태는 두로프 CEO가 탈중앙화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하고 텔레그램의 다음 목표로 비수탁형 지갑과 DEX를 설정하도록 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이번 사태를 통해 지갑과 DEX를 다음 타깃으로 잡은 것은 너무나도 논리적이고 당연해 보인다.

텔레그램은 한국에서만 좋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대중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갖지 못하지만 202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약 5억50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고 두로프 CEO에 따르면 현재 약 7억 명의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존 메신저에서는 유료이거나 혹은 사용 자체가 불가능한 기능인 이모티콘 스티커 채널 봇 생성이 매우 자유롭다. 또한 텔레그램 자체에서 내보는 광고가 없거나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고 2021년을 기준으로 수익화 모델을 도입했지만 기존 사용자들이 누리던 기능은 유료화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텔레그램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그날까지 유료화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필자는 위와 같은 텔레그램의 서비스가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가는 수많은 디앱과 이념적으로 굉장히 유사하다고 봤다. 블록체인과 웹3.0의 핵심은 사용자가 온전히 자신의 소유권을 보장받으며 그 위에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현 시스템에서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플랫폼이 텔레그램이라고 봤고 두로프 CEO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블록체인을 통해 이를 더욱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는 계획이 번번이 가로막힐 때마다 탈중앙화를 위한 집념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관철해 나갔다. TON이 SEC에 가로막혔을 때도 그랬고 개인 정보 제공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부에 24시간 동안 운영 제재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오히려 두로프 CEO는 탈중앙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며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고 지금의 텔레그램에 이르렀다.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진출이 단순히 FTX 사태로 인해 탈중앙화 흐름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획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필자가 바라보기에 두로프 CEO는 TON 체인 위에 지갑 ‘DEX’ 프래그먼트 등 다양한 디앱을 출시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사용자가 외부의 압력과 무관하게 온전히 자신의 것을 보장받는 시스템 구축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와 같이 텔레그램이 TON 체인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블록체인 생태계에 완전히 녹아 든다면 텔레그램을 통해 결제, 검색, 창작 활동, 부가 가치 창출 등 모든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텔레그램의 슈퍼 애플리케이션(앱)화도 가능해진다.

텔레그램의 행보를 응원하며 마지막으로 두로프 CEO의 말을 인용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해결책은 분명하다 : 블록체인 기반의 프로젝트는 그들의 뿌리인 탈중앙화로 돌아가야 한다(Solution is clear : blockchain-based projects should go back to their roots — decentralization).”

김동혁 디스프레드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