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해빙 감소→제트기류 약화→찬 공기 남하
3년째 계속되는 라니냐도 원인

[비즈니스 포커스]
한파가 이어지는 12월 25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일산대교 일대 한강에 유빙이 떠다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파가 이어지는 12월 25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일산대교 일대 한강에 유빙이 떠다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강이 얼어붙었고 집집마다 창문에 고드름이 맺혔다. 기록적 폭설에 비행기와 기차가 연착됐고 비닐하우스는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폭삭 쓰러졌다.

강추위가 지속된 2022년 12월 중순(14일~26일)의 모습이다. 이 기간 평균 기온은 섭씨 영하 4.2도였다. 기상관측망이 본격적으로 확충되기 시작한 1973년 이후 가장 낮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12월 24일은 대관령의 최저 기온이 섭씨 영하 21.8도, 철원은 섭씨 영하 20.4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이 꽁꽁 얼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미국 일부 지역은 기온이 섭씨 영하 46도까지 떨어졌고 일본엔 2m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기후 변화로 기온이 점점 더 높아진다는데 매년 더 겨울이 추워지는 이유는 뭘까.
◆‘기후 변화’, ‘라니냐’ 영향
‘기후 변화’와 ‘라니냐’ 현상이 2022년 12월 강추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반도의 겨울 날씨는 북극에서 내려오는 춥고 건조한 공기에 영향을 받는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북극이 따뜻해지고 빙하가 녹고 있다.

평상시에는 북극의 찬 공기(극소용돌이)가 북반구 상공에 부는 강한 ‘제트기류(북극 주변을 빠르고 좁게 도는 공기 흐름)’에 갇혀 있다. 이를 양의 북극 진동 상태라고 한다. 이때는 찬 공기가 남하하지 못한다. 포근한 겨울철을 보낼 수 있다.

반면 기후 변화로 눈이 녹고 지표면의 온도가 뜨거워지면서 땅을 적셔야 하는 물이 빠르게 증발해 버린다. 여기서 만들어진 뜨거운 공기는 하늘을 가득 채운다. 고위도의 기온이 상승하면 ‘제트기류’가 약화한다. 약화된 틈을 타 찬 공기가 북극을 벗어나 밑으로 내려온다. 이를 음의 북극 진동 상태라고 한다.

기상청은 “여러 기상학적 요소가 결부되면서 북극 진동은 강약을 반복한다”며 이례적인 한파와 폭설의 원인으로 북극 해빙(바다얼음) 감소로 인한 강한 ‘음의 북극 진동’ 발생을 꼽았다. 여기에 러시아 우랄산맥(유럽과 아시아 경계) 등 기류 방향에 영향을 주는 지형적인 요소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2022년 12월 북반구에서 음의 북극 진동이 강하게 지속됐고 우랄산맥의 바람이 불어 나가는 방향인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 차가운 북풍이 자주 유입됐다는 얘기다.

다만 북극의 기후 변화와 제트기류 사이에 상관관계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더러 있다. 영국 레딩대의 기후 과학자 테드 셰퍼드는 아예 또 다른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져 제트기류와 극소용돌이를 교란하는 북극 기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라니냐’다. 라니냐는 무역풍이 강해지며 적도 태평양 지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라니냐의 진동 주기는 명확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중립을 되찾는데 최근엔 이런 패턴이 깨졌다. 2020년 9월 시작된 라니냐는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다.

라니냐로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떨어지면 서태평양 대기 순환이 바뀌며 태평양 인근 지역에 기상 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지구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남아시아·호주·미국 중서부와 칠레 등에선 태풍·폭우·한파·가뭄이 덮쳤다.

라니냐가 발달한 시기 한국의 겨울 날씨도 춥고 건조한 경향을 보였다. 2021년 초겨울 한파가 매서웠고 겨울철 강수량은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적었다. 2022년에는 전남 광주에서 12월 23일 하루 만에 32.9cm의 눈이 쌓이기도 했다.
성탄절 미국 뉴욕 폭설. 사진=연합뉴스
성탄절 미국 뉴욕 폭설. 사진=연합뉴스
◆패딩은 잘 팔리고 편의점은 발길 뚝
날씨가 예년보다 추워지자 산업계도 변화가 생겼다. 일단 추위를 이겨내는 데 필요한 겨울철 옷과 난방 물품 등이 수요가 많다. 특히 패딩이 잘 팔린다. 인기 많은 제품은 재판매(리셀)도 할 수 있어 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20만원대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기 위해 ‘오픈런(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하다가 뛰어가는 것)’ 현상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패딩 매출은 추워진 만큼 더 성장했다. 2022년 12월 1일부터 26일까지 현대백화점의 아웃도어 매출 신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51.2% 증가했다. 빈폴맨 패딩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빈폴레이디스 패딩은 50% 이상 증가했다.

1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패딩도 잘 팔린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 브랜드 에르노(HERNO)는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자 온라인 매출이 전년 대비 약 30.8%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2022년 12월 1~26일)의 프리미엄 패딩 매출은 전년 대비 23.2% 늘었다. 롯데백화점에선 한파 특보가 발표된 2022년 12월 13일 이후 열흘 동안 프리미엄 패딩 매출이 전년 대비 45% 증가했다.

반면 강추위에 움추러드는 업종도 있다. 대표적으로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다. 겨울철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편의점 방문 횟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편의점 A사는 섭씨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를 기록했던 2022년 12월 14~25일 12일간의 매출이 평년 기온이었던 직전 12일(2~13일) 매출보다 상대적으로 줄었다.

즉석 원두커피는 이 기간 무려 마이너스 12.3%를 기록했다. 사람들이 돌아나니지 않은 결과였다. 주류 역시 매출이 주춤했다. 한파 기간(2022년 12월 14~25일)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맥주 매출은 4% 하락했다. 다만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끼어 있어 양주와 와인의 매출은 늘었다.

CU‧GS25 등 주요 편의점의 분기별 매출을 봐도 여름철(2‧3분기)보다 겨울철(1‧4분기) 매출이 덜 나온다. 2020년과 2021년 CU는 여름철 매출이 각 3조2319억원, 3조5370억원이었다면 겨울철 매출은 각 2조9494억원, 3조2442억원으로 집계됐다.

한파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게 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서울역 부근의 인력사무소에는 건설 현장 일거리를 찾기 위해 방한 용품으로 무장한 수십 명의 중·장년들이 몰려 있지만 정작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날이 추워지면서 일거리도 줄었다. 통상 12월 말부터 3월 초까지는 겨울철 비수기지만 최근 인력 시장은 건설 경기 침체로 더 얼어붙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10월 말 건축 착공은 전년 동기 대비 35.4% 줄었다. 부도 업체는 10월까지만 13개사에 달한다. 2021년에는 12월까지 누계 부도 업체 수가 12개사였다.
육군 31보병사단 장병들이 12월 27일 전남 담양군 담양읍 대설 피해를 본 비닐하우스에서 제설 복구작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육군 31보병사단 장병들이 12월 27일 전남 담양군 담양읍 대설 피해를 본 비닐하우스에서 제설 복구작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